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를 위한 다양한 담론의 실행에 지역약사가 포함되어야 한다

방준석 숙명여대 약학대학 교수
1. 두 담론에 힘을 싣는 하나의 실행축
본지에서 필자와 함께 의견을 개진하는 이충우 교수는 시니어 세대를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생산의 주체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새롭게 고령층에 편입되는 베이비붐 세대의 경제활동 잠재력을 국가성장의 동력으로 전환하자는 주장으로, 초고령사회를 위기가 아닌 산업적 기회로 재해석하는 관점에 필자도 전적으로 공감한다.
또 다른 필진인 이현이 박사는 디지털 헬스케어가 확산되는 과정에서 정작 그것을 매일 사용해야 하는 고령 소비자의 눈높이를 함께 끌고 가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아무리 정교한 기술이라도 사용자가 다루지 못하면 절반의 성공에 그친다는 이 문제의식 역시, 디지털 헬스케어 정책을 논할 때 처음부터 주목해야 할 원칙이라고 본다.
두 담론은 초고령사회를 위기가 아닌 기회로 바꾸는 데 필요한 방향을 이미 제시하고 있다. 필자가 여기에 보태고자 하는 것은 그 방향에 대한 이견이 아니라, 두 담론이 우리나라 현실에서 실제로 뿌리내리도록 만드는 '실행축'이다. 노인이 생산주체로 설 수 있으려면 그 전제가 되는 건강수명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디지털 헬스케어가 고령 소비자에게 온전히 가 닿으려면 그 사용을 매일 곁에서 거들어줄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생산주체론이 '무엇을 위해' 고령화에 대응해야 하는가를, 소비자중심론이 '어떻게 사용하게 할 것인가'를 이미 답하고 있다면, 필자는 그 두 답이 현장에서 매일 작동하도록 만드는 '누가, 어떤 체계로 건강을 관리하는가'라는 실행의 겹을 보태려 한다. 필자는 그 실행축이 지역약국, 더 정확히는 지역약사의 일상적 개입에 있다고 보며 이는 공동 집필진의 통찰을 한국적 현실에 정착시키기 위한 보완적 제안이다.
2. 해외의 두 갈래 길: 일본의 연계망과 미국의 수가체계
1) 일본 - 다직종 데이터 연계로 약국을 돌봄망에 편입시키다
일본은 2000년대 초부터 지역포괄케어시스템(地域包括ケアシステム)을 통해 의료·개호·예방·생활지원을 하나의 생활권 안에서 통합해왔다. 이 체계의 핵심은 병원의료에서 재택의료로 무게중심을 옮기면서 의사, 간호사, 약제사, 요양보호사 등 다직종이 환자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도록 만든 데 있다.
2019년부터는 '지역연계약국'과 '전문의료기관연계약국' 인증제를 도입해, 입·퇴원 시점과 재택의료 이용 시점마다 약국이 다른 의료기관과 정보를 주고받으며 다제약물·중복처방·부작용 가능성을 점검하는 역할을 법제화했다. 여기에 왕진선생이나 HUMAN Bridge 같은 민간 클라우드 서비스가 재택의료진, 방문간호, 약제사 간 정보공유를 기술적으로 뒷받침하면서, 약제사는 더 이상 처방전을 조제하는 마지막 접점이 아니라 돌봄망의 상시 관찰자로 자리잡았다.
2) 미국 - 약국을 수가체계 안으로 끌어들이다
미국은 다른 경로를 택했다. PACE (Program of All-Inclusive Care for the Elderly)는 중증노인을 요양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 머물게 하기 위해 메디케어, 메디케이드 재원을 주간보호센터 하나로 묶어 포괄적으로 지원하는 모델이다. 그러나 더 주목할 대목은 CCM (만성질환관리)과 RPM (원격환자모니터링)이라는 수가체계다.
