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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천재 女流시인 이 옥 봉 <제3話>
편집부
입력 2016-05-25 09:36 수정 최종수정 2016-12-01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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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 나비 날아들지 않는 꽃은 번식을 할 수 없다. 향기가 없던지 꿀이 없어 벌 나비가 찾지 않아서다. 옥봉이 조원의 소실 자격을 잃은 지 어언 한 계절이 지났다. 옥봉의 집은 작고 옹색했지만 마당 구석구석엔 꽃을 심었다.


봄엔 연산홍·진달래, 여름엔 장미·금낭화가 계절의 아름다움을 뽐냈으며 가을엔 부용·분꽃, 겨울에는 동백·납매가 계절의 고고함을 알렸다. 울타리는 사철나무로 되어있어 겨울엔 집안의 바람을 막아 안온하고 여름에는 시원하였다. 꽃들은 스스로 풍류반려로서 사시사철 몸과 마음을 한시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

하지만 옥봉은 쫓겨난 풍류반려 신세다. ‘평생을 당신 하나 그리며 사노라니/ 사무친 한(恨)이 병이 되어/ 술로도 나을 수 없고/ 약으로도 고칠 수 없어요!/ 날마다 이불 속에서 흘린 눈물/ 얼음 속을 흐르는 물과 같아서/ 밤낮 없이 흐르고 흘러도/ 사람들은 알지 못해요...’ ≪여자마음≫이다.

그랬다. 옥봉의 타는 가슴을 누가 알아 줄 것인가? 남편 조원이 살은 다 발라먹은 닭 뼈다귀 모양 내동댕이 쳐버린 여인을 어느 누가 거들떠보기나 할까? 그녀는 눈물의 세월이다.

강바람은 거세다. 특히 겨울바람은 살을 에는 듯 한 칼바람이다. 옥봉은 스스로 자신을 지키기로 마음먹었다. 사랑하는 조원을 마음속에서 지워버릴 수 없으면 극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옥봉은 문득 앙녕대군과 기생 정향(丁香)이 헤어질 때의 시가 떠올랐다. ‘다리 위에 말 세우고 이별 슬퍼 지체하니/ 버드나무 높은 가지 미운생각 이는구나./ 여인은 인연이 엷다고 새 원망 품는데/ 사나이는 성이 깊어 뒷날을 기약하네./ 복숭아꽃 오얏꽃 만발하는 한식 철에/ 자고새 날아드니 해는 이미 지고 있네./ 뜰아래 우뚝 솟은 한그루의 정향수에/ 억지로 춘심 품어 그 한 가지 꺾었도다.’ 칠언율시(七言律詩)다.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사나이 속내다. 하지만 떠나야 하는 현실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옥봉은 조원이 양녕대군이 정향을 사랑했듯이 아껴주길 바랬을 것이다. 그러나 조원은 사랑보다 체면이 더 중요했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허례의식이다.

하지만 아내를 동등한 인격체로 인정한 사대부도 있었다. 왕조국가에서 통치이념으로 어떤 사상을 정했어도 겉으론 따르는 척 하면서 내면엔 다른 사상을 갖듯 여인을 대하는 조선의 사대부들 중 그런 사내들이 존재했었다. 강정일당(姜靜一堂·1772~1832) 남편이 그 중의 한 사내다. 노론 대학자 송치구가 아끼는 사대부 윤광현이 그다.

윤광현은 아내가 작고한지 4년 후에 작품집 ≪정일당유고≫를 간행하여 오늘날 전해지고 있다. 윤광현은 아내가 죽자 마치 부모가 사망한 것처럼 땅을 치고 통곡했다. 옆에서 이를 본 친구들이 “이 사람아! 남이 보기 민망하이. 사내부가...”라고 핀잔을 주자 “자네들이 내 심정을 어찌 알겠나? 스승이 죽었으니 앞으론 어찌해야 하나! 눈이 없으니 장님 같고 닻이 없으니 배가 어떻게 항해를 해야 하나?”라며 되물었다. 윤광현은 아내 강정일당을 잃고 하늘이 무너진 듯 슬피 울었다.

