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병원약사, 분업 이후 업무과중-정체성 혼란
임상약학에서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는 병원약사들이 실제로는 과중한 업무로 인해 임상이나 자기개발을 위한 여건을 갖지 못하고 있다. 적은 인력에 비해 기본업무를 비롯한 야간근무, 휴일 당직 등 업무가 많아 결국 스스로 이직을 선택, 연간 28%의 높은 이직률을 보이는 등 병원약사로의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다. 이에 그 원인을 짚어보고 대책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따라가 본다.
이직률 가속화
대형병원에서 조차 연간 10여명의 약사가 퇴사하는 등 병원약사의 이직은 하루 이틀 문제가 아니다. 실제 최근 몇 년간 서울아산병원과 서울대병원의 퇴직률을 조사한 결과, 각 12%, 18%였으며, 퇴직사유로는 다른 직장으로의 이직이 가장 높았으며, 결혼, 육아, 건강 순이었다.
이와 함께 전체 약사의 근무자중 3년 미만의 약사가 가장 많았으며, 이들의 이직률 또한 가장 높았다. 김재연 서울아산병원 약무과장은 70여명의 약사 중 16명이 전공약사이기 때문에 이직으로 인한 업무의 어려움은 다소 없다고 밝혔으나, 일을 막 배우기 시작한 3년 미만 근무자의 퇴직이 높은 점을 우려했다. 때문에 해마다 이직하는 약사를 대신할 신규약사 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병원약사의 높은 이직률은 단기적으로는 업무의 과중의 문제점을 초래하지만 결국 약화사고 등으로 인한 환자손해를 야기할 수 있다. 이는 약사의 근무인력이 적어 약사 1인당 업무량이 증가하고 이로 인해 약사의 업무 효율과 전문성이 결여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마다 병원약사들이 이직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병원약사 수 감소
의약분업 이후 병원약국의 조제업무 비중 감소를 이유로 대학병원 등 일부 대형병원을 제외한 중소병원의 약사인력이 줄어들고 있다. 때문에 중소병원의 경우에도 기본적으로 4~5명의 약사가 유지됐던 과거에 비해 평균 1명꼴로 약사수가 감소한 것.
병원약사들의 말에 의하면 조제업무의 비중은 감소됐지만 약물정보제공, 임상약제 등 비조제업무의 비중이 증가했다고 한다. 즉 약사는 줄어들고 업무의 양은 유지돼 업무과중에 시달린 약사들이 결국 이직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실제 중소병원의 경우 한두명이 약제부의 업무를 담당하기 때문에 조제업무외의 업무를 수행하기 어려움에 처해있다.
더구나 조제업무 외에 임상이나 복약상담 등을 인정해주는 제도적 장치가 없어 병원약사로서의 의욕을 저하시키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현 약사법에 의하면 ‘조제수’에 의해서만 인력수급이나 근무평가가 이뤄지고 있으며 별도의 수가제도가 없어 장기적으로 병원약사라는 정체성의 상실을 초래하는 결과를 낳아, 자발적으로 병원약사의 길을 그만두게 된다는 것이다.
<의약분업 시행전후 4년 시점의 병원당 약사수> (단위:개,명) 자료출처:병원약사회
구분
1996년
2000년
2004년
병원수
약사수
병원당
약사수
병원수
약사수
병원당
약사수
병원수
약사수
병원당
약사수
종합병원
271
2,226
8.2
285
1,594
5.6
282
1,793
6.4
병원
566
511
0.9
856
656
0.8
1,216
818
0.7
일반병원
421
402
1.0
581
520
0.9
763
688
0.9
기타병원
145
109
0.8
275
136
0.5
453
130
0.3
주 5일제로 당직 증가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주 5일제 시행으로 인해 휴일이 많아지면서 대부분의 병원약사의 휴무일 근무(당직)가 증가했다는 점이다. 이 같은 현상은 병원약사의 대부분이 여성이기 때문에 업무과중을 더욱 심하게 만든다. 대부분의 병원약제부는 결혼이나 자녀양육 등의 어려움이 있는 여약사의 경우 야간근무나 당직에서 제외하는 관행이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미혼의 여약사들이 야간근무를 대신하고, 주 5일제 당직근무도 병행해 약사 1인당 한달휴무가 3~4일에 그치고 있다. 때문에 주 5일제가 많아지고 있는 요즘추세에 비해 병원약사가 느끼는 근무일수는 증가하고 있는 셈이다.
< 강선영 영동세브란스병원 약사 인터뷰 >
“주 5일제가 되면 휴무가 많아져야 하지만 오히려 근무일수가 더 많아졌어요.”
영동세브란스 병원은 격일간 2명씩 2팀으로 나눠 야간근무를 진행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야간근무는 월,수,금과 화,목,일로 나눠졌으며 토요일의 경우 야간근무자 중 1명과 주간근무자 1명이 추가로 근무한다.