만성질환을 2개 이상 가진 메디케어 수급자를 대상으로 혈압계, 혈당계 등 커넥티드 기기로 수집한 데이터를 비대면으로 관찰하고 개입하는 서비스에 별도의 청구코드가 마련돼 있으며, 버지니아주에서는 지역약사 네트워크가 주정부, 약사회와 협력해 환자의 혈압·혈당·체중을 직접 원격 모니터링하고 조기 개입하는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CCRC (은퇴자 복합단지) 내부에서도 독립생활-생활지원-요양의 전 단계를 하나의 RPM 플랫폼으로 관통시켜 거주 단계가 바뀌어도 건강데이터의 연속성이 끊기지 않도록 설계돼 있다. 즉, 일본이 '연계'로 약국을 돌봄망에 끌어들였다면, 미국은 '보상'으로 약국을 끌어들인 셈이다. 두 나라 모두 공통적인 것은, 산업 육성이든 소비자 편익이든 그 밑단에 '약사가 매일 관찰하는 구조'를 구축하였다는 점이다.
항목 | 일본 | 미국 |
돌봄 모델 | -지역포괄케어시스템 (생활권 단위의 의료·개호·예방 통합) | - PACE + CCM/RPM (수가에 기반한 개별 서비스 결합) |
약사 진입경로 | -지역연계약국·전문의료기관연계약국 인증제(2019~) | -약국·약사가 CCM/RPM 제공자로 직접 청구 |
디지털 기반 | -다직종 클라우드 정보공유 (왕진선생, HUMAN Bridge 등) | -커넥티드 기기(혈압계·혈당계) + EHR 연동 RPM 플랫폼 |
재정 유인 | -개호보험 수가 내 연계업무 반영 | - CPT 코드 기반 별도 청구 -메디케어/메디케이드 재원 |
한계 | -연계 자체의 인력, 시간 부담 -지역 간 편차 | -저소득·농어촌 접근성 격차 -기기 정확도·데이터 표준화 과제 |
3. 한국의 현실: 기기는 들여놓았지만 약사는 빼놓았다
우리나라도 손을 놓고 있던 것은 아니다.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이미 장기요양 재가수급자를 대상으로 AI 기반 낙상보호 에어백, 디지털 복약알림기, 활동감지시스템을 지원하는 복지용구 예비급여 시범사업을 전국 12개 지역에서 운영 중이며, 복약알림기는 알람과 연동 앱을 통해 보호자가 복약이력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수준까지 와 있다. 그러나 이 설계의 어디에도 지역약사는 없다. 복약알림기가 수집한 데이터는 보호자에게는 전달되지만, 정작 그 약을 조제하고 복약지도를 한 약사에게는 제공되지 않는다.
이현이 박사가 꾸준히 강조해온 디지털 리터러시 문제의식은 바로 이 지점에서 구체적인 해법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기기를 쥐여주는 것과 그것을 스스로, 꾸준히 사용하게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과제이며, 그 간극을 메울 반복적, 대면적 접촉선을 현재 설계에 더해 넣을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국내 디지털헬스케어 시장이 여전히 세계 시장의 0.5% 수준에 머무는 데는 여러 요인이 있겠으나, 비대면 진료, 의약품 배송을 제한하는 법제와 재택 데이터를 임상 현장의 전자의무기록, 약력관리시스템과 연동시키지 못하는 표준화 공백에 더해서, 그 데이터를 매일 해석해줄 전문인력을 설계에 포함하지 못한 점도 함께 지적하고 싶다.
일본처럼 약사를 다직종 연계망에 공식 편입시키거나 미국처럼 약사에게 원격모니터링에 대한 보상을 지급하는 장치를 갖춘다면, 방문약료사업, 다제약물관리사업, 통합약물관리 전문약사제라는 국내 약업계의 기존 자산이 생산주체론과 소비자중심론을 뒷받침하는 훨씬 강한 실행 기반으로 발전할 수 있다.
4. 제도설계: 지역약국을 축으로 한 K-AIP 헬스케어 모델
일본의 연계 모델과 미국의 수가 모델 가운데 어느 하나만 이식해서는 한국형 답이 나오지 않는다. 한국은 이미 방문약료사업과 다제약물관리사업이라는 '연계'의 씨앗과, 통합약물관리 전문약사제라는 '전문성'의 토대를 갖고 있다. 여기에 필요한 것은 미국식 재정유인과 일본식 정보연계를 동시에 붙이는 설계다.
