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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 최초의 여성 약학박사 함복순(咸福順)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입력 2016-08-17 09:38 수정 최종수정 2016-08-17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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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약춘 200(약학박사 1호)에서 다룬 바 있는 함복순 교수의 이야기를 상세하게 다루고자 한다.

 

그는 1913년 9월 6일 서울 성북구 동선동에서 6녀 중 3녀로 태어났다. 혼자 지내기를 좋아하던 그는 소학교에 들어가지 않고 집에서 국문을 깨쳤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와 함께 성당엘 갔다가 수녀의 권유로 뒤늦게 성당에 있는 소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그에게 공부는 너무 쉬워서 언제나 일등을 했고 반장도 하였다. 결국 학기말에 3학년으로 월반하여 5년간 소학교를 다녔다. 졸업(1923년) 후 사립학교 출신으로는 하늘의 별 따기처럼 들어가기 어려운 경기고등여학교(경기고녀)에 합격하였다.

경기고녀를 졸업(1933년)한 후 수녀가 되기 위해 카멜(carmel)봉쇄 수도원에 지원하였지만 중병을 앓은 적이 있다는 이유로 낙방되었다. 그 후 신부님의 권유로 1933년 경성사범학교 연습과에 들어가) 1934년에 졸업하였다.

그 후 1937년까지 3년간 가명(加明)보통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였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재미가 있었으나, 이에 만족할 수 없었다. 일본 동경여자약학전문학교에 편지를 보내 입학 허가를 받아 1937~1941년의 4년간 공부를 마치고 졸업하여 약사가 된 다음 귀국하였다. 1941~1948년 서울 국립중앙화학연구소에서 근무하다가, 6.25 전쟁의 와중인 1951.5.31~1952년(정식 면직은 55.1.15) 서울대 약대 전임강사로 봉직하였다.

서울약대의 전임강사까지 되었지만 오랜 꿈인 유럽 유학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전직 서울대 독일어 교수이었던 독일인으로부터 독일어를 배우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가 간첩이라는 죄목으로 잡혀 가자, 이번에는 명동 성당에 와있던 프랑스인 공벨 신부에게 3년간 매일같이 가서 프랑스어를 배웠다.

부산 피난시절, 부산에 있는 프랑스 대사관에 파리대학 입학 지원서를 써서 제출하였더니, 프랑스 대사가 차를 보내 데리고 가서 대사관 일을 보게 하였다. 그리고 외교관 특별 보따리 속에 파리대학 입학지원서를 끼워 파리대학에 전달하도록 조치하여 주었다. 그 때는 우편물의 국제 왕래가 불법이었기 때문이다.

얼마 후 파리대학으로부터 입학을 허락한다는 회신이 도착하였다. 그는 곧 동경의 요코하마 항으로 가서 프랑스로 가는 Marseillese호라는 배를 타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미 만석이라 탈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마침 일본 여자 하나가 몸이 아파 예약을 취소하는 바람에 운 좋게 탈 수 있었다.

배는 상해, 홍콩, 사이공, 싱가포르, 홍해, 수에즈 운하, 지중해를 거쳐 마르세유 항구에 도착하였다. 기차를 타고 파리에 도착하여 파리대학을 찾았는데, 교수 등의 배려로 1952부터 약대 대학원에 다니게 되었다.

1953년에 약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1955년까지 동 대학 이과대학 생물화학연구실에서 근무하였다. 1957년부터는 다시 동 대학 이과대학원에 입학하여 1961년에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후 1962년까지 동 대학 이과대학 유기구조화학 연구원으로 근무하였다.

귀국한 뒤에는 2년간(1962.9.15~1964.9.24) 서울대 약대 교수(약효학)를 지내며 교지인 약원(제6호, 1963.3)에 ‘빠리 약대의 약학교육’이라는 글을 남겼다. 1963~1968년에는 미국의 뉴욕대학과 컬럼비아 대학에서 생물화학 연구원으로, 1969년에는 미국 콜럼버스 병원에서 임상화학 연구원으로 근무하다가 1985년에 정년퇴직 하였다. 그 후 1년간 Cooper Union 대학에서 영문학을 수강하였다.

만 77세인 1990년 5월에는 일본 유학 시에 만났던 최재방씨와 수유 성당에서 황혼 결혼을 하고, 뉴욕에서 ‘길벗’이라는 문학 동인 활동을 하다가, 1999년 5월 29일 서울에서 심장마비 후유증으로 영면하였다. 유작(遺作)으로 ‘고독을 누리는 시간 (미리내, 2000년 4월 10일)’이라는 수필집을 남겼다. 이 글도 그 책의 ‘나는 왜 혼자 살아 왔나’라는 글에서 발췌한 것이다. 그의 천재성, 학구열 및 개척정신에 심심한 경의를 표하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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