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기획] 정부-제약업계 ‘약가전쟁’ 이제부터 시작 (하)
◇복지부 법원 소견서에 제약사들 ‘황당’
원료의약품 행정소송에서 보건복지부가 법원에 제출한 소견서가 제약업계 도마 위에 오르내리고 있다.
원료의약품 관련, 행정소송을 제기한 A제약사 관계자는 “복지부가 행정소송 소견서에서 약가가 내렸다면 더 많이 팔아서 이익을 보전할 수 있는 것이 자본주의 원리가 아니냐는 식으로 말했다”며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또한 A제약사 관계자는 “복지부가 단일보험체제의 제한된 시장에서 경쟁을 하는 것을 뻔히 알면서 그런 식으로 이야기 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이라며 “행정처분으로 일벌백계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된 것이고, 행정이란 것도 쌍방의 논의 속에 진행되는 것인데 지금의 상황은 전혀 그렇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B제약사 관계자는 복지부의 행정처리 방식과 상대적 약자인 제약사의 입장에 어려움을 나타했다.
B제약사 관계자는 “그 이전에는 원료의약품에 대해서 한 번도 이런 언급이 없다가 요식적인 소명절차만 거치고 갑자기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며 “복지부는 행정적 우위, 의ㆍ약사들은 의약품 선택에 있어서 우월적 지위를 가지고 있어 결국 상대적으로 약자인 제약사들만 피해를 보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공정위 조사결과…‘실거래가 위반 해석’이 관건
원료의약품에 대한 약가인하와 함께 정부-업계 간의 또 다른 갈등 요소로 지목되고 있는 것이 공정위 리베이트 조사결과 후속조치이다.
공정위가 리베이트 조사결과를 복지부에 통보하고, 리베이트 해당 품목에 대한 후속조치를 복지부에 권고하겠다는 방침이 제약업계를 긴장케 하고 있는 것.
이 부분에 있어서의 핵심은 ‘공정위의 조사결과가 실거래가 위반 혐의로 통보됐는지’ 또는 ‘복지부가 공정위 통보내용을 실거래가 위반으로 해석할지’의 문제에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복지부가 공정위 조사내용에 대한 실무차원에서의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지는 확인되고 있지 않지만, 복지부 관계자의 말을 빌리면 “공정위의 조사결과가 약가인하와 관련이 있을지 모르겠고, 실거래가 위반 혐의인 것 인지부터 판단해야 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 당분간은 정부-업계 간의 논란이 예상된다.
◇복지부, “개량신약 범위 구체적으로 정한다”
원료의약품 약가인하와 리베이트 조사결과 등은 제약사들의 입장에선 별로 할 말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유야 어찌됐든 분명히 제약사들이 잘못한 부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량신약의 약가산정에 있어서는 개별 제약사들의 이익을 넘어 국내 제약 산업의 존폐까지 거론하며 제약업계의 반발이 거세다.
실제 이번 2007년도 약가재평가에서도 개량신약 등 63개 품목의 약가재평가가 보류로 묶여있는 상태이며, 복지부는 제약업계의 의견을 일부 수용해 개량신약의 약가산정 기준을 새롭게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복지부 보험약제팀 현수엽 팀장은 21일 “올해 약가재평가에서 보류된 개량신약에 대해서는 개량신약의 가치 등 약가산정 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기준으로 2007년 약가재평가를 마무리 짓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개량신약 약가산정 기준의 구체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비교적 구체적인 형태로 개량신약의 ‘범위’를 마련하는데 초점을 맞추겠다는 계획이다.
이와 관련, 복지부 보험약제팀 관계자는 “식약청에서 개량신약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 ‘자료제출의약품’이란 개념으로 접근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이성질체, 염 변경, 서방정 등 구체적인 범위를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범위 설정은 어디까지나 건강보험재정의 측면을 고려해서 진행될 것임을 시사했다.
이 관계자는 “개량신약의 범위는 약사법 쪽으로의 접근과 건강보험법 쪽으로의 접근으로 나눠볼 수 있는데, 약가를 결정하는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건강보험법 쪽의 접근이 더욱 타당할 것”이라며 “결국 건강보험재정이란 관점에서 사회경제적인 측면을 모두 고려한 접근이 이뤄질 것이며, 개량신약은 건강보험재정 절감의 기여도 등에 따라 ‘특별대우’를 받을 수 있는 범위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개량신약 약가산정 기준…‘약가전쟁’의 분수령
이러한 복지부의 움직임에 제약업계는 한껏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단순히 약가가 깎인다는 이유 때문만이 아니라, 국내 제약 산업에서 개량신약이 가지는 의미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과거 제네릭 위주의 산업구조에서 탈피하고 미래 신약개발을 위한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는 개량신약을 정부가 알아주지 않는다면, 국내 제약 산업의 미래는 불투명할 수밖에 없다는 것.
이미 제약업계는 올해 진행된 각종 토론회, 학술제 등에서 ‘정부가 제약 산업 발전을 위해 연구개발비용 등을 지원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고 고맙게 여기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약가부문에 있어서 지원을 해주는 것’이라고 수차례 언급해 왔다.
그러나 복지부는 제약업계의 의견에 아랑곳 하지 않고 지속적인 ‘약가인하-건강보험재정 확보’ 정책을 펴고 있어 정부-업계 간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양상이다.
이에 대해 제약업계는 “정부가 계속 이런 식으로 정책을 추진할 경우 행정소송 등 법적인 대응은 물론이고, 한미FTA 비준 반대라는 방법으로 정부정책에 제동을 걸 수 있다”며 압박카드를 사용할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따라서 12월 중으로 대강의 윤곽이 드러날 개량신약 약가산정 기준이 어떻게 정해질지가 정부-업계 간 ‘약가전쟁’의 첫 번째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국내 중견 제약사 관계자는 “약가절감에 대해서는 이미 제약사들도 그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며 “개량신약이 정부의 약가절감 정책에 충분히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한 이 관계자는 “제약사들이 무조건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것도 아니고 서로 대화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인데, 정부가 무조건 드라이브를 건다면 제약사 입장에선 대화가 아닌 싸움을 하자는 식으로밖에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손정우
2007.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