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가이 교수는 동경대학에서 약학박사 학위를 받고 1971년에 호시(星)약과대학에 부임할 때부터 제인(帝人)파마주식회사의 고문으로서 회사와 공동으로 HPC(hydroxyl propyl cellulose)의 새로운 용도 개발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여 HPC의 용도에 관한 특허를 받았고, 회사는 이를 이용하여 3가지 신의약품(아프타치, 리노코트, 사루코트)을 개발하여 시판하게 되었다. 이 업적으로 나가이 교수는 1984년 ‘전국발명상’을 받았고, 1986년 9월 1일 일본인 최초로 FIP의 Hoest-Madsen 메달을 수상하였다.
이때 50년 지기(知己)인 향천대학(香川大學)의 고니시(小西良士) 교수는 FIP상의 수상을 기념하여 재단을 만들라고 제안하였다. 그 해 10월에 호시약과대학의 이사장 주최로 뉴오타니 호텔에서 FIP상 수상 축하 파티가 열렸을 때, 제국제약(帝國製藥)의 아까자와(赤沢) 사장이 많은 액수의 돈을 기부하여 주었다.
이 돈이 재단이 처음으로 받은 기부금 1호이었다. 그러나 이 재단에 자금 면에서 더 큰 도움을 준 것은 제인 파마이었다. 제인 파마는 특허에 대한 공로금을 호시 대학의 구좌로 넣어 주었는데, 호시대학의 구타니 학장은 그 돈 전액을 나가이 재단이 전용(專用)할 수 있는 재산으로 처리하여 주었다.
1986년에 ‘나가이기념국제약학기금’이라는 임의단체(任意團體)로 출범한 이 단체는 그 후 재단법인으로의 변신을 도모(圖謀)하였다. 그 과정에서 문부성의 심사담당관은 ‘국제교류재단은 전국적으로 예가 드물고, 약학영역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며, 재단의 설립은 사립대학을 활성화시킬 수 있다’고 하면서 각별한 관심을 보여 주었다.
나가이 교수는 재단설립에 필요한 최소한의 자금을 확보하는 한편으로, 문부성에 드나들며 심사담당관으로부터 정관 작성에 필요한 조언을 받았다. 1993년 2월 12일에 예비심사를 신청한지 만 1년 후인 1994년 1월 28일에 ‘나가이기념약학국제교류재단’ 이라는 이름으로 재단법인 설립허가를 받았다.
그 후 법인제도가 전면적으로 개정되고 관할부서가 문부성에서 내각성(內閣省)으로 바뀌면서 2012년 4월 1일부터 공익재단법인(公益財團法人)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상의 연혁을 살펴보면 군데군데에서 남의 명예로운 성취를 잘 지켜주려고 하는 일본 사회 전체의 미덕(美德)이 느껴진다.
나가이 박사는 5년전부터 하반신 불수가 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가이 재단이 후원하는 각종 국제 약학관련 학술행사에 빠짐없이 출석하고 있다. 이는 지극 정성으로 남편을 섬기는 부인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을 것이다.
언제나 남편의 휠체어를 밀면서 나타나는 부인이 실은 나가이 재단의 실질적인 운영자라고 한다. 나가이 이사장은 이번 심포지엄에서도 심포지엄 전날부터 초청연자들과 밤늦도록 식사와 담소를 나누는 열정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내가 감탄한 것은 그가 심포지엄 당일 휠체어에 앉은 채로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학회장의 맨 앞자리를 굳세게 지키며 모든 강연을 경청하는 모습이었다. 국제학술회의에서 자리를 뜨지 않고 하루 종일 어려운 학술 강연을 듣는 것은 나 같은 젊은(?) 사람에게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말이다.
문득 오래 전 서울에서 열린 신약개발 심포지엄에 참석했던 교토대학의 세자키 교수가 머리에 떠올랐다. 당시 정년을 앞두고 있는 고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시종 학회장의 맨 앞자리를 고고하게 지키고 있었다. 이는 중견교수만 되어도 학회장 밖에서 환담(?)이나 즐기던 우리에게 따끔한 자극이 되었다.
보스는 어떤 경위로 탄생하는가? 이번 여행은 이에 대한 귀중한 힌트를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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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50년 지기(知己)인 향천대학(香川大學)의 고니시(小西良士) 교수는 FIP상의 수상을 기념하여 재단을 만들라고 제안하였다. 그 해 10월에 호시약과대학의 이사장 주최로 뉴오타니 호텔에서 FIP상 수상 축하 파티가 열렸을 때, 제국제약(帝國製藥)의 아까자와(赤沢) 사장이 많은 액수의 돈을 기부하여 주었다.
이 돈이 재단이 처음으로 받은 기부금 1호이었다. 그러나 이 재단에 자금 면에서 더 큰 도움을 준 것은 제인 파마이었다. 제인 파마는 특허에 대한 공로금을 호시 대학의 구좌로 넣어 주었는데, 호시대학의 구타니 학장은 그 돈 전액을 나가이 재단이 전용(專用)할 수 있는 재산으로 처리하여 주었다.
1986년에 ‘나가이기념국제약학기금’이라는 임의단체(任意團體)로 출범한 이 단체는 그 후 재단법인으로의 변신을 도모(圖謀)하였다. 그 과정에서 문부성의 심사담당관은 ‘국제교류재단은 전국적으로 예가 드물고, 약학영역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며, 재단의 설립은 사립대학을 활성화시킬 수 있다’고 하면서 각별한 관심을 보여 주었다.
나가이 교수는 재단설립에 필요한 최소한의 자금을 확보하는 한편으로, 문부성에 드나들며 심사담당관으로부터 정관 작성에 필요한 조언을 받았다. 1993년 2월 12일에 예비심사를 신청한지 만 1년 후인 1994년 1월 28일에 ‘나가이기념약학국제교류재단’ 이라는 이름으로 재단법인 설립허가를 받았다.
그 후 법인제도가 전면적으로 개정되고 관할부서가 문부성에서 내각성(內閣省)으로 바뀌면서 2012년 4월 1일부터 공익재단법인(公益財團法人)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상의 연혁을 살펴보면 군데군데에서 남의 명예로운 성취를 잘 지켜주려고 하는 일본 사회 전체의 미덕(美德)이 느껴진다.
나가이 박사는 5년전부터 하반신 불수가 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가이 재단이 후원하는 각종 국제 약학관련 학술행사에 빠짐없이 출석하고 있다. 이는 지극 정성으로 남편을 섬기는 부인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을 것이다.
언제나 남편의 휠체어를 밀면서 나타나는 부인이 실은 나가이 재단의 실질적인 운영자라고 한다. 나가이 이사장은 이번 심포지엄에서도 심포지엄 전날부터 초청연자들과 밤늦도록 식사와 담소를 나누는 열정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내가 감탄한 것은 그가 심포지엄 당일 휠체어에 앉은 채로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학회장의 맨 앞자리를 굳세게 지키며 모든 강연을 경청하는 모습이었다. 국제학술회의에서 자리를 뜨지 않고 하루 종일 어려운 학술 강연을 듣는 것은 나 같은 젊은(?) 사람에게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말이다.
문득 오래 전 서울에서 열린 신약개발 심포지엄에 참석했던 교토대학의 세자키 교수가 머리에 떠올랐다. 당시 정년을 앞두고 있는 고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시종 학회장의 맨 앞자리를 고고하게 지키고 있었다. 이는 중견교수만 되어도 학회장 밖에서 환담(?)이나 즐기던 우리에게 따끔한 자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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