과제 | 내용 |
데이터 연동 | -복지용구 예비급여 복약알림기·낙상감지기기 데이터를 담당 약국의 복약관리시스템에 실시간 연동하여, 약사가 1차 이상징후 관찰자 역할을 수행 |
수가 신설 | -미국 CCM/RPM을 벤치마킹한 '약사 원격복약관리 수가'를 다제약물관리사업 대상자부터 단계적으로 적용 |
법제도 정비 | -지역사회통합돌봄 다직종 협의체에 약사 참여를 명문화하고, 일본의 지역연계약국 인증제에 준하는 국내 인증체계를 설계 |
주거-약국 결합 | - UBRC, K-CCRC 조성 시 부속 또는 인근 지정약국을 '디지털 헬스허브'로 명시하여 설계 단계부터 반영 |
5. 그렇다면 개별 약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제도가 갖춰진다 해도, 그 제도를 실제로 채우는 것은 결국 약국이란 공간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개별 약사의 역할변화다. 지금까지의 논의가 약국이라는 '거점'의 설계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는 그 거점을 운영하는 약사 개개인이 무엇을 다르게 해야 하는지를 구체화할 차례다. 이에 필자는 다섯 가지 역할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첫째, 약사는 데이터의 1차 판독자가 되어야 한다. 복약알림기와 원격모니터링 기기가 쏟아내는 혈압·혈당·복약이행 데이터는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다. 이를 매일 들여다보고 이상징후를 걸러내는 사람이 있어야 데이터가 개입으로 이어진다. 이는 의사의 진단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진단이 필요한 시점을 앞당기는 트리아지(triage) 기능이다.
둘째, 약사는 다직종 케어팀의 상시 구성원이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약사와 케어매니저, 방문간호사의 접점은 처방변경이나 민원이 생겼을 때의 예외적 소통에 머물렀다. 일본의 지역포괄케어가 보여주듯, 정기적인 상담 사례 발표(case conference)에 약사가 상시 참여할 때 비로소 다제약물 문제나 낙상 위험 같은 복합 문제점을 조기에 짚어낼 수 있다.
셋째, 약사는 고령자를 위한 디지털 리터러시 코치(digital literacy coach)가 되어야 한다. 이현이 박사가 지적한 문해력 격차는 일회성 교육으로 좀처럼 메워지지 않는다. 매주 약을 타러 오는 고령환자와 가장 자주, 가장 가까이에서 대면하는 사람이 약사라는 점에서, 기기 사용법과 데이터 확인법을 반복적으로 되짚어주는 역할은 약사가 맡을 때 가장 효율적이다.
넷째, 약사는 복약순응을 넘어 생활습관 전반의 행동변화를 돕는 헬스코치로 확장되어야 한다. 지금의 복약지도가 '약을 잘 드셨습니까'라는 확인형 질문에 머문다면, 앞으로는 축적된 복약, 생리 데이터를 근거로 왜 순응도가 떨어지는지, 무엇을 바꾸면 되는지를 함께 설계하는 상담으로 발전해야 한다.
다섯째, 이 모든 역할전환을 뒷받침할 전문성 재교육 체계가 필요하다. 원격모니터링 데이터 해석과 PHR 연동상담은 기존 약학교육 과정에 없던 역량이다. 통합약물관리 전문약사제와 보수교육 과정에 이 역량을 명시적으로 포함시키지 않으면, 제도만 있고 그 제도를 채울 사람은 없는 상황이 반복될 것이다.
