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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라비린토스 '팔라우'
약사 스쿠버다이빙 동호회 김재농 약사
입력 2008-08-13 07:19 수정 최종수정 2008-08-20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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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르로 떠나는 늦은 오후 한컷…

뜨거운 태양이 대지를 태우는 여름. 많은 사람들이 푸른 바다를 떠올리는 계절이다. 이번 호에는 바쁜 일상 속에서도 짬짬이 국내외 각지를 다니며 푸른 바다 속 별천지의 매력에 빠져드는 약사스쿠버다이빙 동호회 회원 김재농 약사(남양주시약사회 회장)가 지난해 3월 필리핀 남쪽 태평양의 작은 섬 국가 '팔라우'에서의 경험과 감동을 담은 수필을 한편 소개한다.

삼지창을 비껴들고 따라온다. 보트가 긴 꼬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날 살려라 도망간다. 창을 던지려는 순간 섬 모퉁이를 휙 돌아 간신히 위기를 모면한다. 그러나 어느 새 다시 나타난 포세이돈이 험상궂게 씩씩거린다. 튼튼한 근육질의 팔로 무시무시한 삼지창을 다시 치켜든다. 저 창을 맞기만 하면 보트는 박살나고 말 것이다.
절박한 순간, 아뿔싸 모퉁이를 돌아 좁은 수로로 쏜살같이 내닫는다. 얽히고 설킨 좁은 수로(水路)에서 필사의 탈출을 시도하지만 갈수록 미궁(迷宮)이다.

펠릴리우에서 3일간의 다이빙을 마치고 MAML(현지 말로 나폴레온 피시를 일컫는다함)리조트를 떠나 코로르로 향했다. 늦은 오후다. 450마력짜리 모터를 2개나 장착하고 풀 스피드로 달린다. 잔잔한 바다 위를 바람처럼 날아간다. 제우스의 전령 헤르메스가 황금구두를 신었다 한들 이렇게 빨랐을까! 수많은 섬들 사이를 잘도 찾아간다. 아슬아슬하게 섬들을 휘감으며 달리는 모습이 마치 삼지창을 치켜들고 뒤쫓는 포세이돈에 쫓겨가는 듯 하더라.

그런데 이정표도 없는 이 많은 섬들을 어떻게 알고 방향을 잡아간단 말인가. 혹시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은 아닐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수가 없다. 크레타 섬의 신화 아리아드네의 실타래 생각이 난다. 테세우스를 라비린토스(미궁)에서 무사히 빠져나오게 했던 구명줄이 아닌가! 그렇지 않고서야 이 질곡을 어떻게 빠져나갈 수 있을까.

어느덧 노을이 진다. 빛을 잃은 태양이 섬들 사이로 숨바꼭질하더니 점점 더 커진다. 짙어가는 노을과 더불어 바야흐로 클라이맥스다. 그때 “스톱!” 배를 멈추라는 고함 소리가 터진다. 갈 길도 바쁜데…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소주도 한잔 하잔다. 좀 전에 팔라우 해양경찰로부터 얻은 감성돔 2마리가 도마에 올랐다. 이렇게 석양을 등지고 어딘지도 모르는 바다위에서 파티가 벌어진 것이다. 진홍빛으로 타오르는 태양은 가마솥뚜껑만큼 커졌다. 환성이 터진다.

태양신 아폴론과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가 임무 교대할 땐 언제나 저렇게 거창한 의식을 치른다. 강렬하고 난폭한 태양마차가 서녘 하늘에 도착하면 이제 막 사냥에서 돌아온 아르테미스가 환영을 나온다. 아름다운 그녀가 지배하는 밤하늘은 은은하고 부드럽다. 감미로운 사랑의 시간이다. 자 노래를 불러라! 사랑을 찬미하고 바다를 사랑하는 노래를 부르자! 새벽의 여신 에오스가 동녘하늘에 장미를 뿌릴 때까지…

팔라우에는 약 340개의 섬이 있다. 인구는 2만 명 정도… 이렇게 작은 나라도 있을 수 있을까. 그러나 아주 잘살고 있다.

수도인 코로르에 도착하여 한국인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데, 주인아주머니는 거의 20년 전에 이곳에 왔다고 한다. 먹고살고 아이들 교육하는데 아무런 걱정이 없단다.
마침 그날 저녁에 자기 식당에서 대통령과 장관이 참석하는 모임이 있다고 했다. 돌아가면서 한턱씩 내는 계모임이란다. 이렇게 팔라우공화국은 오순도순 살아가는 재미있는 나라였다. 그러나 열대지방이면서도 산물(産物)이 없어 생필품은 물론이요 과일마저도 수입해서 살아가고 있다. 섬은 많으나 모두가 척박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락-아일랜드(Rock Islands)에는 많은 섬들이 모여 있는데 모두가 버섯처럼 특이하게 생겼다. 작고 가파른 바윗덩어리다. 그러나 좁쌀처럼 흩어져있는 볼품없는 섬들이지만 태평양 한 복판에 떠 있으니, 군사적인 가치가 대단하다.

우리가 묵었던 펠릴리우 섬은 태평양 전쟁당시 격전지로 유명하다. 섬의 곳곳에는 아직도 그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풀숲에 가려진 일본군들의 동굴이며 진지들… 다이빙 후 점심을 먹곤 했던 CAMBECK이라는 휴식공간은 바다의 요새였다. 언덕과 숲으로 위장된 요새엔 녹슨 철골 구조물이 당시 해전의 치열함을 일러주고 있다.

