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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이매창(李梅窓) <제6話>
편집부
입력 2016-07-13 09:36 수정 최종수정 2016-12-01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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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경은 한성부윤에까지 승진하였다. 임진왜란 때 눈부신 공적을 세워 천민의 멍에를 벗겨주었다. 엄격한 계급사회에서 천민은 사람으로 대접을 받지 못한다. 그런데 천민 출신 촌은 유희경은 정2품인 한성부윤까지 올라갔다. 경이로운 신분상승이다. 조선사회에서 신분은 태어날 때부터 주어졌다.


오늘날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그리고 흙수저를 조선시대에 사농공상(士農工商)과 대비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자본주의 사황에도 어쩔 수 없이 보이지 않는 신분의 벽이 없지 않다. 하지만 자신의 신분 영역에서 본인의 노력으로 당대에선 물론이고 사후엔 더욱 이름 석자로 역사에 빛낸 여성들이 있다.

조선왕조시대에 기생 신분의 여성이 그들이다. 대표적 인물이 천재기녀 매창이다. 그녀는 기생 신분으로 유희경 한 사내에게만 몸을 내주었다. 흔히 기생을 ‘노류장화’ 즉 길가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주인 없는 꽃이니 오다가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꺾어가도 괜찮다는 식의 사자성어는 매창에겐 적용이 불가능하다.

시 경연을 시켜 잠자리 파트너를 골랐다는 ≪성수총화≫(醒睡叢話)에 나오는 야담 한토막... 김선비와 이선비, 그리고 유도(柳塗)의 시를 들고 매창은 유도의 손을 들어주고 그와 동침했다는 애기다. 유도가 실력이 출중한 김선비와 이선비를 물리치고 매창과 잠자리의 행운을 얻었다.

남존여비사회에서 여자가 남자를 선택한 것이다. 경천 진동할 사건이 발생하였다. 사대부집 여인도 아닌 노류장화에 불과한 기녀가 잠자리 파트너인 사내를 직접 고른 것이다. 야담이지만 남성 중심의 세상에 충격적인 사건이다.

성리학을 국가통치이념으로 하는 조선의 사회에서 여성 반란의 쿠데타다. 기녀사회에서 일어난 페미니즘이며 노라이즘이다. 야담이 메타포하고 있는 사실을 후세인들이 해석하는 애기다.

매창에겐 플라토닉 대상의 허균이 있으며 유희경을 알기 전엔 이귀가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노래와 춤, 거문고에 넋을 잃고 불을 보고 날아드는 부나비 같은 풍류객들이 수도 없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매창은 유희경에게 한번 몸을 내어 주고는 어느 사내에게도 마음과 몸을 주지 않았다.

수절이다. ‘옛날부터 임 찾는 것은 때가 있다 했는데/ 시인께선 무슨 일로 이리도 늦으셨던가/ 내 온 것은 임 찾으려는 뜻만이 아니라/시를 논하자는 열흘 기약이 있었기 때문이요...’ 유희경의 ≪너무 늦게 매창을 만나서≫다. 이에 매창이 거침이 없다. ‘임진·계사 두해 동안 왜적들이 쳐들어 왔을 때/ 이 몸의 시름과 한이야 그 누구에게 호소하리까/ 거문고 옆에 끼고 외로운 난새의 노래를 뜯으며/ 삼청동에 계실 그대를 서글피 그리워했지요...’ ≪옛날을 더듬으며≫다.

1607년 극적으로 재회하여 그 동안 서로 비록 떨어져 있었어도 임 계신 곳을 향해 밤마다 애달아하였다는 회포다. 특히 매창은 1591년 화촉동방을 떠올리며 수절의 대상인 유희경에게 앙탈이 아닌 순애보적 호소였을 것이다.

16년이란 세월이 훌쩍 흘러간 재회다. 그 세월 속에 사회적 환경과 당사자들도 많이 변했다. 매창은 불혹을 향해 달려갔으며 유희경은 회갑을 넘긴 나이다. 마지막 불꽃은 뜨겁고 거칠 것이 없다. “여보 소첩을 한양으로 데려가면 안되겠어요? 삼청동 침류대에서 당신의 풍류의 품격을 한층 높일 수 있지 않을까요?” 유희경의 넓은 가슴을 매창이 파고든다.

한바탕 황홀한 운우지정을 만끽한 남녀는 헤어질 때를 벌써부터 걱정이다. 유희경은 꿀 먹은 벙어리 모양 두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며 매창의 둔부와 유방을 번갈아 쓰다듬을 뿐 말이 없다. 그의 손을 통해 매창의 아름답고 신비하기까지한 몸뚱이에 입에 침이 말라들었다. 그런 그녀를 두고 다시 기약도 없이 헤어질 생각을 하니 갑자기 서글퍼져서다. 그들은 16년 만에 재회하여 열흘 동안을 그렇게 하룻밤처럼 사랑놀이를 즐겼을 게다.

매창은 유희경과 극적으로 재회한 후 1610년 한 많은 이승을 떠났다. 매창의 죽음이 알려지자 풍류계가 슬픔에 젖어들었다. ‘아름다운 글귀는 비단을 펴는 듯하고/ 맑은 노래는 구름도 멈추게 하네// 복숭아를 훔쳐서 인간세계로 내려오더니/ 불사약을 훔쳐서 인간 무리를 두고 떠났네// 부용꽃 수놓은 휘장엔 등불이 어둡기만 하고/ 비취색 치마엔 향기가 아직 남아 있는데// 이듬해 작은 복사꽃 필 때쯤이면/ 그 누군가 설도(薛濤)의 무덤을 지나려나...’ 허균의 ≪계량의 죽음을 슬퍼하며≫다.

그랬다. 풍류객 교산(蛟山·허균의 호)은 매창을 당나라 설도(768~832)에 비유하였다. 설도와 일란성 쌍둥이 같이 생애가 닮았다. 가족사도 그러했으며 당대에 저명한 시인 묵객(墨客)들과 교류한 것 등이 판에 박은 듯이 닮았다. 설도의 묘는 성도의 사천대학 인근 망강루 공원 서편에 있다. 그녀의 무덤은 두보(杜甫·712~770)의 두보초당과 함께 명소로 꼽히고 있다.

허균은 이처럼 매창을 높이 평가 그녀가 수절을 하도록 배려하였다. 교산이 이토록 무한 신뢰한 것은 그녀가 비록기녀신분이나 섣부른 행동을 할 수 없는 어떤 고매한 인격체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산은 10여 년 동안을 도반으로 선을 넘지 않고 지켰으리라...

죽음을 각오하고 수절을 지킨 매창이 훌륭했으나 그녀가 수절을 할 수 있도록 주위에서 보호해 준 남정네들도 그녀 못지않다. 성별을 넘어 아름다운 우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 분위기다.

오늘날에도 예쁜 여인 있으면 기어코 품고 싶어 하는 것이 사내 심정이다. 그런데 남존여비사회에서 기녀는 욕망을 채우는 ‘풍류반려’로 생각이 대세다. 그런데 그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매창이 한 사내를 위해 수절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어해 준 것은 허균이 결정적이다.

플라토닉 러브로 세상의 시름을 매창이 카타르시스 할수 있어서다. 그래서 400여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오늘날 부안의 삼절(三絶:이매창·유희경·직소폭포)로 칭송의 대상이 되었다. 시대를 뛰어넘는 아름답고 숭고하기 까지한 남녀상렬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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