기능 | 기존 역할 | 확장되어야 할 역할 |
정보처리 | -처방전에 따른 조제·투약 | -복약알림기·RPM 기기가 보내는 생체·복약 데이터를 1차 판독하고, 이상징후를 조기에 걸러내는 트리아지(triage) 담당자 |
협업 | -의사 처방에 대한 사후적 감사(audit) 역할 | -케어매니저·방문간호사·사회복지사와의 정기 케이스컨퍼런스에 상시 참여하는 다직종 팀원 |
교육 | -복약지도 시점의 1회성 설명 | -디지털 기기 사용법과 데이터 확인법을 반복적으로 가르치는 고령자 전담 디지털 리터러시 코치 |
행동변화 | -복약순응도 확인 질문 | -생활습관·복약 패턴 데이터를 근거로 한 동기부여 상담(헬스코칭)을 정기적으로 수행 |
전문성 | -약학지식 중심의 단일 역량 | -원격모니터링 데이터 해석, PHR 연동 상담을 포함하는 보수교육·전문약사 자격의 확장 대상 |
6. 결론: 두 담론이 현실이 되는 지점, 지역약사
이충우 교수의 ‘생산주체론’과 이현이 박사의 ‘소비자중심론’은 초고령사회를 바라보는 가장 중요한 두 개의 출발점이며, 필자는 이를 전적으로 지지한다. 이번 칼럼에서 필자가 보태고자 한 것은 그 두 담론이 우리나라 현실에서 힘있게 뿌리내리기 위한 실행의 조건이다.
노인이 경제활동을 이어가려면 먼저 건강해야 하고, 디지털 헬스케어가 소비자에게 가 닿으려면 먼저 그것을 꾸준히 쓰게 만드는 누군가가 가까이 곁에 있어야 한다. 그 조건은 산업정책이나 소비자교육 캠페인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매일의 현장에서 완성되도록 뒷받침하는 미시적 실행층이다.
지역약국이 있고, 그 안에 있는 약사가 데이터를 읽고, 다직종과 협업하고, 기기 사용법을 가르치고, 행동변화를 돕는 존재로 발전할 때, 생산주체론과 소비자중심론은 선언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실제 모습이 될 수 있다.
초고령사회 담론의 다음 장은 두 분이 제시한 방향을 부정하거나 진위를 논하는 것이 아닌, 그 방향을 매일 실행할 주체를 함께 세우는 일이어야 한다. 그 주체로서 지역약사가 제 역할을 하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약업계에 남은 시급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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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령사회를 위한 다양한 담론의 실행에 지역약사가 포함되어야 한다

방준석 숙명여대 약학대학 교수
1. 두 담론에 힘을 싣는 하나의 실행축
본지에서 필자와 함께 의견을 개진하는 이충우 교수는 시니어 세대를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생산의 주체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새롭게 고령층에 편입되는 베이비붐 세대의 경제활동 잠재력을 국가성장의 동력으로 전환하자는 주장으로, 초고령사회를 위기가 아닌 산업적 기회로 재해석하는 관점에 필자도 전적으로 공감한다.
또 다른 필진인 이현이 박사는 디지털 헬스케어가 확산되는 과정에서 정작 그것을 매일 사용해야 하는 고령 소비자의 눈높이를 함께 끌고 가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아무리 정교한 기술이라도 사용자가 다루지 못하면 절반의 성공에 그친다는 이 문제의식 역시, 디지털 헬스케어 정책을 논할 때 처음부터 주목해야 할 원칙이라고 본다.
두 담론은 초고령사회를 위기가 아닌 기회로 바꾸는 데 필요한 방향을 이미 제시하고 있다. 필자가 여기에 보태고자 하는 것은 그 방향에 대한 이견이 아니라, 두 담론이 우리나라 현실에서 실제로 뿌리내리도록 만드는 '실행축'이다. 노인이 생산주체로 설 수 있으려면 그 전제가 되는 건강수명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디지털 헬스케어가 고령 소비자에게 온전히 가 닿으려면 그 사용을 매일 곁에서 거들어줄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생산주체론이 '무엇을 위해' 고령화에 대응해야 하는가를, 소비자중심론이 '어떻게 사용하게 할 것인가'를 이미 답하고 있다면, 필자는 그 두 답이 현장에서 매일 작동하도록 만드는 '누가, 어떤 체계로 건강을 관리하는가'라는 실행의 겹을 보태려 한다. 필자는 그 실행축이 지역약국, 더 정확히는 지역약사의 일상적 개입에 있다고 보며 이는 공동 집필진의 통찰을 한국적 현실에 정착시키기 위한 보완적 제안이다.
