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쳐
<6> 이매창(李梅窓) <제1話>
편집부
입력 2016-06-08 09:36 수정 최종수정 2016-12-01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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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 눈으로 매창(梅窓·1573~1610)이 밤을 샜다. 정원엔 매화꽃의 짙은 향기가 집안을 연기처럼 휘감아 돈다. 1607년 어느 봄날이다. 매창은 매화 중의 매화인 납매(蠟梅)를 유독이 좋아한다.


‘봄날 탓으로 걸린 병이 아니라/ 오로지 님 그리워 생긴 병이라오/ 티끌 덮인 이 세상엔 괴로움도 많지만/ 외로운 학이 되었기에 돌아갈 수도 없구나/ 잘못은 없다지만 뜬소문도 도니/ 여러 사람 입들이 무섭기만 해라/ 시름과 한스러운 날로 그지없으니/ 병난 김에 차라리 사립문 닫으리...’ ≪님 그리워 병났어라≫다. 상사병이다.

매창이 어느덧 34살이 되었다. 기생으론 퇴기(退妓)할 나이다. 그녀는 명기(名妓)로 자는 천향(天香), 아명은 향금(香今), 호는 계생(桂生)·계량(桂良)이나 스스로 매창이라 불러 만인에게 회자 되었다. 첫사랑으로 몸과 마음을 몽땅 바친 유희경(柳希慶·호村陰·1545~1636)은 서울로 올라간지 십 수 년이 흘렀다.

어제 저녁에 찰나적으로 눈을 붙인 꿈속에서 촌은과 질탕한 사랑을 나누었다. 매창의 눈엔 꿈속장면이 눈에 선하다. 그녀는 매일 화장을 한다. 늙고 병들어 정절(貞節)를 지키는 기생으로 알려져 손님도 뚝 끊겼다. 매창의 품성을 알아보고 시기(詩妓)로 인정하면서 수창(酬唱·시를 지어 서로 주고받음)할 가뭄에 콩 나듯 찾는 한량을 위해 오늘도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늘따라 화장이 잘 먹지 않는다. 나이 탓도 있지만 잠을 설쳐 눈까지 푸석푸석하다. 하루가 다르게 몸이 쇠약해졌다. 머리도 새치가 보였다. 매창은 하던 화장을 멈추고 넋 나간 사람처럼 거울을 응시하였다. 거울 속의 여인은 매창이 아니었다.

꽃과 벌 나비들이 부러워 할 매창이 아니다. ‘몇 해 동안이나 비바람소리를 내었던가/ 여태껏 지녀온 작은 거문고/ 외로운 난새의 노랠랑 뜯지도 말라더니/ 끝내 백두음 가락을 스스로 지어서 읊었거니...’ ≪거문고 타면서≫다.

매창과 유희경은 나이 차이가 많다. 매창이 34살이 되었으니 유희경도 어느덧 62살이 되었으리라... 무려 28살 차이다. 한세대 간격이다. 그녀는 세월의 무게를 보이기 싫어 손님이 없는 날에도 매일 화장을 한다. 화장을 하다 깜빡 잠이 들었다.

그때다. “여봐라! 안에 누구 없느냐?” 분명 유희경 목소리다. 매창은 경칩에 개구리가 튀어나오듯 사립문을 향해 뛰어 나갔다. 흡사 빙의(憑依)에 걸린 모습이다. “서방님이셨네요!” 매창은 유희경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잘 있었소?” 유희경은 매창을 어린아이 안 듯 안고 방으로 들어갔다. 벽에는 한땀 한땀 수놓은 ≪님 그리워 병났어라≫가 걸려있다.

유희경은 매창을 보자 운우지정을 하고 싶은 정욕이 활화산처럼 솟구쳤다. 하지만 그는 참았다. 한땀 한땀 수를 놓아 ≪님 그리워 병 났어라≫를 보고 끌어오르는 정욕을 억눌렀다. “이렇게 있지 말고 나가서 구경을 하자꾸나! 이토록 좋은 날씨에 방안에서 뭣을 하겠느냐! 어서 나가자.... 밖에 나귀가 있느니라!” “정말이에요? 서방님?”