또한 수평선을 향해 화구를 치켜들고 있는 부서진 대포며, 바다 속에 잠겨있는 수많은 비행기의 잔해들… 저 악명 높은 가미가제의 유품들이다. 모두가 태평양전쟁말기 일본군들의 처절한 최후를 말해 주고 있다. 또한 이곳에는 ‘아이고다리’라는 것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끌려간 사람들이 강제노역으로 만든 교량이라 했다.

그런데 이해하지 못할 것은 팔라우의 국기다. 하얀 바탕에 붉은 태양이 일장기라면, 푸른  바탕에 하얀 태양이 팔라우의 국기다. 그들의 온 국민을 처참하게 짓밟은  일본! 그 철천지원수를 벌서 잊었단 말인가! 아니면 일장기를 능가하겠다는 그들의 결연한 정신일까!

아침에 눈을 뜨니 자동차 소음만 요란하다. 코로르는 팔라우의 수도다. 인구가 워낙 적어 우리나라의 면이나 읍 소재지만 하지만 있을 건 다 있다. 대통령 궁이며 비행장, 호텔이며 쇼핑센터도 있다. 그러나 팔라우에서 구경할 것은 아무래도 자연이다.

오늘은 자유다. 가자, 록-아일랜드로! 보-트는 거침없이 바다를 가른다. 록-아일랜드는 작은 바위섬과 짙푸른 숲, 그리고 정적이 감도는 아름다운 운치를 가지고 있다. 라비린토스와 같은 바다의 미로(迷路)가 오히려 자연의 신비로움을 더해준다.

보트가 멈춘 곳은 섬들 사이에 있는 하얀 바다였다. 이미 다른 보트들도 와있다. 가이드 아가씨가 먼저 뛰어내려 바다 속으로 물구나무를 서더니 하얀 진흙을 한 움큼 쥐고 나온다. 산호라 했다. 족히 수천만 년 넘게 연마된 작품이 아닌가. 감동적이다. 너도 나도 뛰어든다.

가이드가 이마를 조심하라 했지만 나 역시 이마를 부딪치고 말았다. 너무 하얗게 반사되므로 어디가 바닥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바스켓에다 진흙을 담는 것이 아닌가. 아니 저 귀한 것을 저렇게 손상하면 어떻게 되는 거야?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갑판위로 올라왔다. 온몸에 산호를 발랐다. 눈만 빼놓고 하얗게 하얗게… 누가 누군지 알 수가 없다. 산호 팩을 다한 후에는 다시 바다에 뛰어들어 몸을 헹군다. 그제야 의문이 풀렸다. 산호 진흙은 그 자리에 되돌려 준다는 것을…

자리를 옮겨 대왕조개(Giant Clam) 양식장을 구경하고 젤리피시(해파리) 호수로 뱃머리를 돌렸다. 핀(오리발)과 물안경을 들고 산을 오른다.

다행히 숲이 울창하여 햇볕 걱정은 없었지만 경사가 상당히 급하다. 산을 넘으니 과연 호수가 나타났다. 부의(浮衣) 하나씩을 빌려 입고 호수로 들어갔다. 담수라고는 하지만 물맛을 보니 짭짤하다.

아마도 민물과 바닷물이 섞였나 보다. 호수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해파리가 많다. 몸에 닿을 때는 미끈미끈한 것이 약간 징그럽다.

그런데 이곳에 있는 해파리는 바다에 있는 것보다 작다. 밤톨만한 것에서부터 아이들 머리만 한 것에 이르기까지 크기가 다양하다. 삿갓을 벌렁거리며 이동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관찰하니 그도 재미있다.

특이한 것은 독소가 없다는 것이다. 천적이 없는 곳에서 오랜 세월 갇혀 사느라 독성을 내는 기관이 퇴화되었다는 것이다. 다윈의 진화론을 증명하는 현장이기도 하다. 물 속으로 깊게 잠수해 들어가면 무수한 해파리들이 떠오른다.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그리고는 어느 무인도에 상륙했다. 버섯을 닮은 바위섬들은 삿갓의 경사가 급하기도 하지만 물 위에 떠있어 배나 사람이 접근할 수가 없다. 그러나 가끔씩 손바닥만한 모래사장을 가지고 있는 섬들도 있다. 그늘이 좋아 쉬기에 안성맞춤이다.

마침 그곳에선 신혼부부들이 체험다이빙을 하고 있었다. 강사가 설명을 하고 사진 찍어주고 바다에 데리고 들어가고 한다. 정한대로 규칙대로 한다. 결혼식도 판에 박은 듯이 찍어내더니 체험다이빙도 양산체제를 갖추었다.

그래도 재미있고 신기하다고 좋아들 한다. 그런데 이 섬에는 위안부 수용소가 있다고 해서 찾아보았다. 모래사장 뒤쪽으로 돌아갔는데 찾을 수 가 없다. 어림잡아 바위틈을 기어오르니 아니나 다를까 넓은 공간이 나왔다. 험한 바위들이 앞을 가리고 있어 얼핏 보아서는 전혀 발견할 수가 없는 장소였다. 한창 여론의 비난을 받고 있는 현장이 아닌가. 전쟁과 욕정이 빚어낸 인간의 비극이다.

귀국 비행기에 올라보니 옆자리에 신혼부부가 앉았는데 자세히 보니 갈 때도 그 자리에 앉았던 커플이다. 그러고 보니 창가 쪽으로는 모두 2자리를 신혼부부가 차지하고 통로 쪽 남은 한 자리에 일반 손님을 태웠다.

우리 일행도 8명이나 되지만 모두가 외톨이가 되어 신혼부부 옆자리를 메워주는 신세가 되었더라. 그들은 신혼의 단맛을 보았겠지만 우리는 바다의 단맛을 그곳에서 보았다. 세대와 나이에 따라 단맛의 종류는 다르겠지만 그 기쁨은 같은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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