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었다.
영월 땅 하동면 와석리. 마을 앞 넓은 강이 운치 있어 더욱 좋다. 좁은 길로 들어서니 계곡이 따른다. 김삿갓 계곡이다. 단풍이 아름답게 물들었다. 곳곳에 시비(詩碑)와 솟대며 정승이 분위기를 돋운다. 그러나 주차할 곳이 없어 마음에 새기지 못하니 아쉽다.
이런 곳에 어떻게 살았을까 싶을 정도로 깊숙이 들어갔을 때 유적지가 나타났다. 노루목이라 했다. 길 옆 입구에 반원형의 큰 바윗돌이 눈에 들어온다. “二十樹下 三十客”이라는 그의 대표적인 해학(諧謔) 시구(詩句)가 음각되어 있다. 안으로 들어가니 길게 누운 골짜기에 개울이 흐르고, 언덕 아래로 장승과 솟대가 줄을 잇는다. 길을 따라 세워진 시비가 걸음을 멈추게 하고, 더러는 조각상(彫刻像)도 보인다. 그 중에서도 삿갓 쓴 노인이 천도복숭을 들고 있는 조각이 눈길을 끄는데, 이는 “환갑연(還甲宴)”이란 시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건너편에 있는 묘지를 둘러보니 상석은 옛 것이지만 봉분은 새로 지은 듯하다.
자는 난고(蘭皐)요, 이름은 김병연(金炳淵)이며 별명은 삿갓이다. 그래서 김립(金笠)이라고도 한다. 20세 때 영월에서 시행한 과거에 장원으로 뽑혔는데, 그 제목이 홍경래 반란 때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항복한 반역죄인 김익순을 비판하라는 것이었다. 그는 수려한 시문으로 신랄한 비판을 퍼부었다. 이 사실을 안 그의 어머니는 김익순이 바로 할아버지라는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라에 대역죄인 이요 조상에 얼굴을 들 수 없었던 그는 삿갓으로 얼굴을 가리고 유랑생활을 하게 된다. 그의 나이 22세.
그의 생가는 마대산 중턱에 있다고 한다. 유적지로부터 1500m를 더 올라가야 했다. 개울을 끼고 오르는 산길은 가을 날씨와 함께 시인의 향취가 서려있어 지루하지 않았다.
길도 자동차도 없던 그 시절, 일생을 유랑하다니,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그러나 떠나야만 했던 그의 기구한 운명이 가슴을 저민다. 그는 '평생시'에서 이렇게 읊었다.
새도 둥지가 있고 짐승도 보금자리가 있건만
내 평생 돌아보니 집도 없이 홀로 외로웠네.
짚신 신고 대지팡이 짚고 천리 길 떠돌며
물처럼 구름처럼 천지사방 가는 곳이 내 집이었다네.
그도 사람인데 어찌 행복이 그립지 않았을까. 아내와 자식이 기다리고 있는 가정 말이다. 오죽했으면 짐승의 보금자리를 부러워했을까. 홍경래 반란이 일어난 그 무렵 사회는 혼란했으며 민심도 흉흉했다. 이를 배경으로 태어난 “이십수하 삼십객”은 천하의 해학 시다.
二十樹下三十客 스무나무 살 아래인 서러운 나그네가
四十家中五十食 망할 놈의 집에서 쉰밥을 얻어먹으니
人間豈有七十事 인간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또 있으랴.
不如歸家 三十食 집에 돌아가서 선 밥 먹는 것만 못하구나.
그러나 눈물겹도록 고마운 인심도 있었다. 손님을 위하여 죽을 끓였는데, 죽거리마저 신통치 않아 주인이 옆에 앉아 사죄를 한다. 산 그림자가 비칠 정도로 묽은 죽을 앞에 놓고 오히려 주인을 위로하느라 한수를 읊으니 곧 “粥一器“(죽일기)였다.
네 발 달린 나무 상(床)에 놓인 죽 한 그릇
하늘빛과 구름 그림자 함께 감도는 구나.
주인께서는 무안하다는 말일랑 하지 마시오.
나는 청산이 물에 비치어 거꾸로 있는 것을 좋아한답니다.
산길을 오르는데 개울물이 넘쳐 길에 고였다. 그런데 고인 물 가운데 손바닥만한 돌 하나가 놓여있지 않은가. 딛고서 훌쩍 건너니 영락없는 징검다리였다. 그렇다! 김삿갓의 시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그의 시는 당시의 사회 속에서 태어났다. 반상(班常)의 세계를 힐난하고 좋고 나쁜 민심을 꾸밈없이 드러냈다. 그 속에는 인간과 사회와 역사가 숨 쉬고 금수강산삼천리의 풍경이 들어있다. 그래서 인터넷을 즐기는 지금의 젊은이도 그 시를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그가 세상을 유랑할 때 어찌 궂은 일만 있었으랴. 여기 구름에 달 가듯 정감 넘치는 “교태(嬌態)”라는 시 한수를 소개한다. 당시의 사랑의 풍속을 어림할 수 있다.
