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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이매창(李梅窓) <제7話>
편집부
입력 2016-07-20 09:36 수정 최종수정 2016-12-01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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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경은 매창이 이승을 떠난 후에도 26년이나 풍류를 더 즐겼다. 매창이 그토록 한양으로 오고 싶어 했었으나 꿈을 이루지 못하였다. 일설엔 어느 사대부집의 첩살이를 한양에서 했었다는 애기도 있으나 신빙성이 낮다.


한양엔 유희경이 상경을 하면 매창을 살뜰히 보호해 줄 수 있었다. 그런데 한양에서 어느 사대부 첩살이를 했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을 뿐만이 아니라 당시 매창의 삶의 태도로 봐서도 어울리지 않는 풍문에 지나지 않는다.

매창은 당시 부안을 나비가 꽃을 훌쩍 떠날 수 없는 특별한 신분이었을 것이다. 모친이 관기였으니 모전여전의 신세는 아니었어도 그에 준하는 위치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오매불망 꿈에라도 보고 싶은 유희경을 따라 나설 입장이 못 될 것이다.

‘떠난 정(情) 못 이겨 문 닫고 앉았으니/ 눈물은 속절없이 소매를 적시네/ 이제는 빈방을 찾아올 리 없고/ 가는 비 보슬보슬 해가 저물어...’ ≪임생각≫이다. ‘애 끓는 정 말로는 할 길이 없어/ 밤새 머리칼이 반 남아 세었구나/ 생각은 정 그대도 알고프거든/ 가락지도 안 맞는 여윈 손 보소...’ 묘비에 새겨 진 ≪임생각≫등의 애절한 사연들이다.

그랬다. 전쟁으로 사회 기강이 해이해졌으나 매창은 당시 남존여비사회에서 끝없는 자기개발로 몸값을 올렸다. 인향만리로 한번 들으면 오금이 떨어지지 않는 노래와 거문고 소리가 한양에까지 상경했던 것이다.

매창은 시인으로 비록 기녀의 신분이었으나 뛰어난 문장력으로 대시인 유희경과 거침없는 수창으로 그 명성이 부안을 넘어 부와 명예의 도시 한양에까지 뜨르르하였다.

허균이 누구인가! 명문사대부 중 명문가의 자제다. 희대의 천재도 매창의 매력에 넋을 빼앗겼다. ‘봉래산(부안의 변산)의 가을이 한창 무르익었으리니 돌아가고픈 생각이 문득 든다오! 내가 시골로 돌아가겠다는 약속을 어겼다고 계랑은 반드시 웃을 것이오... 우리가 처음 만난 당시에 만약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이 있었다면 나와 그대와 사귐이 어떻게 10년 동안이나 그토록 친하게 이어질 수 있었겠소? 이제 송(宋)의 풍류객 진회해(秦淮海)의 진관(秦觀)은 진정한 사내가 아니고 선관(禪觀)을 지내는 것이 몸과 마음에 유익한 줄을 알고 있는 것이오! 어느 때나 만나서 하고픈 말을 다 할지 편지 종이를 대할 때마다 마음이 서글퍼진다오...’ 계유년 9월에 매창에게 보낸 편지다.

진정으로 매창을 플라토닉 러브한 허균의 애정 어린 속내다. 허균도 유희경과 같이 뼈를 녹이고 영혼까지 혼미해질 사랑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삼각관계의 치정(癡情)에 연루되기 싫었을 터다. 매창은 이귀의 정인 이였었다. 그리고 유희경의 여자로 세상에 알려져 있어 그가 또 다가가 사내역할을 하고 싶지는 않았을 게다.

풍류사회에도 지켜야 할 최소한 예의가 있기 때문이다. 비록 기생의 신분이지만 매창의 인격을 높이 평가해서이기도 하다. 주위에서 계속 치근덕거리며 사내역할 하기를 원하면 상대해 주지 못하는 매창의 괴로운 마음을 허균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내는 사내다. 허균이 거문고를 뜯는 매창을 독사가 먹이를 채어가듯 와락 끌어안았다. “서방님 이러시면 안돼요! 소첩은 비록 기녀에 불과하나 주인이 있는 몸이니 이 매창주만 드시고 돌아가 주세요...” “아니다. 나도 당당하게 너를 사랑하고 싶으니라...” “교산은 이 매창을 이번만 보고 보지 않을 자신이 있으세요? 그러시면 소첩이...” 하고는 허균의 뜨거운 품에서 빠져나와 다시 노래와 함께 거문고를 뜯었다.

찰나의 순간이었으나 매창의 얼굴이 석류 빛으로 상기되었다. 용광로같이 뜨거운 허균의 품에서 쿵쾅거리는 심장의 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허균도 이 같은 상황을 이미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교산은 끝까지 매창이 수절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그들은 도반 10년 동안을 깍듯이 지켰다. 우정이다. 남녀사이에 무슨 우정이 있을 수 있느냐고 말할 수 있겠으나 허균과 매창은 청자 빛 가을 하늘같이 명징하고 지고한 플라토닉 사랑을 나누었다.

사실 그들은 허균이 매창보다 네 살 위이니 생물학적으로 맞춤 운우지정을 만끽할 수 있는 천생 연리지였었다. 허균은 매창을 당나라 원진(元稹·779~831)·백거이(白居易·772~846)·두목(杜牧·803~852)과 시를 주고받은 ≪동심초≫의 원작자 설도(薛濤·768~832)와 비교했다.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라 했으며 한나라 성제의 여인 반첩여(班婕如)의 ≪부채≫에 비유하기도 하였다. ‘처절하여라 반첩여의 부채여/ 슬프기만 하여라 탁문군(卓文君)의 거문고일세/ 흩날리는 꽃잎은 속절없이 시름만 쌓고/ 시든 난초 볼수록 마음만 상하네...’ 그랬다. 이토록 애절한 사랑을 두 여인의 작품에 속내를 슬쩍 드러냈다.

하지만 허균은 매창의 고고한 인품을 끝까지 지켜 주었다. 그런 허균이 없었다면 한세대 가까이 나이 차이가 있었던 유희경과 매창의 사랑이 그토록 진지하고 숭고하게 유지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부안의 삼절을 마음껏 즐기며 유희경은 천수를 풍류화 하였다.

평양을 색향(色香)이라 했다. 평양엔 황진이 외에도 계월향·김부용 등이 있어 한양의 풍류객들을 불러들였다. 유희경도 개성 삼절을 그냥 모르는 척 지나쳤을 리 없을게다. 그는 조선팔도 아름다운 산천경개를 입맛을 보듯 빠짐없이 희롱하면서 인생을 즐겼으리라...

부안엔 매년 4월5일 부안 부풍율회(扶풍風율律會)에서 매창제를 지내고 있다. 매창은 살아서는 풍류객들과 일부 사대부들의 사랑을 받더니 사후엔 부안군을 넘어 전국민의 뜨거운 사랑을 아낌없이 받고 있다. 진정한 ‘인향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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