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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3> 관용
심창구 교수의 약창춘추
편집부
입력 2025-12-24 09:4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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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일상(日常) 속에서 다양한 형태의 거짓말을 듣거나 한다. 거짓말에는 명백히 사실이 아닌 ‘완전한 거짓말’, 상황을 부드럽게 만들기 위한 ‘반쯤은 거짓인 말’, 그리고 다만 접대용으로 하는 빈말, 그리고 하나마나 한 말까지 다양한 종류가 있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바로 정상이에요”라고 하는 하산객의 말은 등산객을 격려하기 십중팔구 거짓말이지만 올라가기 힘들어 하는 등산객에게 잠시 위로가 된다. 축구 경기에서 우리 팀이 아직 지고 있을 때 “아직 시간 충분합니다”라고 하는 해설도 대개는 거짓말이다. 그저 시청자를 위로하기 위한 립써비스일 뿐이다.
 

옛날에는 거짓말이었던 표현이 시대가 바뀜에 따라 거의 참말이 된 경우도 있다. 노인네가 죽고 싶다고 하고, 처녀가 시집 안 가겠다는 말’은 과거에는 대개 거짓말이었는데 지금은 참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사회적 가치관의 변화로 ‘거짓말과 참말’의 경계가 무너진 사례라 하겠다.
 

맞는 말이지만 ‘하나마나 한 말’도 있다. “축구에서 첫 골을 넣은 팀이 이길 확률이 높습니다”라든지 “권투에서는 되도록 안 맞고 상대방을 가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같은 코멘트가 그런 예이다. 지극히 당연한, 하나마나 한 말이지만 할말이 없다고 가만있는 해설자보다는 듣는 사람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유익이 있다. 
 

“방금의 실수를 잊고 경기에 임해야 한다”는 등의 말은 거의 실효성이 없는 말이다. 잊으란다고 잊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유형의 말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선수를 위로하기 위한 말일 뿐이다.
 

“나라를 위해 헌신하겠습니다”, “분골쇄신하겠습니다” 같은 정치가의 공언은 거의 백퍼센트 거짓말이다. 그러나 이런 말들도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다 하기 위해 진지하게 노력하겠다’는 긍정적인 의미로 일부의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진다고 생각하면 전혀 무의미 하다고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종류의 거짓말을 평생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지 않을까? 직접적인 거짓말은 아니지만 무심코 교통 신호를 위반하거나,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고 차선을 변경하고, 터널에서 전조등을 켜지 않고, 길거리에 침을 뱉거나 담뱃재를 털고, 누군가에게 가족의 취업을 부정 청탁하는 일 등도 실수(失手)라기 보다는 일종의 거짓말이다. 만약에 이런 거짓까지 완벽하게 찾아내 벌을 주는 AI가 발전한다고 하면 일생을 감옥에 가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사람은 누구나 불완전해서 거짓말이나 실수를 조금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종종 자신의 거짓말이나 실수에는 관대하나 타인의 잘못에는 가혹한 판단을 한다. 이런 도덕적 판단의 불균형으로 사회의 긴장이 날로 증폭된다.
 

요즘은 가짜뉴스의 극심한 범람, 작은 실언이나 실수에도 큰 비난이 따라붙는 현상 때문에 사람들이 지나치게 예민해지고 공격적이 되었다. 사람들이 점점 관용(寬容)을 잃어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타인의 거짓말과 잘못을 자기 자신의 경우에 비추어 조금 관대하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관용은 불법이나 악(惡)을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불완전함을 이해하는 감정적 여유다. 서로를 엄격한 기준에 몰아넣는 사회는 우리 모두에게 분열과 피로를 줄 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단체 사진을 찍을 때마다 “파이팅”을 외칠 정도로 싸우기를 좋아한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지나치게 싸움을 예찬하고, 경쟁을 강조하며, 상대를 이겨야 한다는 논리로 움직이고 있는 건 아닐까? 과거에는 “일하며 싸우고 싸우며 일하자”는 예비군의 구호(口號)가 체제 유지의 원동력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남을 공격하기보다 서로의 실수를 감싸는 방식으로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 그것이 서로 사람답게 사는 길일 것 같다. 
 

결국 인간에게 있어서 거짓말과 잘못은 불가피한 약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나와 상대방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관용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언제까지 파이팅!을 외치며 살아야 하나? 새해에는 관용을 통해 세상이 조금 더 따뜻하고 편안한 곳이 되었으면 정말 좋겠다.

<필자소개> 심창구 교수(서울대 명예교수)는 서울대 약학대학 교수와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으로 대한약학회 약학사분과학회 명예회장과 서울대 약학박물관 명예관장을 맡고 있다.  심 교수의 약창춘추 칼럼은 2007년 처음 게재된 이후 현재까지 약 400여 회 이상 집필을 이어오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3권(약창춘추, 약창춘추2, 약창춘추3) 책으로 묶여 순차적으로 발간된 바 있다. 가장 최근에 발간된 약창춘추3은 현재 교보문고를 비롯한 시중 인터넷 서점과 약업닷컴 북몰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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