2. 해외의 두 갈래 길: 일본의 연계망과 미국의 수가체계
1) 일본 - 다직종 데이터 연계로 약국을 돌봄망에 편입시키다
일본은 2000년대 초부터 지역포괄케어시스템(地域包括ケアシステム)을 통해 의료·개호·예방·생활지원을 하나의 생활권 안에서 통합해왔다. 이 체계의 핵심은 병원의료에서 재택의료로 무게중심을 옮기면서 의사, 간호사, 약제사, 요양보호사 등 다직종이 환자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도록 만든 데 있다.
2019년부터는 '지역연계약국'과 '전문의료기관연계약국' 인증제를 도입해, 입·퇴원 시점과 재택의료 이용 시점마다 약국이 다른 의료기관과 정보를 주고받으며 다제약물·중복처방·부작용 가능성을 점검하는 역할을 법제화했다. 여기에 왕진선생이나 HUMAN Bridge 같은 민간 클라우드 서비스가 재택의료진, 방문간호, 약제사 간 정보공유를 기술적으로 뒷받침하면서, 약제사는 더 이상 처방전을 조제하는 마지막 접점이 아니라 돌봄망의 상시 관찰자로 자리잡았다.
2) 미국 - 약국을 수가체계 안으로 끌어들이다
미국은 다른 경로를 택했다. PACE (Program of All-Inclusive Care for the Elderly)는 중증노인을 요양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 머물게 하기 위해 메디케어, 메디케이드 재원을 주간보호센터 하나로 묶어 포괄적으로 지원하는 모델이다. 그러나 더 주목할 대목은 CCM (만성질환관리)과 RPM (원격환자모니터링)이라는 수가체계다.
만성질환을 2개 이상 가진 메디케어 수급자를 대상으로 혈압계, 혈당계 등 커넥티드 기기로 수집한 데이터를 비대면으로 관찰하고 개입하는 서비스에 별도의 청구코드가 마련돼 있으며, 버지니아주에서는 지역약사 네트워크가 주정부, 약사회와 협력해 환자의 혈압·혈당·체중을 직접 원격 모니터링하고 조기 개입하는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CCRC (은퇴자 복합단지) 내부에서도 독립생활-생활지원-요양의 전 단계를 하나의 RPM 플랫폼으로 관통시켜 거주 단계가 바뀌어도 건강데이터의 연속성이 끊기지 않도록 설계돼 있다. 즉, 일본이 '연계'로 약국을 돌봄망에 끌어들였다면, 미국은 '보상'으로 약국을 끌어들인 셈이다. 두 나라 모두 공통적인 것은, 산업 육성이든 소비자 편익이든 그 밑단에 '약사가 매일 관찰하는 구조'를 구축하였다는 점이다.
항목 | 일본 | 미국 |
돌봄 모델 | -지역포괄케어시스템 (생활권 단위의 의료·개호·예방 통합) | - PACE + CCM/RPM (수가에 기반한 개별 서비스 결합) |
약사 진입경로 | -지역연계약국·전문의료기관연계약국 인증제(2019~) | -약국·약사가 CCM/RPM 제공자로 직접 청구 |
디지털 기반 | -다직종 클라우드 정보공유 (왕진선생, HUMAN Bridge 등) | -커넥티드 기기(혈압계·혈당계) + EHR 연동 RPM 플랫폼 |
재정 유인 | -개호보험 수가 내 연계업무 반영 | - CPT 코드 기반 별도 청구 -메디케어/메디케이드 재원 |
한계 | -연계 자체의 인력, 시간 부담 -지역 간 편차 | -저소득·농어촌 접근성 격차 -기기 정확도·데이터 표준화 과제 |
3. 한국의 현실: 기기는 들여놓았지만 약사는 빼놓았다
우리나라도 손을 놓고 있던 것은 아니다.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이미 장기요양 재가수급자를 대상으로 AI 기반 낙상보호 에어백, 디지털 복약알림기, 활동감지시스템을 지원하는 복지용구 예비급여 시범사업을 전국 12개 지역에서 운영 중이며, 복약알림기는 알람과 연동 앱을 통해 보호자가 복약이력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수준까지 와 있다. 그러나 이 설계의 어디에도 지역약사는 없다. 복약알림기가 수집한 데이터는 보호자에게는 전달되지만, 정작 그 약을 조제하고 복약지도를 한 약사에게는 제공되지 않는다.
