정책
의심처방 확인의무 기준 사례 나왔다
작년 말, 최면진정제 스틸녹스를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 등에 의뢰해 다량으로 구입했던 환자의 자살사건 이후 의사와 본인 확인 없이 조제했다는 혐의로 무더기로 입건,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던 수원지역 약사 16명이 모두 구제돼, 명예를 회복했다.
복지부는 위의 사건으로 작년 11월 경, 자격정지 처분이 내려졌던 수원지역 16명의 약사들에게 1월 말, 이를 철회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는 대한약사회가 올해 최우선 정책과제로 설정하고 있는 '의심처방 의사응대 의무화'와 관련해 현재 약사법과 의료법의 차이와 약사의 의심처방 확인의 범위를 복지부에서 구분했다는 의미에서 차후 이와 유사한 사건이 발생 시, 상당한 영향이 미칠 것으로 예상돼 주목되고 있다.
<'스틸녹스 사건' 개요>
◎ 30대 여성 자살→부검 후 의·약사 56명 '무더기' 입건
작년 말 포항 죽천2리 해안가에서 39세의 한 여성(이하 K모 씨)이 변사체로 발견됐다. 당시 당국의 시신 부검결과 K모 씨는 약물과다복용으로 인한 익사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로 인해 K모 씨가 방문했던 병·의원과 약국이 줄줄이 연루돼 의·약사 56명이 형사입건 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자살한 K모 씨는 직업적 특성상 밤낮이 바뀐 일이 잦았으며 남편과의 불화로 불면증에 시달려왔다.
K모 씨는 수원, 포항, 경주 등을 돌며 그 간 "조제한 의약품을 분실했다", "약을 넣은 채 세탁을 했다", "변기통에 약을 빠뜨렸다", "장기간 여행을 떠난다" 등의 사유를 들어 잦은 처방·조제를 의뢰했으며 가족들에게 조제약 구입을 의뢰 시에도 딸과 같은 젊은 여자 2명 및 성인 남자를 동반하거나 "가족이 차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등의 이유를 대, 약사들이 의심할 수 없도록 했다.
이후 K모 씨는 자살을 시도했으며 사체 부검 후 약물이 체내에 축적된 것으로 나타났다.
◎ "약사 확인 의무, 처방전이 의심스러운 경우만"
복지부의 자격정지 처분이 통지되자 수원지역 연루 약사들은 뜻을 모아 변호사를 선임, 명예회복에 나섰다.
이들은,
▲약사법 제23조 제2항에 나온 의심처방 의사 확인 조제사항이 존재하고 있지만 의료법에는 이에 대해 응대해야하는 의무가 규정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의심 확인을 이행하기 어려운 점
▲약사의 확인 의무는 의약품의 명칭, 분량, 용법 및 용량과 같은 처방전의 내용에 의심이 있는 경우에 한정해 인정돼야한다는 점
▲향정약을 판매 시가 아닌 조제 시에 대해 매수인의 서명과 날인을 생략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는 점
▲K모 씨는 약물 부작용이 아닌 자살로 사망한 점
▲스틸녹스는 권장량의 40배에 달하는 400mg까지 과량 복용한 경우에도 완전 회복이 가능하다는 점
▲해당 약사들이 과용 및 자주 복용 시 습관성 발생 우려에 대한 주의와 복약지도를 수행한 점
등을 들어 자격정지 처분 철회를 호소했다.
결국 복지부는 이들의 호소를 받아들여 지난 1월 말, 약사들의 자격정지 처분 철회를 결정, 통보했다.
<수원 약사 16명 "명예회복으로 선례를 남기고 싶었다">
당시 이 사건에 연루된 수원지역 약사 16명은 수원시약사회에서 진행된 집단 검찰조사에 수 시간 이상씩 시달려야했다.
이에 대해 당시 사건을 겪은 A약사는 "4시간동안 범죄인처럼 심문 받는 기분이었다"며 처음 겪는 사건을 술회했다.
아울러 "이런 요주의 환자에 대해 심평원 측의 분리 통보가 있어야 했지만 그것조차 전혀 없었기 때문에 K모 씨가 전국을 다니며 약을 처방·조제를 받았는 지 꿈에도 몰랐다"고 밝혔다.
함께 사건을 겪은 B약사는 "아무리 설명을 해도 검찰 측 진술서 작성 내용이 다르게 되어 몇 번이나 정정을 요구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지부의 자격정지 처분 통지서가 날라오자 너무나 억울하고 힘들었다"고 당시의 심경을 밝히기도 했다.
또 C약사는 "억울했지만 선량한 전국의 약사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우리가 힘을 합해야한다고 생각했다"며 함께 행동을 해준 약사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사건을 맡은 박정일 변호사는 "약사들의 의심처방 확인 의무 사항에 일정한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밝히며 "처방전 입수 후 의심되는 부분에 대해 약사들이 확인해야하는 사안은 차후 법률적으로도 영향이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수원 지역 약사들의 자격정지 처분 철회 결정으로 이 사건에 함께 연루됐던 포항·경주 지역 약사들에게도 영향이 미치게 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한편 이번 사건에 함께 연루됐던 병·의원들은 최소 100만원에서 최대 300만원의 벌금이 부과됐다.
김정주
2007.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