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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발 건강 뉴스가 세계를 뒤덮고 있다. 지난달 트럼프 행정부는 타이레놀이 자폐 아동 출산 위험을 높인다는 주장을 펼쳤다. 동시에 대중에게는 생소한 류코보린(leucovorin)을 잠재적인 치료제로 내세웠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자폐 아동 치료를 위해 부모들이 류코보린 칼슘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하기까지 했다. 처방약인 류코보린의 의약품 라벨을 개정해서 의사가 처방하기 쉽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과연 이런 해결책이 정말 자폐 아동 치료에 도움이 될까?
류코보린은 비타민 B9, 즉 엽산(folate)의 한 형태이다. 엽산은 DNA와 새로운 세포를 형성하는데 필수적이어서 조직이 빠르게 성장하는 태아, 영아에게 중요하다. 엽산은 시금치 같은 녹색 잎채소나 콩, 감귤류 과일 등 다양한 식품에 자연적으로 존재하지만 가임기 여성에게는 태아의 신경관 결손을 예방하기 위해 엽산 보충제 복용을 권장한다. 류코보린은 일반적 엽산 보충제와는 다르다.
본래 항암 치료를 받는 일부 암 환자에게 투여되는 약이다. 일부 항암제는 암세포를 죽이지만 엽산을 필요로 하는 건강한 세포에도 해를 끼칠 수 있는데, 류코보린은 이럴 때 엽산보충제 역할을 수행하여 건강한 세포가 회복하는 것을 돕고 부작용을 줄여준다. 5-FU 같은 항암제는 류코보린을 함께 사용하면 효과가 증강되기도 한다.
류코보린이 자폐 아동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추측은 아직 초기 단계인 일부 연구에 근거한다. 자폐스펙트럼장애가 있는 일부 사람은 신경 발달에 필수적인 엽산을 뇌로 운반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으며, 류코보린이 뇌로 엽산 전달을 도와줄 수 있다는 가설이다. 임신 중 낮은 엽산 수치가 자폐증 위험 증가와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일부 연구에서는 류코보린이 자폐 아동의 부분적 증상 개선 효과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해당 연구들이 상당한 약점을 가지고 있으며 더 큰 규모로 재현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는 목소리가 크다. 뇌에서 엽산이 결핍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기에, 엽산 보충이 자폐스펙트럼장애 환자에게 도움이 될 가능성도 낮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관점에서는 자폐의 원인도 해결책도 매우 간단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자폐는 복잡한 질환이다. 원인은 여러 가지로 생각되지만 그중에서도 유전적 요인이 가장 큰 것으로 추측된다.
자폐과학재단의 설립자이며 회장인 앨리슨 싱어가 자폐와 관련한 “지속적인 투자와 연구에 가장 가치있는 길은 유전학에 있다”고 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내 자폐스펙트럼장애 진단 아동 수의 증가가 마치 임신부의 타이레놀 복용 때문인 것처럼 몰아가려 하지만, 과학자들은 진단 기준의 확대와 선별 검사의 발달이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한다. 과거에는 자폐로 진단되지 않았을 경계선상의 아동이 이제는 진단 범위에 포함되면서 전체 수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이번 발표의 파장은 컸다. 미국에서는 류코보린과 동일 성분이 저용량으로 들어간 보충제를 구입하려는 사람이 급증하면서 일부 온라인 쇼핑몰에서 품절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이는 과학자들의 신중한 언어와 대중이 듣고 싶어하는 확신에 찬 말 사이의 간극 때문에 생기는 문제이기도 하다. 과학자들은 류코보린의 효과가 과장되었을 수 있으며, 주류 치료법이 되기 전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단호한 표현을 선호한다.
“효과가 없다”는 말은 명쾌하지만 “효과가 과장되었을 수 있다”는 말은 모호하게 들린다.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는 말은 마치 연구를 더하면 효과가 입증될 것처럼 오해될 수 있다. 하지만 학계의 이런 조심스런 표현은 현재로서는 그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뜻이다. 애초에 엽산 결핍이 원인인 경우가 극히 드문데 엽산 보충이 증상 완화에 큰 도움이 될 리 없지 않은가.
이해관계도 의심스럽다. 이번 발표에 트럼프와 함께 한 메디케어의 수장 메멧 오즈는 과거 보충제 판매사인 아이허브의 홍보 담당자이자 지분 보유자였다. 타이레놀 관련 발표에 앞서 트럼프 행정부에 조언한 것으로 알려진 하버드 공중보건대학원 학장 안드레아 바카렐리는 관련 소송에서 증인으로 활동하며 15만 달러를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됐다.