이현이 박사가 꾸준히 강조해온 디지털 리터러시 문제의식은 바로 이 지점에서 구체적인 해법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기기를 쥐여주는 것과 그것을 스스로, 꾸준히 사용하게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과제이며, 그 간극을 메울 반복적, 대면적 접촉선을 현재 설계에 더해 넣을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국내 디지털헬스케어 시장이 여전히 세계 시장의 0.5% 수준에 머무는 데는 여러 요인이 있겠으나, 비대면 진료, 의약품 배송을 제한하는 법제와 재택 데이터를 임상 현장의 전자의무기록, 약력관리시스템과 연동시키지 못하는 표준화 공백에 더해서, 그 데이터를 매일 해석해줄 전문인력을 설계에 포함하지 못한 점도 함께 지적하고 싶다.
일본처럼 약사를 다직종 연계망에 공식 편입시키거나 미국처럼 약사에게 원격모니터링에 대한 보상을 지급하는 장치를 갖춘다면, 방문약료사업, 다제약물관리사업, 통합약물관리 전문약사제라는 국내 약업계의 기존 자산이 생산주체론과 소비자중심론을 뒷받침하는 훨씬 강한 실행 기반으로 발전할 수 있다.
4. 제도설계: 지역약국을 축으로 한 K-AIP 헬스케어 모델
일본의 연계 모델과 미국의 수가 모델 가운데 어느 하나만 이식해서는 한국형 답이 나오지 않는다. 한국은 이미 방문약료사업과 다제약물관리사업이라는 '연계'의 씨앗과, 통합약물관리 전문약사제라는 '전문성'의 토대를 갖고 있다. 여기에 필요한 것은 미국식 재정유인과 일본식 정보연계를 동시에 붙이는 설계다.
과제 | 내용 |
데이터 연동 | -복지용구 예비급여 복약알림기·낙상감지기기 데이터를 담당 약국의 복약관리시스템에 실시간 연동하여, 약사가 1차 이상징후 관찰자 역할을 수행 |
수가 신설 | -미국 CCM/RPM을 벤치마킹한 '약사 원격복약관리 수가'를 다제약물관리사업 대상자부터 단계적으로 적용 |
법제도 정비 | -지역사회통합돌봄 다직종 협의체에 약사 참여를 명문화하고, 일본의 지역연계약국 인증제에 준하는 국내 인증체계를 설계 |
주거-약국 결합 | - UBRC, K-CCRC 조성 시 부속 또는 인근 지정약국을 '디지털 헬스허브'로 명시하여 설계 단계부터 반영 |
5. 그렇다면 개별 약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제도가 갖춰진다 해도, 그 제도를 실제로 채우는 것은 결국 약국이란 공간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개별 약사의 역할변화다. 지금까지의 논의가 약국이라는 '거점'의 설계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는 그 거점을 운영하는 약사 개개인이 무엇을 다르게 해야 하는지를 구체화할 차례다. 이에 필자는 다섯 가지 역할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첫째, 약사는 데이터의 1차 판독자가 되어야 한다. 복약알림기와 원격모니터링 기기가 쏟아내는 혈압·혈당·복약이행 데이터는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다. 이를 매일 들여다보고 이상징후를 걸러내는 사람이 있어야 데이터가 개입으로 이어진다. 이는 의사의 진단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진단이 필요한 시점을 앞당기는 트리아지(triage) 기능이다.
둘째, 약사는 다직종 케어팀의 상시 구성원이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약사와 케어매니저, 방문간호사의 접점은 처방변경이나 민원이 생겼을 때의 예외적 소통에 머물렀다. 일본의 지역포괄케어가 보여주듯, 정기적인 상담 사례 발표(case conference)에 약사가 상시 참여할 때 비로소 다제약물 문제나 낙상 위험 같은 복합 문제점을 조기에 짚어낼 수 있다.