옥봉을 ‘금시맹약’을 깼다고 내쫓는 조원은 어떠했을까? 사대부들은 사실상 대부분 비슷하다. 특히 잠자리에 들어가서 행동은 동물적 행태다. 낮엔 아내에게 현모양처의 전형적 모습은 원하지만 밤에는 요부를 갈망한다.

낮과 밤의 얼굴이 다른 원초적 본능이다. 아마도 조원 역시 밤엔 옥봉이 그립고 보고 싶을 게다. 그녀에게는 풍류반려의 조건이 모두 있어서다. 아름답고 뛰어난 가무에 뼈를 녹이는 운우지정까지 있지 않은가? 하지만 도덕군자인 냥 체면을 중시하는 사대부이나 잠자리에선 별수 없는 사내였을 것이다.

한편 뚝섬으로 나온 청상과부 옥봉은 밤마다 장고와 북을 치면서 밤을 샜다. 장고와 북을 치지 않고 있을 때는 수창을 하였다. 일인이역을 했다. 혼자 사는 청상과부로 알려지면 사내들이 몰려들까 사전에 방어진을 쳤다. 그래도 어떻게 알았는지 옥봉이 조원에게서 쫓겨났다는 것을 알고 그녀를 껄떡이던 사내들이 밤이면 뚝섬 집을 배회하다 발길을 돌린 이들이 수십 명은 족히 되었다.

옥봉의 집은 밤마다 누군가가 와서 장고와 북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고 그녀와 수창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말로 하면 일인극 모노드라마다. 옥봉은 그렇게 정조를 지키며 망부석처럼 조원이 다시 부르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조원은 끝내 소식을 주지 않았다.

옥봉은 낙포의 선녀(仙女:복희씨伏羲氏의 딸 복비宓妃지칭)를 뛰어넘는 아름다음을 가졌다. 그런 옥봉을 조원은 시를 써 금시맹약을 어겼다고 내쫓은 것은 겉으로 드러난 이유다. 진짜 이유는 옥봉이 자신보다 학문이 높아 사내부의 자존심이 구겨졌다는 색다른 주장도 있다.

‘붉은 휘장 너머로 등불이 붉은데/ 자면서도 비단이불 한쪽이 비어있음을 느끼네./ 서리 차가운 새장에선 앵무새 우는데/ 뜨락에 가득한 오동잎 서풍에 지네.’ ≪가을의 슬픔≫이다. 일인이역으로 껄떡이는 사내들을 물리치고 깊은 잠에 빠졌어도 조원 생각뿐이다.

오매불망 운강 생각뿐인 세월은 한강의 물처럼 속절없이 흘러갔다. 헤어지던 전날 밤 뜨겁고 뼈를 녹일 운우지정에도 옥봉의 몸엔 그렇게 원했던 아이는 생기지 않았다. 아이가 생기면 창포에 머리감고 분발라 여성의 아름다음을 꽃피워 조원의 사랑을 독차지 하려 했을 것이다.

그런 꿈으로 옥봉은 조원의 소실이 되었다. 하지만 활화산처럼 용솟음치는 창작에너지를 잠재울 수는 없었다. ‘금시맹약’을 깼다. ≪위인송원≫사건(소위 여성필화사건)이다. 시와 가무를 사랑해 풍류반려로 맺은 부부의 연이 시로 인해 헤어졌다.

옥봉은 불꽃같은 시심에 의지하여 지탱해온 자신의 삶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특히 오동잎이 바람에 우수수 뜨락에 떨어질 때 그녀는 활활 타는 뜨거운 가슴을 쓸어내리며 달랬다.

초겨울 어느 날 밤 슬프도록 아름답고 구성지게 방문 밖으로 흘러나오던 수창소리가 끊겼다. 싸리문도 잠겼고 앙상한 오동나무 밑에 어젯밤에 내린 비로 촉촉이 젖은 잎이 수북이 쌓였다. 분위기로 보아 며칠은 된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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