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에 의존해 세포막이 산화되면서 세포가 죽는 ‘페롭토시스(ferroptosis)’가 암과 퇴행성질환을 아우르는 새로운 신약개발 표적으로 떠오르고 있다.
암에서는 페롭토시스를 유도해 암세포를 제거하고, 신경퇴행성·심혈관질환에서는 반대로 이를 억제해 정상세포를 보호하는 전략이다.
페롭토시스 연구를 선도해 온 마커스 콘라드(Marcus Conrad) 독일 헬름홀츠 뮌헨 대사·세포사멸연구소장은 23일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대한약학회 창립 80주년 국제학술대회에서 ‘Modulating Ferroptosis for Disease Prevention’을 주제로 강연하고, 페롭토시스 조절기전과 이를 활용한 질환 치료 가능성을 제시했다.
콘라드 교수는 강연 후 인터뷰에서 “페롭토시스를 활용한 신약개발은 시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관련 연구가 실제 치료제 개발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
페롭토시스는 철에 의존적인 지질 과산화와 이에 따른 세포막의 산화적 손상을 특징으로 하는 조절된 세포사멸이다. 세포막을 구성하는 지질의 산화가 통제되지 않고 축적되면서 세포가 사멸하는 것으로, 기존의 세포자멸사(apoptosis)와는 다른 기전을 갖는다.
콘라드 교수는 페롭토시스라는 명칭이 정립되기 이전부터 관련 세포사멸 기전을 연구해왔다. 최근에는 페롭토시스가 암뿐 아니라 신경퇴행성질환과 심혈관질환 등 다양한 질환의 발생과 진행에 관여한다는 연구가 이어지면서 이를 조절해 치료에 활용하려는 시도가 확대되고 있다.
특징적인 것은 같은 페롭토시스를 질환에 따라 정반대 방향으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암에서는 암세포가 페롭토시스를 회피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어체계를 무너뜨려 세포사멸을 유도한다. 반대로 신경퇴행성질환이나 급성 심근경색 등에서는 과도한 지질 과산화로 정상세포가 손상되는 것을 막기 위해 페롭토시스를 억제하는 방식이다.
콘라드 교수는 “신경퇴행성질환이나 급성 심근경색 등에서는 페롭토시스를 억제하는 물질이 예방이나 치료에 활용될 수 있다”며 “암에서는 반대로 페롭토시스를 억제하는 방어기전을 차단함으로써 암세포의 사멸을 유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암 치료 분야에서 주목하는 표적 가운데 하나가 FSP1(ferroptosis suppressor protein 1)이다.
세포에는 지질 과산화로 인한 페롭토시스를 막는 여러 방어체계가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이 인지질 과산화물을 제거하는 GPX4(glutathione peroxidase 4)와 FSP1이다. 암세포 역시 이러한 방어체계를 이용해 페롭토시스를 회피할 수 있는 만큼, 이를 차단하면 암세포의 사멸을 유도하는 새로운 치료전략으로 연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콘라드 교수 연구팀은 FSP1을 억제해 암세포의 페롭토시스를 촉진하는 억제제를 개발해왔다. 실제 암에서 페롭토시스 억제인자를 유전적으로 제거했을 때 치료 효과가 나타나는 연구결과도 확인됐으며, 이를 약물로 구현하기 위한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산업계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콘라드 교수는 페롭토시스 관련 치료제 개발에 여러 제약기업들이 관심을 갖고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 역시 자체적으로 억제제를 개발하며 페롭토시스 조절기전을 실제 항암 치료로 연결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다만 실제 임상에서 페롭토시스를 치료 표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도 남아 있다.
대표적인 것이 환자의 체내에서 실제 페롭토시스가 일어났는지, 치료제가 이를 제대로 조절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지표다.
콘라드 교수는 “세포자멸사의 경우 caspase-3와 같은 바이오마커가 있지만 페롭토시스에는 아직 이를 특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바이오마커가 없다”고 설명했다.
현재는 페롭토시스나 지질 과산화를 억제했을 때 세포가 회복되는지를 확인하거나, 질량분석법을 이용해 산화된 지질을 측정하는 등의 방법이 활용되고 있다. 뇌에서는 transferrin receptor를 페롭토시스 지표로 활용할 가능성도 보고됐지만, 모든 조직과 질환에서 사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바이오마커는 아직 확립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단순히 체내 철을 줄이는 방식 역시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
철은 페롭토시스를 일으키는 데 필요한 요소지만 동시에 미토콘드리아의 에너지 생성 등 정상적인 생명활동에도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철 킬레이터를 이용해 철을 광범위하게 제거할 경우 정상적인 생리기능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어, 질환과 세포에 따라 페롭토시스 기전을 정밀하게 조절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결국 페롭토시스 치료전략의 핵심은 세포사멸 자체를 무조건 막거나 촉진하는 것이 아니라 질환에 따라 이를 정밀하게 조절하는 데 있다.
암에서는 암세포가 가진 페롭토시스 방어체계를 차단해 사멸을 유도하고, 퇴행성질환에서는 정상세포의 지질 과산화와 사멸을 막는 방식이다. 기초연구에서 출발한 페롭토시스가 실제 신약개발 표적으로 확장되는 가운데, 이를 정밀하게 조절할 수 있는 약물과 임상에서 작용을 확인할 수 있는 지표 확보가 향후 과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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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에 의존해 세포막이 산화되면서 세포가 죽는 ‘페롭토시스(ferroptosis)’가 암과 퇴행성질환을 아우르는 새로운 신약개발 표적으로 떠오르고 있다.
