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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 약학진사(藥學進士) 학위는 누구의 아이디어?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입력 2016-02-11 09:38 수정 최종수정 2016-02-11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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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夏期)약학강습회가 개최되기 4년 전인 1910년에 이미 대한제국은 근대적인 약학교육을 실시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즉 1910년 2월 7일에 공포된 ‘대한의원부속의학교규칙(내부령 제5호, 관보 제4596호)’에 따르면, 1910년 대한의원부속의학교 내에 정원 10명의 3년제 약학과를 설치하여 근대 약학 교육을 실시할 예정이었다. 학비는 전액 관비(官費)로 지급하고 졸업 시에는 약학진사 칭호를 수여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이 계획은 1910년 한일 강제병합으로 무산(霧散)되었다.

1914년의 하기 강습회는 한국인 이석모(李碩模)에 의해 추진되었지만, 정식 약학 교육 기관인 1915년의 조선약학강습소와 1918년의 조선약학교의 개교에는 모두 일본인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래서 나는 한일 강제병합 전인 대한제국 시절에 이와 같은 관립(官立) 약학과 설립 계획이 있었던 것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일본인 고지마 다까사또(兒島高里)가 조선약학교의 초대 교장인 조중응의 작고를 애도하는 조사(弔辭)가 매일신보(1919년 8월 27일자)에 실려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 기사를 읽고 대한제국 시절의 약학과(내부령 제5호)도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 고지마의 아이디어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고지마는 1859년 일본 출생, 1892년 동경제국대학 약학과 졸업, 1908년 대한의원 약제관 초빙을 받은 후 조선총독부 등 근무, 하기강습회 강사 역임 후 1919년부터 5년간 조중응의 뒤를 이어 조선약학교의 2대 교장을 지낸 사람이다. 조사의 내용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약학계의 큰 은인(恩人)인 조중응 자작이 흉거(凶去)하였다는 비보(悲報)를 듣고 무어라 할 말을 모르겠다. 이제 겨우 서광(曙光)이 비치는 듯하던 조선의 약학계가 이와 같은 큰 은인을 잃은 것은 매우 섭섭한 일이다.

13년 전 구한국 정부의 내정이 개혁되어 대관원(大觀院) 안에 병원의학부(病院醫學部)가 생길 때에, 약학에 대해서는 아무 계획이 없는 것이 매우 섭섭하여 내부대신 등 여러 사람과 의논하여 보았으나 약학부를 신설하기는 매우 어려웠다.

그래서 당시 농상공부대신이던 조중응에게 의논하였더니 그는 내 의견에 적극 동조하여 급히 조의(朝議)를 열어 약학부도 신설하게 조치하였다. 그러나 2년 뒤 한일 병합에 의해 불행히 관제(官制)에 약학부가 없어지게 되었다.

나는 사립(私立)으로라도 약학을 장려하려고 결심하고 조 자작과 의논하였더니 흔쾌히 동의하고 노력해 주었다. 그 결과 소학교의 집을 빌려 야학(夜學)으로 조선약학강습소를 설립(1915년) 할 수 있었다.

그 후로도 조 자작은 약학교육 발전에 많은 힘을 썼다. 몇 년 후 약학강습소를 조선약학교로 이름을 고치고 (1918년), 훈련원(訓練院) 넓은 마당에 교사를 새로 짓고, 교육 내용을 충실하게 하였다. 학생수도 100여명을 헤아리게 되었다.

조 자작은 신병 때문에 사양하였지만, 나는 13년의 오랜 역사가 있는 약학계의 은인인 조 자작이 교장을 맡아야 한다고 적극 추천하였다. 작년 (1918년) 섣달에는 여러 번 병문안을 하고 약학계에 대하여 상의를 드렸으나 최근에는 일부러 위문을 하지 않고 속히 쾌차하기만을 기도하였다.

학교 교사의 신축이 완료되었을 때에도 자작이 나은 후에 성대한 개교식을 거행할 생각이었다.  또 혹시 흥분하면 병세에 좋지 않을까 염려되어 학교 신축에 대해서도 보고를 드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운명을 하시고 보니 차라리 생전에 13년간이나 고심하신 결과를 보고 드려 기쁘게 해드릴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조 자작의 장례를 학교장(學校葬)으로 모시고 싶으나 조선의 기둥 돌이 되시는 분의 일이라 경솔하게 결정할 수 없다. 아무튼 가장 좋은 방법으로 자작을 조상(弔喪)하고, 또 그의 뜻을 이어 끝까지 약학을 발달시킬 결심이다.”

대한제국의 근대 약학 교육기관의 설립 시도가 한국인의 아이디어 이었기를 바라던 나는 적잖이 실망하였다. 예나 지금이나 ‘먼저 깨달음’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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