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성분명 처방 시범사업
'성분명처방 시범사업' 실시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의료계는 성분명처방 시범사업 추진 사실이 알려진 지난 6월부터 시범사업 중단을 촉구, '집단휴진'이라는 카드까지 꺼내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의료계의 집단행동에도 불구하고 시범사업 추진을 확정·발표하는 등 정부-의료계 간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여기에 시민단체들까지 가세, 성분명처방 시범사업에 대한 논란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현재 성분명처방을 둘러싼 양측 간의 갈등과 논쟁은 크게 세 가지로 ①제네릭 의약품의 약효 및 안전성 ②약제비 절감 여부 ③성분명처방 시범사업의 실효성 등이다. 이에 지금까지의 성분명처방에 관한 논의들을 정리하고, 각각의 주장에 대한 허와 실을 짚어본다.
[쟁점 1] 제네릭 의약품 약효 및 안전성 문제
성분명처방 시범사업(이하 시범사업) 추진에 있어 가장 큰 쟁점이 되고 있는 부분은 '제네릭 의약품의 약효 및 안전성 확보'에 관한 것이다.
이는 대한의사협회가 가장 핵심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부분으로, 제네릭 의약품의 효능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성분명처방 시범사업은 약효가 좋은 오리지널 약을 저질^저가의 약으로 대체하는 제도라는 것이다.
의사협회는 "정부는 약제비 절감 등 그럴싸한 명분을 들어 성분명처방을 정당화하려 하지만 사실상 성분명처방은 국민건강에 아주 치명적인 위협을 줄 수가 있다"며 "약효가 분명한 오리저널 약을 복제한 값 싼 약의 효능을 믿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또한 의사협회는 "현재 오리지널과 약효가 다른 복제약들이 난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성분명처방을 실시하게 된다면 검증되지 않은 복제약을 무분별하게 쓰게 될 것"이라며 "이로 인해 치명적인 약화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시범사업을 주관하고 있는 국립의료원은 "생동성이 동등하다는 전제가 없으면 시범사업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성분명처방 시범사업 대상인 32개 품목은 약효가 동등하다는 것을 확인한 상태에서 추진하는 것"이라고 의료계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하지만 국립의료원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발생한 '생동성시험 조작사건'은 제네릭 의약품에 대한 국민적 우려를 확산시킨 것이 사실. 이 같은 우려는 시민단체의 주장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은 국립의료원의 시범사업 추진 발표 직후 '성분명처방 시범사업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제도적 보완을 촉구한다'는 성명을 통해 "정부가 의약품의 안전성과 효과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생동성시험을 철저히 관리·감독하는 제도적 보완장치를 마련하고, 생동성시험을 거쳐 의약품의 안전성과 효과성의 품질검증이 확보된 의약품에 한해서만 성분명처방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올바른 생동성시험을 통해 '약으로서 최소한의 가치'가 확보된 제네릭에 대해서는 성분명처방을 통한 조제가 가능하다는 것이 의료계를 제외한 당사자들의 중론이다.
오히려 제네릭의 '약으로서 최소한의 가치'를 확보하기 위한 제도적 보완장치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마련할 것인가가 성분명처방 논의의 핵심이 돼야 한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이와 관련, 이화여대 법대 김명희 교수(의사)는 "국내 제약 산업의 생산시설 수준 업그레이드, 약의 검증 등이 먼저 진행된 후에 성분명처방에 관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 맞다"며 "이런 이야기가 전제 되지 않은 이상 리베이트 문제 등 지금의 논쟁은 소모적인 논쟁이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쟁점 2] 성분명처방에 의한 약제비 절감 여부
복지부는 시범사업 추진 이유 중 하나로,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약제비 절감을 꼽고 있다. 성분명처방을 통해 의약품의 선택권을 넓혀 동일 성분의 제네릭 의약품 선택을 유도한다는 것.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의료계는 물론 시민단체들까지도 그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우선 의사협회는 이번 시범사업을 "대통령 공약이라는 미명 하에 업적 달성에만 급급한 사업"이라며 "정략적 목적의 시범사업"이라고 평가절하하고 있다.
