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덕근 CVS Pharmacy, Chief pharmacist상담 창구에 30세 전후로 보이는 백인 아가씨가 다소곳이 서있다. 아무말도 없이 서 있길래 다가가서 May I help you? 했더니 상담이 필요하단다. 아주 조용히 얘기를 꺼내는데 어제 인공 임신중절을 했는데 배가 많이 아프단다. 그래서 마약 진통제인 Percocet의 처방전을 받아왔는데 얼마나 오랫동안 아프겠냐고 물어온다. 속으로 내가 그것을 어떻게 알아요? 하면서 대강 3-4일은 갈 거라고 했다.
그런데 또 하나 불쑥 꺼내는 처방전이 비스테로이드 약물에 의한 위궤양에 쓰이는 Cytotec(제네릭명:Misoprostol)처방전이었다. 이 약은 강력한 유산 부작용효과(?)가 있어 본 효과인 위궤양 치료보다는 임신 중절의 목적으로 가끔 처방된다. 이 약은 정제이므로 위궤양 치료로는 경구로 투여하지만, 유산의 목적으로는 질좌제로 투여하기도 한다. 그러니 이 아가씨 그게 궁금했나보다. 이 약이 질 안에서 녹느냐고 물어 온다. 물론 이 약은 질 안에서 녹는다. 아마 중절효과를 확실히 하고 싶어 의사가 이 약을 처방했나 본데 어쨋거나 처방전대로 4알을 하루에 한알씩 질 안에 투여하라고 하고 Percocet과 같이 주고 돌려 보냈다. 계속 아프면 의사에게 연락하라는 말과 함께. 그런데 이 아가씨 계속 대화 중에 손을 약간씩 떤다. 말소리도 힘이 없고 조용하고. 아마 수술 때문에 아프기도 하고 죄책감에서도 그런 걸거다. 사실 살인을 한 게 아닌가? 그것도 자기 자식을.
한국에서 피임약에 대한 논란이 화제다. 사후 피임약은 전문약에서 일반약으로 돌리고 사전 피임약은 일반약에서 전문약으로 전환하겠다는 보건당국의 방침에 대해 약사, 의사, 그리고 여성단체들이 각자 서로의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는 사후피임약은 만 17-18세 이상에게만 판매할 수 있는 일반약으로 2006년에 전문약에서 일반약으로 전환되었고 사전피임약은 의사의 처방전이 필요한 전문약으로 한 번도 일반약으로 판매된 역사가 없다.
Plan B로 판매되는 사후피임약이 미국에서 전문약에서 일반약으로 전환할 때도 많은 진통이 있었다. FDA의 한 심사관은 그 결정에 항의하는 뜻으로 사표를 내었고 한국에서와 같이 종교단체들의 반발도 있었다. 하지만 위의 예와 같이 피임의 실패로 인해 낙태로 이어지는 최악의 상태를 막고자하는 뜻이 보다 강력하여 사후 피임약의 일반약 전환은 결국 이뤄지게 되었다.
사전피임약은 한 번 복용하게 되면 계속 복용하는 것이 통례이고 특히 호르몬 제제이므로 의사와 상의한 후 복용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간혹 이 약군의 부작용 사례도 보고 되고 있고 환자가 자기 몸에 맞는 약을 찾는 데 의사의 도움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지난 40여년간 일반약으로 의사 처방 없이 사용하던 것을 갑자기 처방약으로 전환하는 데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특별히 전문약으로 전환해야할 의학적 문제가 최근 발견된 것도 아닌데 그냥 미국의 예를 따라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여성의 정서 문제도 있고 비용 문제도 만만치 않아 결정에 보다 신중을 기했으면 한다.
우리나라처럼 의사와 약사간의 대립이 심한 나라도 없다. 사실 이번 결정은 의사와 약사 눈치를 보다 양쪽에 한 가지씩 던져 준 것 같은 인상인데 정부의 결정이 각 이익 단체의 수익을 보장해 주는 식으로 이뤄져서는 안된다. 당연한 말이지만 모든 결정은 국민의 편에서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각 이익단체도 결정에 수긍하게 되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 정부에서는 여성의 권익 차원에서 인공 유산을 법으로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각 주마다 개별법이 있어 인공 유산을 허용하지 않는 주가 있다. 다행히(?) 메릴랜드는 인공 유산을 허용하고 있어 위와같은 약을 조제하는데 문제가 되진 않는다. 하지만 인공유산은 언제나 미국 대선의 단골 메뉴이다. 올해 벌어지는 대선에서도 민주당은 abortion을 허용하고 있지만 공화당은 강력하게 abortion의 금지를 주장하고 있다. 어쨋거나 법이 허용하던 금지하던 자기 애를 죽이는 불행한 사태는 막는 것이 최선이다. 갖가지 피임약의 사용, 콘돔, 사전피임약 그리고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사후 피임약이라도 동원해서 최소한 자기 자식을 죽이는 불행한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