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1971년에 약대를 졸업하고 그 해 6월에 입대하여 1974년에 육군사병으로 제대하였다. 군대에서 34개월이라는 ‘세월’을 흘려 보냈다. 제대 후 영진약품에 입사하였는데 회사는 나에게 연구과를 맡겼다.
어느 날 회사로부터 어린이용 생약 시럽제를 만들어 보라는 지시를 받았는데, 시행착오 끝에 외관상 제법 그럴듯한 시럽제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시럽제가 과연 제대로 만들어진 것인지, 또 선진국의 제약회사도 나처럼 주물럭 주물럭 해서 시럽제를 만들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제대로 약을 만드는 이론과 기술을 공부하고 싶었다. 이왕이면 외국에 가서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본시 촌놈인 나는 유학을 어떻게 가는 것인지 알지 못 하였다. 아는 사람 중에 유학을 떠난 사람도 없었다.
그러던 중 1977년에 대학 동기인 C군이 일본 문부성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동경대학으로 유학을 떠나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래 이거다’ 싶어 C군에게 길을 물어 보았더니, 우선 서울대학교의 정식 조교 발령을 받은 다음 문부성 장학생 선발 시험에 붙어야 된다는 것이었다.
당시 서울대 조교 발령을 받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이었다. 차라리 교수되는 것이 더 쉽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이었다. 나는 당장 회사를 그만두고 서울대 약대 약품분석실에 들어 갔다. 당시 분석실에는 매우 똑똑한 후배가 방장(房長) 노릇을 하고 있었다.
거기에서 1년여 무보수로 백의종군(白衣從軍)한 끝에 드디어 조교 발령을 받았다. 조교가 되자마자 문부성 장학생 시험 준비에 착수 하였다. 맹렬한 공부 끝에 마침내 그 해 중에 수십대 일의 경쟁을 뚫고 장학생으로 선발될 수 있었다. 드디어 1979년 4월 9일 아내 및 두 아들과 함께 일본 유학 길에 올랐다. 그 때 내 나이가 무려(?) 32살 이었다.
내가 일본에 간지 2년 후, 유한양행에 다니던 대학동기 Y군도 같은 방법으로 일본 유학의 길에 올랐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내가 유학을 떠난 32살도 C군에 비해 2년이나 늦어 마음이 초조하였는데, Y군은 나보다도 2년이나 더 먹은 34살에 유학을 가다니 늦어도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세월이 한 참 지나고 보니 C나 나나 Y나 다 같이 교수 노릇을 하며 늙어가기는 마찬가지이었다. 유학을 떠나던 당시에는 엄청난 차이로 느껴졌던 30살, 32살, 34살이 실은 다 그게 그거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인생은 조금 긴 시간 스케일로 볼 필요가 있구나 깨닫게 되었다.
6년제 하에서 약대에 들어 온 신입생의 50%는 2년 이상, 나머지 50%는 3년 이상 다른 학과에서 공부를 마친 학생들이라고 한다. 그래서 많은 약대생들은 자신들의 나이가 제법 많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문득 내가 대학에 다니던 때에, 군대 갔다 온 남자 복학생들이 강의실 뒷자리에서 인생의 원로(元老)라도 되는 양 점잔을 떨던 모습이 떠 올랐다.
그래서 그날 나는 신입생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여러분들이 다른 학과 학생들보다 몇 살 더 먹은 것은 인생에서 아무 것도 아니다. 자신을 다 늙은 것처럼 착각하지 말라, 초조해 하지 말고 긴 호흡으로 공부하라, 인생에서 속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방향이라고 한다. 그러니 가능하면 대학원에 진학해서 더 깊이 공부하라, 젊었을 때 공부한 것을 후회하는 사람은 보지 못 하였다. 지금 우리나라 제약업계는 신약개발이라는 밀물을 맞고 있다. 바로 이 시기에 여러분들의 헌신을 통하여 우리나라가 신약개발 강국의 꿈을 이루길 기원한다’
그러나 신입생들이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아니면 그들이 이미 다 알고 있는 잔소리를 내가 한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그들을 사랑하는 내 마음이 조금이라도 전달되었으면 다행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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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71년에 약대를 졸업하고 그 해 6월에 입대하여 1974년에 육군사병으로 제대하였다. 군대에서 34개월이라는 ‘세월’을 흘려 보냈다. 제대 후 영진약품에 입사하였는데 회사는 나에게 연구과를 맡겼다.