매창은 꿈인지 생시인지 구별이 되지 않아 유희경을 정신 나간 사람모양 멀거니 쳐다보았다. “뭘 그렇게 넋 나간 사람처럼 쳐다보고 있어? 어서 구경 나갈 채비를 하라니깐....” 유희경은 부안의 절경 직소폭포를 구경 시켜주고 운우지정을 할 생각에 마음이 바쁘다.

내일 아침 일찍 한양으로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서방님...” 매창은 거울앞에 다시 앉았다. “아니다. 지금 시간이 그렇게 많이 있지 않으니라...” 유희경은 억지로 매창을 일으켜 세워 밖으로 나왔다.

사내는 매창을 번쩍 들어 나귀 등에 태웠다. “서방님 이러시면 아니 되옵니다!” 매창이 발버둥치는 바람에 나귀 등에서 떨어져 유희경 품에 안겼다. 하마터면 땅바닥에 떨어질 뻔 했다. “아니다. 오늘은 네가 내 상전이니라... 어서 나귀에 올라라...” 유희경은 다시 매창을 나귀 등에 태워 직소폭포로 향하였다.

풍류객 유희경도 직소폭포를 아직 보지 못했던 것이다. 송도삼절로 박연폭포·황진이·서경덕에 견주어 부안의 삼절엔 직소폭포와 매창·유희경을 꼽았다. 평양엔 명월(明月·황진이 호), 부안엔 매창이다. 지금 유희경이 매창을 나귀에 태워 부안의 절경을 찾아 유람하려한다. 하늘은 강낭콩 빛깔로 맑고 대지는 싱그러운 향기를 소녀의 숨결처럼 내뿜고 있었다.

며칠 전의 큰 비로 직소폭포는 장관이다. “어머 서방님 폭포가 장쾌하네요! 며칠 전에 큰비가 왔는데 서방님이 오실 것을 알고 옥황상제께서 비를 내려주셨나 봐요...” 매창은 꿈 많은 사춘기 소녀처럼 기쁨에 넘쳐 울먹인 목소리다.

“매창이 너 이 옥녀탕에서 목욕을 하려무나. 물이 너무 맑아 그냥 보고만 있기가 아쉬우니라.” 사내는 벌건 대낮에 그리스 신화의 비너스보다 더 예쁜 매창의 알몸을 보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서방님은 그게 말이나 돼요? 어떻게 벌건 대낮에 아녀자가 제정신으로 폭포에서 목욕을 해요!” 매창은 풍류객 유희경 특유의 관음증이 발동했다는 것을 이미 읽고 있었다.

그들은 수정같이 맑은 폭포수에 아쉬운 목욕 대신 손발을 씻고 총총히 집으로 왔다. 유희경의 마음은 바쁘다. 매창도 마찬가지다. 직소폭포야 다음에도 얼마든지 볼 수 있으나 관음증이 발동된 유희경의 육체의 허기를 채워주어야 한다는 마음이 급하다.

해가 아직 서산에 걸치지도 않았는데 그들은 벌써 운우지정에 들어갔다. 폭포수에서 관음증이 발동된 사내는 폭포수처럼 욕정을 퍼부었다. 수절했던 매창의 몸도 장고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듯 현란한 몸짓이다.

참으로 오랜만에 영혼의 회포를 푼다. 그러나 그녀의 몸짓은 품위를 잃지 않았다. ‘임 떠난 내일 밤이야 짧고 짧아지더라도/ 임 모신 오늘밤은 길고 길어지소서/ 닭 울음소리 들리고 날은 곧 새려는데/ 두 눈에선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네’ ≪이별하기 싫어서≫다.

16년 동안 쌓이고 쌓인 정염이 하룻밤 사이에 해소 될 리가 없다. 10일간의 뼈를 녹이는 운우지정은 하룻밤의 남가일몽처럼 지나갔다. 하지만 길고 영원히 낮이 오지 말기를 기원했던 밤은 밝았다. 매창은 방문 밖을 나오지 않았다. 차마 유희경의 뒷모습을 보지 않으려는 마음이다. 그들은 또 기약 없이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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