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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1> 규제가 진흥이다
심창구
입력 2025-11-26 14:52 수정 최종수정 2025-11-26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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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한국FDC규제과학회(회장 이의경)가 창립 20주년을 맞이하였다. 이 학회의 전신인 ’한국의약품법규학회’의 창립회장인 나로서 특히 감개무량한 일이다. 이 학회는 규제기관과 피규제기관인 산업계 사이의 비생산적인 불통과 오해를 해소하고, 보다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규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2005년 출범되었다.
 

규제과학(Regulatory Science)은 순수과학과 응용과학에 이은 제3의 과학이다. 순수과학이 ‘왜’를 묻고, 응용과학이 ‘어떻게’를 탐구한다면, 규제과학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Which)’를 고민한다. 일본에서는 규제과학을 ‘평가과학(評價科學)’이라 부르는데, 약효와 부작용을 저울질하여 의약품의 가치를 평가하고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기준을 세운다는 점을 표현한 명칭이다. 약학을 평가과학의 대표적 학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의약품 안전성은 지난 세기의 비극적 사건들로부터 얻은 교훈의 결실이다. 탈리도마이드 참사가 대표적인 사건이다. 수많은 기형아가 태어나고 죽은 그 사건 이후, 제약회사는 “당시 규제기관이 요구한 모든 자료를 제출했다”고 항변했다. 문제는 자료를 요구한 규제 자체가 부실했다는 데 있었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교훈으로부터 전 세계적으로 의약품 안전에 관한 법규가 정비되어 오늘날의 안전한 의약품 제도가 마련되었다. 
 

예컨대 의약품의 체내 흡수·분포·대사·배설(ADME) 과정을 분자 수준에서 규명하게 된 것은 관련 규제의 적용 덕분이었다. 만약에 생체이용률과 생물학적동등성(BE)의 개념이 제도화되지 않았다면, 제네릭 의약품이 정당한 지위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BE 시험 제도의 정착이 제네릭을 장려한 결과를 낳은 것이다. 건강기능식품 산업 또한 관리제도가 정비되었기에 발전할 수 있었다. 규제가 지나치게 부실했다면 오히려 산업은 신뢰를 잃고 위축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규제는 진흥이다”라는 말은 결코 역설이 아니다.
 

철로 없이 달리는 기차를 상상할 수 없듯이, 규제 없는 산업 발전은 존재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규제의 유무가 아니라, 규제의 품질이다. 의미가 명확하고, 기존 규제와 조화를 이루며, 시대를 선도하는 규제가 바로 산업을 진흥시킬 수 있는 좋은 규제이다.
 

좋은 규제를 만들려면 우선 규제기관의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 실력 없는 선생의 밑에서 우수한 제자가 배출될 수 없는 것처럼, 규제기관의 전문성이 부족한 상태에서는 관련 산업이 성장할 수 없다. 규제기관의 지나친 순환보직은 전문성을 저해한다. 
 

규제는 서두르지 말고 충분한 토론과 숙의를 거쳐 만들어야 한다. 요식적인 ‘입법예고’만으로는 좋은 규제가 태어나기 어렵다.  충분히 듣고, 연구 검토하여 현장에 적용 가능한 합리적 규제를 찾기 위한 ‘끝장 토론’이 필요하다.
 

제조 과정이 품질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규제는GMP정신과 일맥 상통한다. 즉 제정 과정이 투명하고 과학적일 때 신뢰할 수 있는 결과물(규제)이 나올 수 있다. 좋은 규제가 태어날 수 있는 제도적 토양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인식 하에 2005년 의약품법규학회가 창립되었다. 규제기관과 산업계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공론의 장에서 함께 규제의 품질을 향상시켜보자는 취지에서였다. 이정석, 권경희 박사의 헌신, 그리고 전인구 차기 회장 등의 리더십이 학회의 초기 성장과 조직 확장에 큰 기여를 했다.
 

학회가 나아갈 방향은 미래지향적이고 고품질인 규제의 창출이다. 예컨대 관련 법규의 향후 지향점, 의약품 조제 후 유효기간 설정, 생물의약품의 유사성 평가와 국제 조화 등 선제적으로 연구해야 할 규제는 매우 다양하다. 또 오해의 소지가 있는 건강기능식품을 ‘건강기능보조제’로 명칭을 바꾸는 방안 등 현행 규정의 정비도 검토해야 한다. 
 

창립 20년, 학회는 이제 성년이 되었다. 규제과학은 단순히 규제 절차가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잣대를 세우는 평가과학이다. 잘 만들어진 규제는 족쇄가 아니라 진흥의 길라잡이다. 우리 학회가 앞으로도 세계적 수준의 규제가 만들어지고 시행될 수 있도록 돕는 공론의 장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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