암에서는 페롭토시스를 유도해 암세포를 제거하고, 신경퇴행성·심혈관질환에서는 반대로 이를 억제해 정상세포를 보호하는 전략이다.
페롭토시스 연구를 선도해 온 마커스 콘라드(Marcus Conrad) 독일 헬름홀츠 뮌헨 대사·세포사멸연구소장은 23일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대한약학회 창립 80주년 국제학술대회에서 ‘Modulating Ferroptosis for Disease Prevention’을 주제로 강연하고, 페롭토시스 조절기전과 이를 활용한 질환 치료 가능성을 제시했다.
콘라드 교수는 강연 후 인터뷰에서 “페롭토시스를 활용한 신약개발은 시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관련 연구가 실제 치료제 개발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
페롭토시스는 철에 의존적인 지질 과산화와 이에 따른 세포막의 산화적 손상을 특징으로 하는 조절된 세포사멸이다. 세포막을 구성하는 지질의 산화가 통제되지 않고 축적되면서 세포가 사멸하는 것으로, 기존의 세포자멸사(apoptosis)와는 다른 기전을 갖는다.
콘라드 교수는 페롭토시스라는 명칭이 정립되기 이전부터 관련 세포사멸 기전을 연구해왔다. 최근에는 페롭토시스가 암뿐 아니라 신경퇴행성질환과 심혈관질환 등 다양한 질환의 발생과 진행에 관여한다는 연구가 이어지면서 이를 조절해 치료에 활용하려는 시도가 확대되고 있다.
특징적인 것은 같은 페롭토시스를 질환에 따라 정반대 방향으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암에서는 암세포가 페롭토시스를 회피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어체계를 무너뜨려 세포사멸을 유도한다. 반대로 신경퇴행성질환이나 급성 심근경색 등에서는 과도한 지질 과산화로 정상세포가 손상되는 것을 막기 위해 페롭토시스를 억제하는 방식이다.
콘라드 교수는 “신경퇴행성질환이나 급성 심근경색 등에서는 페롭토시스를 억제하는 물질이 예방이나 치료에 활용될 수 있다”며 “암에서는 반대로 페롭토시스를 억제하는 방어기전을 차단함으로써 암세포의 사멸을 유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암 치료 분야에서 주목하는 표적 가운데 하나가 FSP1(ferroptosis suppressor protein 1)이다.
세포에는 지질 과산화로 인한 페롭토시스를 막는 여러 방어체계가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이 인지질 과산화물을 제거하는 GPX4(glutathione peroxidase 4)와 FSP1이다. 암세포 역시 이러한 방어체계를 이용해 페롭토시스를 회피할 수 있는 만큼, 이를 차단하면 암세포의 사멸을 유도하는 새로운 치료전략으로 연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콘라드 교수 연구팀은 FSP1을 억제해 암세포의 페롭토시스를 촉진하는 억제제를 개발해왔다. 실제 암에서 페롭토시스 억제인자를 유전적으로 제거했을 때 치료 효과가 나타나는 연구결과도 확인됐으며, 이를 약물로 구현하기 위한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산업계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콘라드 교수는 페롭토시스 관련 치료제 개발에 여러 제약기업들이 관심을 갖고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 역시 자체적으로 억제제를 개발하며 페롭토시스 조절기전을 실제 항암 치료로 연결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다만 실제 임상에서 페롭토시스를 치료 표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도 남아 있다.
대표적인 것이 환자의 체내에서 실제 페롭토시스가 일어났는지, 치료제가 이를 제대로 조절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지표다.
콘라드 교수는 “세포자멸사의 경우 caspase-3와 같은 바이오마커가 있지만 페롭토시스에는 아직 이를 특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바이오마커가 없다”고 설명했다.
현재는 페롭토시스나 지질 과산화를 억제했을 때 세포가 회복되는지를 확인하거나, 질량분석법을 이용해 산화된 지질을 측정하는 등의 방법이 활용되고 있다. 뇌에서는 transferrin receptor를 페롭토시스 지표로 활용할 가능성도 보고됐지만, 모든 조직과 질환에서 사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바이오마커는 아직 확립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단순히 체내 철을 줄이는 방식 역시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
철은 페롭토시스를 일으키는 데 필요한 요소지만 동시에 미토콘드리아의 에너지 생성 등 정상적인 생명활동에도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철 킬레이터를 이용해 철을 광범위하게 제거할 경우 정상적인 생리기능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어, 질환과 세포에 따라 페롭토시스 기전을 정밀하게 조절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결국 페롭토시스 치료전략의 핵심은 세포사멸 자체를 무조건 막거나 촉진하는 것이 아니라 질환에 따라 이를 정밀하게 조절하는 데 있다.
암에서는 암세포가 가진 페롭토시스 방어체계를 차단해 사멸을 유도하고, 퇴행성질환에서는 정상세포의 지질 과산화와 사멸을 막는 방식이다. 기초연구에서 출발한 페롭토시스가 실제 신약개발 표적으로 확장되는 가운데, 이를 정밀하게 조절할 수 있는 약물과 임상에서 작용을 확인할 수 있는 지표 확보가 향후 과제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