어느 날 회사로부터 어린이용 생약 시럽제를 만들어 보라는 지시를 받았는데, 시행착오 끝에 외관상 제법 그럴듯한 시럽제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시럽제가 과연 제대로 만들어진 것인지, 또 선진국의 제약회사도 나처럼 주물럭 주물럭 해서 시럽제를 만들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제대로 약을 만드는 이론과 기술을 공부하고 싶었다. 이왕이면 외국에 가서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본시 촌놈인 나는 유학을 어떻게 가는 것인지 알지 못 하였다. 아는 사람 중에 유학을 떠난 사람도 없었다.
그러던 중 1977년에 대학 동기인 C군이 일본 문부성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동경대학으로 유학을 떠나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래 이거다’ 싶어 C군에게 길을 물어 보았더니, 우선 서울대학교의 정식 조교 발령을 받은 다음 문부성 장학생 선발 시험에 붙어야 된다는 것이었다.
당시 서울대 조교 발령을 받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이었다. 차라리 교수되는 것이 더 쉽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이었다. 나는 당장 회사를 그만두고 서울대 약대 약품분석실에 들어 갔다. 당시 분석실에는 매우 똑똑한 후배가 방장(房長) 노릇을 하고 있었다.
거기에서 1년여 무보수로 백의종군(白衣從軍)한 끝에 드디어 조교 발령을 받았다. 조교가 되자마자 문부성 장학생 시험 준비에 착수 하였다. 맹렬한 공부 끝에 마침내 그 해 중에 수십대 일의 경쟁을 뚫고 장학생으로 선발될 수 있었다. 드디어 1979년 4월 9일 아내 및 두 아들과 함께 일본 유학 길에 올랐다. 그 때 내 나이가 무려(?) 32살 이었다.
내가 일본에 간지 2년 후, 유한양행에 다니던 대학동기 Y군도 같은 방법으로 일본 유학의 길에 올랐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내가 유학을 떠난 32살도 C군에 비해 2년이나 늦어 마음이 초조하였는데, Y군은 나보다도 2년이나 더 먹은 34살에 유학을 가다니 늦어도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세월이 한 참 지나고 보니 C나 나나 Y나 다 같이 교수 노릇을 하며 늙어가기는 마찬가지이었다. 유학을 떠나던 당시에는 엄청난 차이로 느껴졌던 30살, 32살, 34살이 실은 다 그게 그거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인생은 조금 긴 시간 스케일로 볼 필요가 있구나 깨닫게 되었다.
6년제 하에서 약대에 들어 온 신입생의 50%는 2년 이상, 나머지 50%는 3년 이상 다른 학과에서 공부를 마친 학생들이라고 한다. 그래서 많은 약대생들은 자신들의 나이가 제법 많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문득 내가 대학에 다니던 때에, 군대 갔다 온 남자 복학생들이 강의실 뒷자리에서 인생의 원로(元老)라도 되는 양 점잔을 떨던 모습이 떠 올랐다.
그래서 그날 나는 신입생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여러분들이 다른 학과 학생들보다 몇 살 더 먹은 것은 인생에서 아무 것도 아니다. 자신을 다 늙은 것처럼 착각하지 말라, 초조해 하지 말고 긴 호흡으로 공부하라, 인생에서 속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방향이라고 한다. 그러니 가능하면 대학원에 진학해서 더 깊이 공부하라, 젊었을 때 공부한 것을 후회하는 사람은 보지 못 하였다. 지금 우리나라 제약업계는 신약개발이라는 밀물을 맞고 있다. 바로 이 시기에 여러분들의 헌신을 통하여 우리나라가 신약개발 강국의 꿈을 이루길 기원한다’
그러나 신입생들이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아니면 그들이 이미 다 알고 있는 잔소리를 내가 한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그들을 사랑하는 내 마음이 조금이라도 전달되었으면 다행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