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숍 대항마에서 화장품 생태계 파괴 주범으로
10여년 전 국내 화장품 시장을 이끌던 전문점 시대를 지나 대기업 및 중견기업들이 새로운 유통 전략인 ‘브랜드숍’을 선보이면서 화장품 시장의 활황을 잇고 있다. 하지만 ‘브랜드숍’의 무분별한 출점을 통한 가맹사업 전개와 상시적으로 열리는 브랜드데이 세일 및 할인 이벤트로 인해 무질서한 가격 책정, 상권 배정의 혼란 등 화장품 업계에 새로운 문제점을 야기시키고 있다.
이에 현재 ‘브랜드숍’이 국내외에서 인기 고공행진을 지속하고 있는 가운데 대항마로 등장한 것이 바로 ‘H&B숍’이다.
H&B숍은 다양한 국내외 브랜드의 제품군을 한 곳에서 만날 수 있다는 장점으로 핵심 상권의 중심에 위치해 브랜드숍 독주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H&B숍의 확장은 핵심 상권뿐만 아니라 최근 골목상권까지 침투해 중소상인들의 생업에 막대한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대형마트와 SSM(Super Super Market,기업형 슈퍼마켓), 상품공급점 등 변종 유통망으로 관련법을 피해가면서 지역 상권을 잠식하던 대기업들이 이제는 H&B숍 사업을 통해 골목상권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
CJ, GS, 롯데, 이마트 등 유통 공룡들이 출점한 H&B숍은 지난 2009년 153개에서 2014년 7월 669개로 약 5배가 늘어났다.
대형마트나 SSM과는 달리 H&B숍은 유통산업발전법 상 준대규모 점포 규제에 적용되지 않아 전국적으로 대대적인 점포 확장을 전개, 지역상권을 위협하고 있다.
H&B숍 시장의 60%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올리브영은 2009년 71개 점포에서 2014년 7월까지 388개로 늘려 5배 이상(546%) 점포를 늘렸으며, W스토어는 2009년 56개에서 올해 7월까지 158개 점포로 증가, 3배(282%)가 늘었으며 추가적인 사업확장도 준비중이다. 왓슨스도 같은 기간동안 26개에서 93개로 늘려 358% 증가했다.
지난 2011년에는 농심이 메가마트 판도라를, 2012년에는 이마트가 분스, 지난해에는 롯데 롭스를 오픈했으며, 올 해 하반기에는 홈플러스에서도 B+H라는 H&B숍을 숍인숍 형태로 오픈할 것으로 알려졌다. 신세계 이마트는 편의점 프랜차이즈인 위드미를 인수해 올 해 안에 1,000여개로 점포 확대에 나서 후발주자로의 불리한 조건을 우회적으로 상쇄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H&B숍은 품목에 제한을 두지 않는 전방위적인 판매방식을 통해 다양한 업종의 골목상권에 위기를 초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김제남 국회의원(정의당, 산업통상자원위원회)은 중소기업청이 제출한 ‘H&B숍 주변 실태조사보고서’에 따르면 H&B숍 인근 727개 소매점포 가운데 380개 점포의 매출이 감소했으며 인근 800m이내 점포들 가운데 85%가 최근 3개월간 적자, 현상유지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업종별로 보면 H&B숍 출점으로 인해 슈퍼마켓 19.8%, 화장품점 14.1%, 약국 12.8%, 편의점 11% 등의 비중으로 적자를 보고 있는 상태다.
화장품점의 경우 H&B숍 출점전 평균 일매출이 74만9,000원이었으나 출점후에는 65만6,000원으로 9만2,000원 가량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점포면적별로 보면 규모가 작을수록 적자의 폭이 컸으며, H&B숍 출점으로 인해 유급 종사자의 수가 출점전보다 점포당 0.04명 감소한 1.58명으로 조사됐다. 화장품점의 종사자수 감소는 0.07명으로 가장 높았으며 감소율 역시도 4.4%로 가장 높았다.
H&B숍 출점으로 인해 화장품점의 피해가 야기되는 주요 품목으로는 코스메틱이 33.7%로 가장 컸으며 생활건강용품 17.8%, 스킨케어 14.5%로 조사됐다.
또 H&B숍으로부터 500m, 800m 내에 있는 소매점포의 피해는 평균 7만2,000원 가량이었으며 직영점 형태의 매장은 일매출 20만원, 가맹점 11만원, 독립점(단독사업체)의 경우 6만원 가량의 피해를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김 의원은 ‘약국의 개폐점 현황’자료를 통해 H&B숍이 약국의 영역 침범으로 약국 폐점의 가속화를 부추겼다고 밝혔다.
H&B숍이 진출하기 전인 2009년 한 해 동안 전국 약국 폐점이 1,553개였던 것에 반해 2013년 말까지는 1,739개가 문을 닫았다. 이는 H&B숍이 약국의 건강기능성 식품 영역을 빼앗은 것을 주 요인으로 분석했다.
특히 외형적으로는 성장했으나 순이익면에서는 적자를 지속하고 있는 H&B숍은 약사법 개정을 통해 감기약, 소화제, 진통제 등 편의점에 구비된 안전상비약 품목에 대해 판매를 허용해 달라는 개정안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형마트와 SSM, 최근 변종 SSM으로 불리는 대기업의 상품공급점에 이어 H&B숍까지 출점하면서 골목시장과 4번째 상권 다툼을 하고 있는 대기업의 공세에 지역상인들은 치를 떨고 있다는 것.
이에 김 의원은 “슬그머니 H&B숍으로 주력 간판을 바꿔 단 유통 대기업들에 대한 신속하고 근본적인 규제방안이 필요하다”며 “편법 이후 뒷북치는 관련법의 개정보다는 원천적으로 골목상권을 지킬 수 있는 업종 허가제 실시가 해법이다”고 말했다.
송상훈
2014.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