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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바이옴은 살아있다①] "어엿한 신약 모달리티 자리매김"
한때 혁신 신약 모달리티로 주목받던 마이크로바이옴. 시장의 기대가 식으면서 한동안 한계를 드러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치료제 승인, 미생물 유래 대사산물 연구, 치료 반응 예측 데이터가 전 세계적으로 대거 축적되면서 이제는 시장에서도 인정받는 치료 모달리티로 다시 돌아왔다. 약업신문은 세계 최대 마이크로바이옴 학술행사 ‘IHMC 2026 SEOUL’ 현장에서 그 변화의 현주소를 짚어봤다.<편집자 주>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이 다시 제약바이오 산업의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프로바이오틱스와 건강기능식품으로 주목받았던 이 분야는 이제 생균치료제(LBP), 미생물 유래 대사산물, 치료 반응 예측, 예방의학 등으로 영역을 넓히며 치료 모달리티로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변화의 출발점은 질병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같은 약을 써도 환자마다 반응이 다르고, 비슷한 환경에서도 질병 위험은 다르게 나타난다. 인간 유전 정보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공백이 있다. 식이, 면역, 대사, 염증, 생활습관이 얽힌 그 지점에 장내 미생물을 포함한 마이크로바이옴이 있다.마이크로바이옴은 특정 환경에 존재하는 미생물 군집과 이들이 가진 유전정보, 대사산물, 주변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인체에서는 장, 피부, 구강, 호흡기 등에 존재하며 대사, 면역 조절, 병원체 방어, 염증 반응 조절에 관여한다. 단순히 유익균만을 늘리는 기술로 보기 어려운 이유다.4일 서울 코엑스에서 진행된 ‘인체마이크로바이옴 컨소시엄 세계학술대회(IHMC 2026 SEOUL)’ 기자간담회에서도 마이크로바이옴이 인간 유전체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웠던 질병 발생, 면역 반응, 약물 반응 차이를 설명하는 새로운 분야라는 점이 강조됐다.IHMC는 2008년 마이크로바이옴 연구의 국제 협력, 데이터 공유, 연구 표준화를 위해 시작된 국제 컨소시엄이다. 미국 NIH의 인간 미생물군집 프로젝트(Human Microbiome Project, HMP), 유럽의 MetaHIT 등 대규모 연구가 본격화되면서 국가별 마이크로바이옴 데이터를 비교·공유하고 공동 활용할 국제 협력체계를 위해 설립됐다.루스 E. 레이(Ruth E. Ley) 독일 막스플랑크 생물학연구소(Max Planck Institute for Biology Tübingen) 교수는 마이크로바이옴 연구가 생명의학의 중심부로 들어왔다고 평가했다. 그는 “마이크로바이옴은 신경질환, 대사질환 등 다양한 질환과 연결돼 있으며, 제약 분야에서도 그 가능성이 크게 인식되고 있다”며 “지난 15년간 현대적 분석기술의 발전으로 과거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영역까지 연구가 넓어졌다”고 강조했다.과거 마이크로바이옴 연구가 환자군과 정상군 사이의 균종 차이를 비교하는 데 집중했다면, 최근 연구는 한 단계 더 들어간다. 미생물이 어떤 물질을 만들고, 그 물질이 숙주의 면역, 염증, 장벽 기능, 에너지 대사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따지는 방식이다.단쇄지방산(SCFA), 담즙산 대사산물 등은 장내 미생물과 숙주 생리 사이를 잇는 대표적인 물질로 꼽힌다. SCFA는 장 장벽 유지와 면역 조절에, 담즙산 대사산물은 장내 면역·염증·종양 발생과의 연관성에서 연구가 축적되고 있다.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시장으로산업적 변곡점도 이미 만들어졌다. 미국 FDA는 2022년 11월 재발성 클로스트리디오이데스 디피실(Clostridioides difficile) 감염 재발 예방을 적응증으로 한 레비요타(REBYOTA, fecal microbiota, live-jslm)를 승인했다.이어 2023년 4월에는 같은 적응증으로 경구용 분변 미생물 제품 보우스트(VOWST, fecal microbiota spores, live-brpk)를 승인했다.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치료제가 규제당국이 인정한 의약품 영역에 진입한 것이다.국내에서도 고바이오랩, CJ바이오사이언스, 바이오미, HEM파마, 헬스바이옴, 종근당바이오, 쎌바이오텍 등 여러 바이오텍이 면역항암, 피부질환, 대사질환 등을 겨냥해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건강기능식품에서 출발한 영역이 치료제, 진단, 임상 데이터, 제조공정, 규제과학으로 범위를 넓히는 흐름이다.물론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마이크로바이옴이 실제 의약품으로 확고히 자리 잡으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특히 작용기전(MoA)을 더 명확히 보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균주 표준화와 제조·품질관리(CMC), 임상 재현성, 규제 경로도 확보해야 한다. 장내 유익균을 늘리는 수준의 설명에 머문다면 건강기능식품이나 화장품의 영역을 넘기 어렵다는 비판도 여전히 유효하다.이 질문은 기자간담회에서도 제기됐다. 유전자치료제가 연구에서 허가까지 긴 시간을 거쳤듯, 마이크로바이옴도 상업화 단계에 안착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롭 나이트(Rob Knight) 미국 캘리포니아대 샌디에이고(UCSD) 교수는 비만 연구를 예로 들며 답했다. 그는 인간 유전학만으로는 최근 수십 년간 급격히 증가한 비만율을 설명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특정 박테리아 균주와 균주 내 변이가 체중 등 표현형 차이와 연결될 수 있고, 마이크로바이옴은 식이·운동·생활환경과 맞물리는 환경요인이라는 설명이다.실제 마른 사람에게서 관찰되는 특정 균주를 분리해 프로바이오틱스 또는 새로운 모달리티로 적용하고, 비만에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임상시험에서 확인하고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일부 연구에서 체중과 대사 지표 개선 가능성을 시사하는 결과가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그는 “마이크로바이옴을 표적으로 삼는 방식은 유전자치료보다 훨씬 단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식이 성분, 보충제, 기허가 약물, 항생제 등을 활용해 미생물 간 경쟁과 생태계 변화를 유도하는 접근도 함께 논의되고 있다.마이크로바이옴 가치는 치료보다 예방에서 더 선명해질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스타니슬라브 두슈코 에를리히(Stanislav Dusko Ehrlich)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명예교수는 질병을 치료와 예방으로 나눠 봐야 한다고 했다.그는 “현재 의학은 예방을 충분히 다루지 못하고 있다”며 마이크로바이옴을 “우리 몸의 방치된 장기(neglected organ)”에 비유했다. 정확한 작용기전이 모두 규명되지 않았더라도 마이크로바이옴 조절로 질병 위험을 낮출 수 있다면 의료적 의미가 충분하다는 설명이다.에를리히 교수는 “기존 의약품은 병이 발생한 뒤 특정 표적을 억제하거나 보완하는 데 강점이 있는 반면, 마이크로바이옴은 병이 생기기 전 위험을 읽고, 질병 진행 속도를 늦추며, 치료 반응성을 바꾸는 방향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마이크로바이옴은 모든 질병을 해결할 만능 열쇠는 아니다. 다만 질병을 인체 단독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과 미생물 생태계가 함께 만든 결과로 보게 했다는 점에서 어엿한 치료 모달리티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권혁진
2026.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