달 밝은 창가에서 희롱하다 보니
그 모습 사랑의 몸짓이요 수줍음이더라.
그렇게도 좋으냐고 나직이 속삭이니
금비녀 매만지며 고개 끄덕 웃고만 있네.
마대산 자락에도 단풍은 곱게 물들었다. 하늘 한번 개울 한번 이리저리 구경하며 한가로이 오른다. 그도 아름다운 자연을 두루 유람할 땐 유유자적(悠悠自適)할 때도 있었다. 잠시 시름도 잊고 그 귀한 행복도 느꼈을 법도하다. 여기 “간산(看山)”이라는 시 한수를 본다.
느린 말 타니 산 구경하기 더 좋아
일부러 채찍 들어 재촉하지도 않고
바위사이로 오직 오솔길 하나
연기 나는 곳엔 초가집 서너 채 거기 있네.
꽃 예쁘게 피었으니 봄이 왔는지
시냇물 소리 들리니 비 지나갔는지
돌아갈 것 까맣게 잊고 있는데
하인이 말하기를 해 저물어 간다하네.
생가(生家)로 가는 길은 사나운 돌길이다. 그러나 따라오는 개울물이 가을빛과 더불어 정감(情感)을 자아낸다. 아마도 삿갓도 이 길을 오르내리며 시심(詩心)을 키웠을 것이다. 마침 작은 폭포 아래 소(沼)가 있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푸르고 맑다. 노랑 빨강 가을 잎 몇 개 물위를 흐른다. 사물놀이를 하듯 빙글빙글 돈다. 그러다가 어디론가 흘러가버린다. 그런데 그 빈자리에 얼굴이 비친다. 분명 필자의 얼굴인데 주름 하나 없고 젊다. 그렇다! 삿갓이 거울을 보지 않고 소를 보았다면 그렇게 실망하지는 않았을 텐데.... 노년에 거울을 보고 이렇게 읊조렸다.
“간경(看鏡)”
머리가 흰 너는 김 진사가 아니더냐.
나 역시 청춘에는 옥같이 고운 사람이었네.
주량은 점점 느는데 돈은 떨어지고
세상 일 알만하니 백발이 되었도다.
등골에 땀이 흐를 무렵 나무다리로 개울을 건넜다. 그런데 나뭇가지에 매달려있는 빨강 파랑 등산표시 리본이 걸음을 잡는다. 깊고 깊은 산골이지만 등산객들이 오며가며 그와 어울리니 삿갓도 외롭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모퉁이를 돌아드니 낙엽 진 관목 사이로 집이 보였다. 개울이 나보다 먼저 집 앞까지 와있다. 집 옆에는 열매가 주렁주렁한 기암나무 하나가 주인인 듯 나를 반긴다.
방이 2개요 마루 건너 부엌이 정결하다. 측면엔 디딤 방아가 주인을 잃고 먼지에 쌓여있다. 후원으로 돌아가니 마루에서 작은 문 2짝이 열려있다. 아마도 그는 저 문으로 산의 동정을 살폈을 것이다. 처음엔 세상이 싫어 집을 나섰고, 뒤에는 방랑벽이 붙어 유랑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가 봄을 기다리는 마음에 이런 시가 있다.
“杜鵑花 消息(두견화 소식)”
창 앞에 와서 우는 새야
어느 산에서 자고 왔느냐.
산 속의 소식 너는 잘 알리니
산에 진달래꽃은 피었더냐.
마침 삿갓 쓴 사람이 행랑에 짚신 한 켤레 달고서 마당에 내려선다. 죽장 하나를 집어 들더니 사립을 나선다. 삿갓 들어 기암나무 한번 힐끗 쳐다보고는 산길을 내려간다. 그를 따라 나도 내려간다. 가면서 그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온다.
떠돌고 떠도는 내 삿갓 빈 배와 같구나.
한 번 쓴 뒤 40평생 서로 함께 지냈도다.
술 취하면 구경하던 꽃나무에 걸었고
흥이 나면 벗어들고 누각에도 함께 갔다.
남들의 의관은 모두가 장식물일 뿐이지만
내 삿갓은 비바람마저 근심 걱정 없애주네.
(본시는 더벅머리 목동이 소를 몰 때 쓰거나
백구를 벗하는 늙은 어부가 고기잡이 할 때 쓰는 것.)
그가 바로 “笠(삿갓)”을 노래하고 있었다. (20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