경실련 역시 정부가 약제비 절감에 분명한 뜻이 있다면 국민의료비 절감을 위한 실질적인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며 환자 중심의 약제비 절감 방안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경실련은 "약가의 산정기준을 제네릭이 출시된 오리지널 약가를 제네릭 수준으로 인하하는 등의 합리적 약가조정과 함께, 동일 성분일 경우 보험이 적용되는 값싼 약을 소비자가 구입할 수 있도록 소비자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방향의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환자복지센터 김창보 국장의 경우 복지부의 약제비 절감 주장이 실효성 없음을 언급하며, 오히려 복지부가 성분명처방을 국내 제약 산업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내보이기도 했다.
김창보 국장은 "약제비 절감은 성분명처방이 아닌 포지티브 리스트나 참조가격제를 통해 추진돼야 할 것"이라며 "복지부가 그런 사실 모를 리가 없음에도 약제비 절감 운운하는 것은 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쟁점 3] 성분명처방 시범사업의 실효성
우선 시범사업 자체의 실효성을 언급하기에 앞서, 그 필요성에 있어서는 의료계를 제외하곤 모두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시범사업이기는 하지만, 실체 없이 뜬구름 잡는 식으로 회자됐던 성분명처방이 물리적으로 실행된다는 점에서 의의를 부여하고 있는 것.
그러나 시범사업이 갖는 의미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시행방식에 있어서는 모두가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마디로 제대로 된 시범사업의 꼴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범사업을 주관하고 있는 국립의료원 조차 "성분명처방의 전면적인 실시를 위한 시범사업이라면 국립의료원 한군데에서만의 시범사업으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언급하는 등 시범사업의 실효성을 축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함께, 실제 성분명처방이 되더라도 그 실효성이 미비할 것이라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김종명 정책국장은 "기본적으로 성분명처방 시행 자체에 대해서는 동감하고 있다"면서도 "고도의 치료행위가 수반되는 고혈압, 당뇨병 등에 있어서는 환자관리 차원에서 성분명처방이 불가능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정책국장은 "고혈압이나 당뇨와 관련된 약 중에서는 미세한 양에 따라 환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큰 의약품들이 많다"며 "따라서 위장약 등 일부 품목에 대해서만 성분명처방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 김종명 정책국장(포천병원 가정의학과장)]
잘못 정착된 의약분업부터 언급돼야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김종명 정책국장은 성분명처방이 실제 실효성 있게 진행되려면, 비정상적으로 고착화된 의약분업부터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김 정책국장은 "현재 '병의원-문전약국' 형태가 고착화 돼 있는 상황에서는 성분명처방이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며 "동네약국 활성화 등 이 부분에 대해 대책이 나오지 않는 이상 성분명처방을 시행한다 하더라도 현행 시스템과 차이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잘못 정착된 의약분업을 바로잡지 않고 성분명처방을 추진하는 것은 사실상 의미가 없으며, 정부가 의약분업에 대한 평가나 연구 없이 성분명처방을 고집하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것.
김 정책국장은 "이런 이유 때문에 정부의 시범사업 추진이 생색내기에 불과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며, 시범사업 자체에 대해서도 "국립의료원의 시범사업은 연구자료로서의 가치가 전혀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성분명처방 시범사업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국립의료원만이 아닌 지역단위로 혹은 전국 단위로의 시범사업이 추진돼야한다는 것이 김 정책국장의 설명이다.
성분명처방과 관련된 논쟁의 핵심은 단연 「제네릭 의약품의 약효 및 안전성」 문제이다. 특히 대한의사협회는 이 부분과 관련, 성분명처방이 시행되면 약사들이 오리지널 대신 약효가 불확실한 값싼 약을 마음대로 선택, 국민건강에 크게 위협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약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대부분의 의사들은 스스로 약효가 불확실하다고 지적한 제네릭 의약품을 처방하고 있어 자가당착에 빠지고 있다. 이에 실제 약국으로 들어오는 처방전 분석을 통해 의사협회 주장의 모순점을 조명해 본다.
