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덕근 CVS Pharmacy, Chief pharmacist아프리카 서부에 감비아라는 인구 200만의 작은 나라가 있다. 알랙스 헤일리의 <뿌리> 로 유명한 나라이다. 국토는 주변국가들에 의해 둘러쌓여져 있고 자원이라고는 매장된 고령토 뿐이라서 국민들의 생활수준은 아프리카 국가들중에서 최하를 달리는 국가중의 하나다. 그랬기 때문인지 과거 유럽 열강의 식민지 수탈시대에 감비아 서쪽 해안은 '노예해안'으로 불리워지며 이곳에서 노예무역이 다각적으로 이루어졌다. 그 자신이 이 나라의 흑인 후손이었던 소설가 알렉스 헤일리는 자서전적 다큐멘터리 소설 <뿌리>를 발표하며 당시의 잔혹했던 역사를 세상에 공표했었다.
우리 약국엔 이 작은 나라 감비아에서 온 반타라는 테크니션이 있다. 얼마전엔 반타의 사촌인 말릭이 들어 왔으니 감비아 출신이 약국에 벌써 2명이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프론트 스토아에도 2명의 감비아 출신이 있었다. 그리고 이웃의 슈퍼에도 감비아 출신이 서넛 있고. 주유소에도 몇 명 더 있단다. 아프리카 출신의 조그만 나라 감비아에서 온 청년들이 나란히 같은 장소에서 일하고 있다. 그 나라 인구수로 봐서 확률적으로 이렇게 많은 감비아 청년이 한곳에서 근무하기는 힘들 텐데 결국은 반타가 말릭을 소개했듯 서로서로 친척이나 친구를 소개해서 같은 장소에서 근무하게 된 것이다.
한국 이민 사회에서도 같은 이치가 적용되어 공항에 마중 나온 분이 세탁소를 하면 새로 오신 분도 세탁소를 새로 열게 되고, 마중 나온 분이 식품점을 하면 새로 오신 분도 식품점을 시작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미국 사회에 적응하기 쉽지 않다는 뜻도 되고, 그냥 제일 잘 아는 사람 따라 시작하고 그렇게 그럭저럭 살게 되는 게 미국이민인 거다.
반타의 아버지는 지금은 은퇴했지만 외교관이었단다. 그래서 반타는 아버지를 따라 여러 나라를 돌아다닌 경력이 있는데 태어나기는 미국에서 태어났단다. 아무리 나라가 작아도 외교관의 아들이면 그럭저럭 살 만할 텐데 보기에 별로 그런 것 같지가 않다. 아버지가 청렴한 외교관이었는지는 몰라도 여기선 자그만 아파트에 여러 감비아 청년들과 몰려 살고 있고 맨 날 핸드폰 요금을 못내 통화 정지당하기가 빈번하다. 사실 감비아는 이슬람 나라라 아버지가 부인이 둘에 자식이 열이 넘는다니 아무리 전직 외교관이라도 어떻게 그 많은 자식들을 다 챙길 수가 있겠나. 전두환처럼 뒤로 감추는 식의 외교관이었다면 모를까.
지금은 약국에서 테크니션으로 일하면서 2~3년제인 몽고메리 커뮤니티 칼리지를 다니고 있지만 반타의 꿈은 실로 거창하다. 반타는 우선 의사가 되는게 꿈이고 의사가 된 후엔 감비아로 건너가서 의료 봉사를 하면서 신망을 쌓은 후 국회 의원이 되서 정치를 해 보겠단다. 사실 반타가 한국 사람이라면 말도 안 되는 꿈이겠지만 반타는 흑인이고 그래서 소수민족 특혜로 의대 가는게 그리 어렵진 않을테고 감비아출신의 미국 의사면 감비아 국민들에게 충분히 어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난 지금 감비아의 미래 대통령과 한 자리에서 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옛날에 우리 선배들이 미국에 유학 와서 접시 닦기로 일하면서 공부하던 게 바로 반타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일게다. 그 때 그 한국 유학생들도 그렇게 어렵게 공부 해서 한국에 돌아가 한자리씩 차지 했었으니까… 어쨋든 반타에게 잘 보여야겠다. 혹시 아나 나중에 반타가 감비아의 대통령이 되어 감비아 대통령궁에 날 초대할런지.