보건의료분야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헛발질은 계속될 것이다. 그럴수록 더 많은 전문가가 비과학적 주장에 맞서 단호하고 분명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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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발 건강 뉴스가 세계를 뒤덮고 있다. 지난달 트럼프 행정부는 타이레놀이 자폐 아동 출산 위험을 높인다는 주장을 펼쳤다. 동시에 대중에게는 생소한 류코보린(leucovorin)을 잠재적인 치료제로 내세웠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자폐 아동 치료를 위해 부모들이 류코보린 칼슘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하기까지 했다. 처방약인 류코보린의 의약품 라벨을 개정해서 의사가 처방하기 쉽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과연 이런 해결책이 정말 자폐 아동 치료에 도움이 될까?
류코보린은 비타민 B9, 즉 엽산(folate)의 한 형태이다. 엽산은 DNA와 새로운 세포를 형성하는데 필수적이어서 조직이 빠르게 성장하는 태아, 영아에게 중요하다. 엽산은 시금치 같은 녹색 잎채소나 콩, 감귤류 과일 등 다양한 식품에 자연적으로 존재하지만 가임기 여성에게는 태아의 신경관 결손을 예방하기 위해 엽산 보충제 복용을 권장한다. 류코보린은 일반적 엽산 보충제와는 다르다.
본래 항암 치료를 받는 일부 암 환자에게 투여되는 약이다. 일부 항암제는 암세포를 죽이지만 엽산을 필요로 하는 건강한 세포에도 해를 끼칠 수 있는데, 류코보린은 이럴 때 엽산보충제 역할을 수행하여 건강한 세포가 회복하는 것을 돕고 부작용을 줄여준다. 5-FU 같은 항암제는 류코보린을 함께 사용하면 효과가 증강되기도 한다.
류코보린이 자폐 아동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추측은 아직 초기 단계인 일부 연구에 근거한다. 자폐스펙트럼장애가 있는 일부 사람은 신경 발달에 필수적인 엽산을 뇌로 운반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으며, 류코보린이 뇌로 엽산 전달을 도와줄 수 있다는 가설이다. 임신 중 낮은 엽산 수치가 자폐증 위험 증가와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일부 연구에서는 류코보린이 자폐 아동의 부분적 증상 개선 효과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해당 연구들이 상당한 약점을 가지고 있으며 더 큰 규모로 재현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는 목소리가 크다. 뇌에서 엽산이 결핍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기에, 엽산 보충이 자폐스펙트럼장애 환자에게 도움이 될 가능성도 낮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관점에서는 자폐의 원인도 해결책도 매우 간단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자폐는 복잡한 질환이다. 원인은 여러 가지로 생각되지만 그중에서도 유전적 요인이 가장 큰 것으로 추측된다.
자폐과학재단의 설립자이며 회장인 앨리슨 싱어가 자폐와 관련한 “지속적인 투자와 연구에 가장 가치있는 길은 유전학에 있다”고 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내 자폐스펙트럼장애 진단 아동 수의 증가가 마치 임신부의 타이레놀 복용 때문인 것처럼 몰아가려 하지만, 과학자들은 진단 기준의 확대와 선별 검사의 발달이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한다. 과거에는 자폐로 진단되지 않았을 경계선상의 아동이 이제는 진단 범위에 포함되면서 전체 수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이번 발표의 파장은 컸다. 미국에서는 류코보린과 동일 성분이 저용량으로 들어간 보충제를 구입하려는 사람이 급증하면서 일부 온라인 쇼핑몰에서 품절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이는 과학자들의 신중한 언어와 대중이 듣고 싶어하는 확신에 찬 말 사이의 간극 때문에 생기는 문제이기도 하다. 과학자들은 류코보린의 효과가 과장되었을 수 있으며, 주류 치료법이 되기 전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단호한 표현을 선호한다.
“효과가 없다”는 말은 명쾌하지만 “효과가 과장되었을 수 있다”는 말은 모호하게 들린다.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는 말은 마치 연구를 더하면 효과가 입증될 것처럼 오해될 수 있다. 하지만 학계의 이런 조심스런 표현은 현재로서는 그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뜻이다. 애초에 엽산 결핍이 원인인 경우가 극히 드문데 엽산 보충이 증상 완화에 큰 도움이 될 리 없지 않은가.
이해관계도 의심스럽다. 이번 발표에 트럼프와 함께 한 메디케어의 수장 메멧 오즈는 과거 보충제 판매사인 아이허브의 홍보 담당자이자 지분 보유자였다. 타이레놀 관련 발표에 앞서 트럼프 행정부에 조언한 것으로 알려진 하버드 공중보건대학원 학장 안드레아 바카렐리는 관련 소송에서 증인으로 활동하며 15만 달러를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됐다.
보건의료분야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헛발질은 계속될 것이다. 그럴수록 더 많은 전문가가 비과학적 주장에 맞서 단호하고 분명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