◆무분별한 처방행태 환자불편 심각
서울에서 약국을 경영하고 있는 A약사는 환자들이 처방전을 들고 올 때마다 걱정이 앞선다.
동네약국이다보니 어느 병원에서 무슨 품목이 처방될지 예상하기 어렵고, 행여나 약국에 없는 의약품이 처방됐을 경우에는 아픈 사람을 돌려보내야하는 곤란한 상황이 연출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두 안면이 있는 동네 환자들을 돌려보낼 수 없어, A약사의 약국에는 한 성분당 많게는 10품목 이상의 제네릭 의약품을 구비해놓고 있다.
특히 처방이 빈번한 ‘시메티딘’ 성분의 경우, 총 12품목의 서로 다른 의약품들이 A약사의 약국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에 대해 A약사는 “의사들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서로 다른 품목을 처방을 하는데다 대체조제도 금지하고 있다”며 “약이 없을 경우 그냥 돌아가야 하는 환자들의 불편은 물론이거니와, 국가적으로도 자원의 낭비가 아닐 수 없다”고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실제 취재 당일에도 비만치료제 ‘리덕틸’의 제네릭인 리덕타민을 처방받은 환자가 약국에 약이 없어 30분 이상 약이 오기를 기다리기도 했다.
◆제네릭 못 믿겠다던 의사들이 제네릭 처방
이 같은 처방행태는 ‘약효가 불확실한 값싼 약을 조제해 국민건강을 크게 위협할 것’이라는 의사협회의 주장과도 크게 동떨어져 있다.
지난 1년간 A약국의 ‘시메티딘’ 성분에 대한 오리지널 의약품과 제네릭 의약품 처방약수를 비교해보면, 오리지널 격인 에취투(중외제약)나 타가메트(유한양행)는 전체 처방약수의 5분의1에도 미치지 못 한다(위에 표 참조).
또한 지난 8월 한 달간 6개 성분의 오리지널과 제네릭 의약품 처방약수를 비교한 B약국의 사례는 의사들의 제네릭 처방이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왼쪽 표 참조).
의사들이 스스로 ‘저질’이라고 표현했던 제네릭 의약품을 무분별하게 처방하고 있는 것.
물론 이는 의사들의 고유 권한인 처방권에 속하는 문제일 수 있지만, 스스로가 제네릭 처방을 주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제네릭 의약품을 저질, 저가약으로 매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A약사는 “성분명처방이 아니더라도 대체조제목록 제출 등을 통해 의사들의 처방권을 존중하는 방법이 있었음에도 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이 일차적인 문제”라며 “무분별한 제네릭 처방은 개선하지 않은 채 제네릭 약효만을 문제 삼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A약사는 “의사들이 약사들의 의약품 선택을 믿을 수 없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지만, 약효가 떨어지는 약을 조제했을 경우 그 결과는 고스란히 약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며 “그 어느 약사도 저질약을 조제해서 환자로부터 외면받게 되는 행위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제네릭 처방…종합병원까지 이미 ‘보편화’
두 약국의 사례가 일부 약국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동네약국이 아닌 종합병원 앞의 문전약국의 경우 오리지널 처방이 높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지난해 10월 발표한 ‘2003~2005년 요양기관 종별 분기별 고가약 처방 비중 현황’을 살펴보면, 고가약 처방은 줄고 있는 반면 제네릭 처방은 증가해 점차 일반화되고 있는 추세임을 알 수 있다.
오리지널 처방이 많은 종합병원에서조차 제네릭 처방이 절반에 육박하고 있으며, 병의원급의 경우 사실상 오리지널 처방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아래 표 참조).
이에 대해 보건의료계 관계자는 “이미 종합병원에서조차 제네릭 처방이 일반화되고 있는 추세이고 의원급은 전부 제네릭 처방인 곳도 많을 것”이라며 “지금당장 제네릭 약효에 문제가 있어 성분명처방을 시행할 수 없다는 식의 주장은 전혀 잘못된 논리”라고 지적했다.
편집부
2007.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