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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비지니스 프랜들리
이덕근 CVS Pharmacy, Chief pharmacist
입력 2008-08-13 07:12 수정 최종수정 2008-08-13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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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주몽에서 소서노와 대적하다 나중에 주몽의 휘하에 들어오는 송양군장과 너무나 닮은 나의 동료 약사 미스터 알랜 허버트. 그래서 아내와 나는 그를 송양군장이라고 부른다. 생일 때만 되면 천연덕스럽게 또 21살이 되었다고 말하지만 추정 나이 79세 가량의 노신사. 10여년 전 아내와 사별한 후 혼자 사는 요즘 보기 드문 열녀 아닌 열남. 그러면서 항상 자기는 SSC (Sexy Senior Citizen) 라고 떠벌리는 남자. 유태인이며 아들만 셋이고 반면에 세 손녀딸의 할아버지.

이 약국에서만 30년 이상 근무한 베테랑이면서도 한 번도 Chief 약사를 해보지 못했다. 그냥 늙은 병장이라고나 할까. 안타깝게도 약국에서 서서 일하기 좋게 등이 알맞게(?) 굽었다. 사실은 직업탓이리라. 30년 이상을 같은 자세로 계속 일을 했으니 등이 그에 맞춰 적당히 휘었다. 송양군장의 굽은 등을 보면 안타깝기도 하고 내 20년 후를 보는 것 같기도 하여 씁쓸하기도 하다.

그런데 어디서 스태미나가 나오는지 근무하는 동안 잠시라도 앉아 쉬는 걸 본 적이 없다. 나는 10번도 더 앉건만. 밥도 안 먹고 그냥 스낵으로 적당히 때우고 음료수는 콜라 정도. 대단한 체력이다. 어쩌면 그냥 30여년을 이어 온 관성의 법칙으로 일하시는 것 같기도 하고.

약사라는 특수 영역말고도 미국에는 정년이라는 게 없다. 미국 국립 보건원에서 일할 때 보면 겨울에도 매일 반바지 입고 뛰어 다니는 괴짜 할아버지가 있었는데 그 분의 추정 나이는 그 때 당시 이미 80이 넘었다고 한다. 정년이 없기 때문에 본인이 스스로 나갈 의사가 없으면 언제든지 그냥 다닐 수 있다. 그래서 유난히 노인들이 현업에 많다. 물론 대부분이 적당한 나이가 되면 은퇴를 하지만 강제성은 없으므로 자율에 맞긴다.

하지만 모든 직업이 그런건 아니고 이런 얘기는 전문직이나 공무원에나 주로 해당되는 일이다. 일반 회사에서는 경쟁이 심하므로 정년은 없지만 적당한 나이가 되면 본의 아니게 나가게 되는 경우도 많고 또 구조조정을 수시로 하기 때문에 오히려 한국보다 직장 안정성은 훨씬 더 떨어진다.

그리고 현재의 미국은 선진국이라 그런지(?) 노조의 파워가 많이 떨어졌고 더군다나 웬만한 기업은 노조도 없다. 그래서 한국 정부가 그렇게 닮고 싶어 하는 소위 ‘비지니스 프랜들리’ 에 의해 노동자 해고가 아주 쉽게 자행되고 있다.

단적인 예로 회사에 입사할 때 신입사원은 입사계약서에 사인을 하게 되는데 대부분의 회사의 입사 계약서엔 ‘at will’이란 조항이 있다. 이 말은 사용자나 종업원이 언제든지 부담없이 헤어질 수 있다란 말이지만 실제론 at-will employee can be fired at any time, for any reason 이란 뜻이다.

심지어 텍사스의 어느 회사에서는 사장이 근로자가 입고 온 옷이 맘에 안든다고 그 노동자를 부당하게 해고한 일이 있었는데 at will 노동자는 이와 같은 터무니 없는 해고에도 법적으로 항변할 길이 없었다고 한다. 무서운 ‘비지니스 프랜들리’의 나라다.

또한 해고 당사자는 자기의 해고 사실을 해고 당일 날 통보 받는다. 그리고 그 날로 경비 입회하에 짐을 싸서 나가야 하기 때문에 무슨 한국식으로 환송식이니 인수 인계니 하는 절차도 없다. 비지니스 프랜들리란 결국 ‘해고 프랜들리’ 인 것이다.

이런식으로 지난 20년 간 미국의 비지니스는 번창하였는진 몰라도 직장의 안정성을 잃은 중산층은 상대적으로 많이 몰락하였다. 성장의 과실이 모두 CEO를 비롯한 임원진 쪽으로 몰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엔 엄청난 갑부는 많이 등장했지만 상대적으로 중산층은 그 만큼 많이 줄어 들었다고 한다.

내가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의 CEO도 작년에 연봉외에 무려 300 만불의 보너스를 받았다 한다. 그 외에 스톡 옵션등을 포함하면 그의 수입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거기에 비하면 스톡 옵션도 못받는 대부분의 약사의 보너스는 그의 1000분의 1을 넘지 않는다. 내가 정말 CEO에 비해 1000분의 1 만큼의 기여밖에 못했을까? 내가 작년에 올린 매출액이 얼만데…

나도 들어올 때 at will 사인을 했다. 하지만 치명적인 실수로 면허가 정지되기 전에 약사인 내가 해고될 확률은 거의 없다. 현재의 약사 수급 행태로 보면 송양군장처럼 현장에서 죽을 때까지 일할 수도 있겠다. 그러니 약사를 직업으로 택한 게 미국에선 정말 잘 한 일이다. 아무쪼록 건강을 유지하면서 천년 만년 약사질(?) 하고 살았으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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