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국 임상시험 '속도 경쟁'에서 '신뢰 경쟁'으로 전환
김선아 리니칼코리아 사업개발 담당 상무
입력 2026.05.26 06:00 수정 2026.05.26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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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ical(리니칼)은 2005년 일본에서 설립된 글로벌 CRO로, 일본 본사를 중심으로 북미·유럽·아시아태평양 등 약 20개 국가에 사무소를 운영하며 초기 임상부터 다국적 대규모 임상시험까지 전 주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종양학을 비롯해 신경학·정신의학, 면역학·백신, 내분비·대사질환 등 I~IV상 임상시험에 강점을 갖고 있다. 

저자

김선아(Samantha Kim)

리니칼코리아(Linical Korea), 사업개발 담당 상무(BD Director)


2026년 정책 변화와 CRO·제약사의 전략적 대응

국내 임상시험 산업은 지난 10여 년간 빠른 성장세를 보이며 글로벌 시장에서 중요한 위치를 확보해왔다. 특히 연간 700건 이상의 임상시험 승인 규모를 유지하면서 한국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임상시험 허브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2026년을 기점으로 정부의 정책 방향은 더 이상 양적 확대에 머물지 않는다. 이제 정책의 핵심은 명확하다. 환자 안전과 데이터 신뢰성을 중심으로 한 질적 고도화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26년 임상시험 정책의 중심을 위험 기반 관리, 사후관리 강화, 환자 보호, 데이터 품질 확보로 설정했다. 이는 단순한 규제 강화가 아니라, 한국 임상시험 산업의 구조 자체를 규제 대응형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전환하려는 전략적 변화로 해석할 수 있다.


승인 이후가 더 중요해진 시대

가장 주목할 변화는 사후관리 중심 체계로의 전환이다. 과거에는 임상시험 승인 속도가 경쟁력이었다면, 이제는 승인 이후 실제 수행 과정과 결과 데이터의 신뢰성이 핵심 평가 기준이 된다. 식약처는 정기 실태조사 확대와 결과보고서 검증을 통해 임상시험 전 과정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기업 입장에서 중요한 전략적 의미를 갖는다. 즉, 임상시험은 더 이상 허가를 받는 이벤트가 아니라, 관리되어야 하는 과정이 된다. 초기 설계부터 수행, 데이터 관리, 결과보고에 이르기까지 전 주기에서 규제 대응이 내재화되어야 한다.


CRO는 실행 조직에서 규제 파트너로

이러한 정책 변화는 CRO(임상시험수탁기관)의 역할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과거 CRO의 경쟁력은 속도와 비용 효율성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품질, audit 대응 능력, 규제 적합성이 핵심 경쟁 요소다.

특히 사후 점검과 실태조사 강화로 인해, CRO의 inspection readiness(감사 대응 준비 수준)가 사실상 핵심 KPI로 부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주요 CRO들은 QA 조직 확대, mock audit 체계 구축, 데이터 무결성 관리 강화를 필수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CRO의 사업 구조도 변화하고 있다. 단순 모니터링과 데이터 관리 중심에서 벗어나,

• Risk-based monitoring 설계
• 규제 대응 컨설팅
• SOP 구축 지원
• audit 대응 전략 수립

등으로 서비스 범위가 확장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CRO는 단순 실행 vendor가 아니라, 전략적 규제 파트너로 진화 중이다.


제약사는 ‘Quality by Design’이 생존 조건

제약사의 전략 변화는 더욱 근본적이다. 사후관리 강화는 곧 초기 설계 실패의 리스크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에, 기업들은 임상 초기 단계부터 품질을 내재화하는 접근, 즉 Quality by Design 전략을 채택할 수밖에 없다.

이는 구체적으로

• 프로토콜 설계 단계에서 audit 대응 고려
• 위험 기반 임상 설계 적용
• 데이터 수집 및 관리 구조 고도화

등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변화는 비용 증가를 동반한다. QA 조직 강화, 교육 확대, 컴플라이언스 시스템 구축 등은 기업의 부담을 키운다. 그러나 동시에

• 글로벌 승인 가능성 증가
• 개발 실패 리스크 감소
• 데이터 가치 상승

이라는 구조적 이익을 제공한다. 결국 기업은 “비용 증가 vs 성공 확률 상승”이라는 전략적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글로벌 임상 허브로서의 재정의

또 하나 중요한 변화는 한국 임상시험의 역할 재정립이다. 최근 다국가 임상시험 참여가 증가하고 글로벌 제약사의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한국은 단순한 임상시험 수행 국가를 넘어 글로벌 데이터 생산 거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데이터 품질과 규제 신뢰성이 곧 국가 경쟁력이다. GCP 준수, 데이터 무결성 확보, 글로벌 규제기관(FDA, EMA) 대응 역량이 강화될수록 한국은 더욱 중요한 글로벌 임상 거점으로 기능하게 된다.


산업 구조 재편 가속화

정책 변화는 산업 구조에도 영향을 미친다.

첫째, 시장 양극화가 심화된다. QA 및 규제 역량을 갖춘 대형 CRO와 글로벌 제약사는 경쟁력이 강화되는 반면, 중소 기업은 비용 부담으로 인해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둘째, 규제 기반 경쟁 구조로 전환된다. 이제 경쟁력은 단순 기술이나 속도가 아니라, 규제 대응 능력과 데이터 신뢰성이다.

셋째, 글로벌 의존도 증가다. 다국가 임상 확대와 해외 스폰서 증가로 인해, 한국 시장은 글로벌 임상 전략의 일부로 더 강하게 통합되고 있다.


결론은 ‘빠르게’가 아니라 ‘제대로’

2026년 정책 변화는 한국 임상시험 산업의 방향을 명확히 제시한다.

과거의 경쟁은 ‘얼마나 빨리 임상을 수행하느냐’였다면, 이제는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를 만들 수 있느냐’로 바뀌었다. 이는 곧 산업의 철학 자체가 변화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결국 한국 임상시험은 지금 속도의 시장에서 신뢰의 시장으로 전환되는 중이다. 이 흐름 속에서 살아남는 기업은 단순히 많은 임상을 수행하는 기업이 아니라, 글로벌 기준에서 신뢰받는 데이터를 만들어내는 기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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