전체 24명의 약사 중에 야간근무를 하고 있는 약사는 현재 8명이다. 그동안 자녀양육 등의 어려움이 있는 약사를 배려해 미혼의 약사를 비롯한 10여명의 약사가 야간근무를 해왔지만, 최근에 약사가 퇴사하면서 근무자가 더 줄어들게 된 것이다. 때문에 추가로 약사 1인당 야간근무의 횟수가 증가했다.
더구나 매달 격주로 주말 당직 근무를 하기 때문에 실제 약사의 휴무일수가 야간근무, 당직이 많은 날은 한달에 3일로 그치는 경우도 있다.
과중한 업무-약화사고 우려
영동세브란스 병원에서 4년간 근무하고 있는 강선영 약사는 “주어진 업무는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쉬지 않고 계속 근무를 하기 때문에 실수를 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했다. 약사들이 과중한 업무로 인해 환자에게 복약상담을 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지지 못하고, 피로와 스트레스로 인해 환자가 피해를 입을까 우려된다는 것이다.
또한 약사가 이직해 신규 약사를 채용하더라도 9개월 동안은 기존의 약사들이 야간업무를 대신 맡아야 하기 때문에 이직으로 인한 약사들간의 업무과중이 심각했다.
이유인즉, 현재 야간근무자가 2명뿐이기 때문에 업무의 효율과 약화사고를 줄이려면 신규약사가 병원의 부서별 업무를 먼저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
“당직이 많으면 급여는 올라가지만 솔직히 돈보다는 휴무가 더 나아요”
야간 근무나 휴일 당직근무를 하게 되면 횟수별로 수당이 나오지만 대부분의 병원약사들은 수당보다는 휴무를 원한다고 답했다. 강선영 약사는 “일년에 15일의 휴가가 있지만 4년 동안 휴가를 다 써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일일 휴무가능인원이 2명으로 한정되어 있을 뿐 아니라 야간근무가 있을 경우 휴무를 쓸 수 없기 때문이다. 근무 가능한 인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쉬게 되면 다른 약사의 업무가 증가하는 점도 또 다른 이유이다.
< K약사가 말하는 병원약사의 현실 >
유명 약대 졸업을 앞둔 K약사는 진로에 대해 고민했다. ‘약국을 열자니 그냥 구멍가게에서 일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제약사 등 회사에 입사하자니 조직생활에 찌들 것 같고...’
그래서 K약사는 A병원 약사로의 길을 선택했다. 하지만 임상에 대한 의욕이 앞서 찾은 길이었지만 실제로는 환자를 만나 볼 기회조차 없었다.
결국, 약국에서 시간제 근무를 하고, 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 환자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다는 B병원으로 옮겼다.
하지만 의약품 조제에 너무 많은 시간을 뺏겨서 사실상 임상에 관한 업무는 할 수도 없었다. 임상에 관련된 업무를 하는 부서가 있긴 했지만 부서간 로테이션이 되지 않아 사실상 이를 접할 수가 없었다. 현재 K약사는 과다한 조제업무를 수행하느라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겨를이 없다.
같은 병원에 근무하는 다른 약사들은 어떨까. 예컨대 '소아항암제 전문약사;라 불리는 임상관련 업무 약사들은 나름대로 병원내에서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지만 실질적인 대우는 별 차이가 없다고 한다.
단적인 예로, 현재 병원에서 약사가 받는 급여가 약 조제료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의사와 같이 환자 임상업무를 수행해도 병원에서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지금 막 들어온 약사나 10년 근무한 약사나 대우에 있어서도 큰 차이가 없어요. 이런 대우는 약사들로 하여금 조제업무 외 전문성 확보 등에 대한 욕구를 느끼지 못하게 만들어요.”
K약사도 병원약사의 이직이 잦은 이유로 과다한 업무량, 전문성 확보 등 자기개발에 대한 병원내에서의 불인정을 꼽고 있다. 이런 부담 때문에 ‘병원에 오래 남아있다고 해도 큰 메리트가 없다면 구지 힘들게 일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고 한다.
또 ‘약사면허’를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잦은 이직의 이유가 된다고 했다. 과다한 업무로 몸이 힘들면 잠시 쉬었다가 다른 곳으로 입사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제가 병원에서 근무하는 이유요? 어려운 점이 많긴 해도 무엇보다 ‘칼퇴근’이 좋기 때문이죠. 우리끼리 말로는 병원근무는 돈벌이로만 생각하고, 다른 취미생활을 맘껏 하면 좋을 거라고도 해요.”
최근에 들어 일부 병원에서 의사, 약사, 간호사가 한 팀을 이뤄 운영되기도 한다. K약사는 이런 팀제 운영이 확산돼 약사가 자신의 직능을 발휘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하고 있다.
양금덕
2007.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