▲ 이덕근 CVS Pharmacy, Chief pharmacist아프리카 서부에 감비아라는 인구 200만의 작은 나라가 있다. 알랙스 헤일리의 <뿌리> 로 유명한 나라이다. 국토는 주변국가들에 의해 둘러쌓여져 있고 자원이라고는 매장된 고령토 뿐이라서 국민들의 생활수준은 아프리카 국가들중에서 최하를 달리는 국가중의 하나다. 그랬기 때문인지 과거 유럽 열강의 식민지 수탈시대에 감비아 서쪽 해안은 '노예해안'으로 불리워지며 이곳에서 노예무역이 다각적으로 이루어졌다. 그 자신이 이 나라의 흑인 후손이었던 소설가 알렉스 헤일리는 자서전적 다큐멘터리 소설 <뿌리>를 발표하며 당시의 잔혹했던 역사를 세상에 공표했었다.
우리 약국엔 이 작은 나라 감비아에서 온 반타라는 테크니션이 있다. 얼마전엔 반타의 사촌인 말릭이 들어 왔으니 감비아 출신이 약국에 벌써 2명이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프론트 스토아에도 2명의 감비아 출신이 있었다. 그리고 이웃의 슈퍼에도 감비아 출신이 서넛 있고. 주유소에도 몇 명 더 있단다. 아프리카 출신의 조그만 나라 감비아에서 온 청년들이 나란히 같은 장소에서 일하고 있다. 그 나라 인구수로 봐서 확률적으로 이렇게 많은 감비아 청년이 한곳에서 근무하기는 힘들 텐데 결국은 반타가 말릭을 소개했듯 서로서로 친척이나 친구를 소개해서 같은 장소에서 근무하게 된 것이다.
한국 이민 사회에서도 같은 이치가 적용되어 공항에 마중 나온 분이 세탁소를 하면 새로 오신 분도 세탁소를 새로 열게 되고, 마중 나온 분이 식품점을 하면 새로 오신 분도 식품점을 시작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미국 사회에 적응하기 쉽지 않다는 뜻도 되고, 그냥 제일 잘 아는 사람 따라 시작하고 그렇게 그럭저럭 살게 되는 게 미국이민인 거다.
반타의 아버지는 지금은 은퇴했지만 외교관이었단다. 그래서 반타는 아버지를 따라 여러 나라를 돌아다닌 경력이 있는데 태어나기는 미국에서 태어났단다. 아무리 나라가 작아도 외교관의 아들이면 그럭저럭 살 만할 텐데 보기에 별로 그런 것 같지가 않다. 아버지가 청렴한 외교관이었는지는 몰라도 여기선 자그만 아파트에 여러 감비아 청년들과 몰려 살고 있고 맨 날 핸드폰 요금을 못내 통화 정지당하기가 빈번하다. 사실 감비아는 이슬람 나라라 아버지가 부인이 둘에 자식이 열이 넘는다니 아무리 전직 외교관이라도 어떻게 그 많은 자식들을 다 챙길 수가 있겠나. 전두환처럼 뒤로 감추는 식의 외교관이었다면 모를까.
지금은 약국에서 테크니션으로 일하면서 2~3년제인 몽고메리 커뮤니티 칼리지를 다니고 있지만 반타의 꿈은 실로 거창하다. 반타는 우선 의사가 되는게 꿈이고 의사가 된 후엔 감비아로 건너가서 의료 봉사를 하면서 신망을 쌓은 후 국회 의원이 되서 정치를 해 보겠단다. 사실 반타가 한국 사람이라면 말도 안 되는 꿈이겠지만 반타는 흑인이고 그래서 소수민족 특혜로 의대 가는게 그리 어렵진 않을테고 감비아출신의 미국 의사면 감비아 국민들에게 충분히 어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난 지금 감비아의 미래 대통령과 한 자리에서 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옛날에 우리 선배들이 미국에 유학 와서 접시 닦기로 일하면서 공부하던 게 바로 반타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일게다. 그 때 그 한국 유학생들도 그렇게 어렵게 공부 해서 한국에 돌아가 한자리씩 차지 했었으니까… 어쨋든 반타에게 잘 보여야겠다. 혹시 아나 나중에 반타가 감비아의 대통령이 되어 감비아 대통령궁에 날 초대할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