셋째, 약사는 고령자를 위한 디지털 리터러시 코치(digital literacy coach)가 되어야 한다. 이현이 박사가 지적한 문해력 격차는 일회성 교육으로 좀처럼 메워지지 않는다. 매주 약을 타러 오는 고령환자와 가장 자주, 가장 가까이에서 대면하는 사람이 약사라는 점에서, 기기 사용법과 데이터 확인법을 반복적으로 되짚어주는 역할은 약사가 맡을 때 가장 효율적이다.
넷째, 약사는 복약순응을 넘어 생활습관 전반의 행동변화를 돕는 헬스코치로 확장되어야 한다. 지금의 복약지도가 '약을 잘 드셨습니까'라는 확인형 질문에 머문다면, 앞으로는 축적된 복약, 생리 데이터를 근거로 왜 순응도가 떨어지는지, 무엇을 바꾸면 되는지를 함께 설계하는 상담으로 발전해야 한다.
다섯째, 이 모든 역할전환을 뒷받침할 전문성 재교육 체계가 필요하다. 원격모니터링 데이터 해석과 PHR 연동상담은 기존 약학교육 과정에 없던 역량이다. 통합약물관리 전문약사제와 보수교육 과정에 이 역량을 명시적으로 포함시키지 않으면, 제도만 있고 그 제도를 채울 사람은 없는 상황이 반복될 것이다.
기능 | 기존 역할 | 확장되어야 할 역할 |
정보처리 | -처방전에 따른 조제·투약 | -복약알림기·RPM 기기가 보내는 생체·복약 데이터를 1차 판독하고, 이상징후를 조기에 걸러내는 트리아지(triage) 담당자 |
협업 | -의사 처방에 대한 사후적 감사(audit) 역할 | -케어매니저·방문간호사·사회복지사와의 정기 케이스컨퍼런스에 상시 참여하는 다직종 팀원 |
교육 | -복약지도 시점의 1회성 설명 | -디지털 기기 사용법과 데이터 확인법을 반복적으로 가르치는 고령자 전담 디지털 리터러시 코치 |
행동변화 | -복약순응도 확인 질문 | -생활습관·복약 패턴 데이터를 근거로 한 동기부여 상담(헬스코칭)을 정기적으로 수행 |
전문성 | -약학지식 중심의 단일 역량 | -원격모니터링 데이터 해석, PHR 연동 상담을 포함하는 보수교육·전문약사 자격의 확장 대상 |
6. 결론: 두 담론이 현실이 되는 지점, 지역약사
이충우 교수의 ‘생산주체론’과 이현이 박사의 ‘소비자중심론’은 초고령사회를 바라보는 가장 중요한 두 개의 출발점이며, 필자는 이를 전적으로 지지한다. 이번 칼럼에서 필자가 보태고자 한 것은 그 두 담론이 우리나라 현실에서 힘있게 뿌리내리기 위한 실행의 조건이다.
노인이 경제활동을 이어가려면 먼저 건강해야 하고, 디지털 헬스케어가 소비자에게 가 닿으려면 먼저 그것을 꾸준히 쓰게 만드는 누군가가 가까이 곁에 있어야 한다. 그 조건은 산업정책이나 소비자교육 캠페인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매일의 현장에서 완성되도록 뒷받침하는 미시적 실행층이다.
지역약국이 있고, 그 안에 있는 약사가 데이터를 읽고, 다직종과 협업하고, 기기 사용법을 가르치고, 행동변화를 돕는 존재로 발전할 때, 생산주체론과 소비자중심론은 선언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실제 모습이 될 수 있다.
초고령사회 담론의 다음 장은 두 분이 제시한 방향을 부정하거나 진위를 논하는 것이 아닌, 그 방향을 매일 실행할 주체를 함께 세우는 일이어야 한다. 그 주체로서 지역약사가 제 역할을 하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약업계에 남은 시급한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