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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시상식(施賞式)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입력 2016-01-27 09:38 수정 최종수정 2016-01-27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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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 및 11월에 대한약학회 및 FDC법제학회로부터 공로상패를 받았다. 퇴임 후의 상이라 민망함도 있었지만 아무튼 감사하게 잘 받았다. 그런데 상패에 쓰여 있는 글을 읽어 보니 초등학생의 우등상처럼 내용이 애매모호하고 정형적이었다. 이를 계기로 상(賞)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1990년도에 과학기술처에서 주는 ‘우수연구논문상’을 받은 일이 있다. 그 때 시상식장에 들어 갔더니, 주최측이 회의실 같은 곳에 수십 명의 수상자를 몇 줄로 도열시켜 놓고 “아무개 외 몇 명”이라고 이름을 부른 뒤 신속하게 상패를 나누어 주었다. 작은 쟁반처럼 생긴 알루미늄 상패에는 수상자(受賞者)의 이름보다 시상자(施賞者)의 이름이 더 크게 새겨져 있었다. 나누어주는 상패를 받은 나는 웬 일인지 그다지 영광스러운 느낌을 가질 수 없었다.

2001년에도 모처에서 주는 상을 받으러 간 일이 있었다. 시상식이 시작되자 개회사와 명사들의 축사가 장시간 계속되었다. 그러나 정작 수상자들에게 대한 시상 순서는 눈 깜박할 사이에 끝나 버렸다. 수상자들의 소감을 듣는 순서도 없었다. 시상식에 뒤이은 만찬에서도 나를 비롯한 수상자들은 시종 뻘쭘한 기분을 억제할 수 없었다.

나중에 깨닫고 보니 우리나라의 시상식은 대개 상을 주는 사람, 즉 시상자가 주인이고 수상자는 들러리인 경우가 허다(許多)하였다. 주객(主客)이 전도(主客顚倒)된 것이다. 주객전도의 정도는 보통 시상식장에 늘어선 화환의 개수에 비례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행사의 이름부터가 상을 받는 수상식(授賞式)이 아니고 상을 주는 시상식(施賞式)이다. 문득 어디선가 본듯한 글귀가 떠오른다. 원래 훈장이나 상패는 돈 안들이고 백성들을 감동시켜 다스리는 독재자의 수단이었다나?

그런데 2001년도 1월의 어느 날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약국신문사 사장이라는 분이 내게 전화를 걸어, 내가 그 신문사에 의해 ‘2000년을 빛낸 인물’로 선정되어 상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그런 상 제도가 있는 줄도, 그리고 내가 그 상의 수상자로 선정된 줄도 모르고 있었다. 사장님은 곧장 직원 한 명과 함께 불쑥 내 연구실로 찾아와 상패를 전해 주고 돌아가는 것이었다. 상패를 보니 이 상의 시상 날자는 2000년 12월 25일 즉 크리스마스 날이었다.

나중에 돌아보니 이 상에는 다른 상에는 없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이 있었다. 우선, 화려한 시상식이 없었다. 신문사 사람 둘과 내가 내 연구실에서 만나 상패를 주고 받은 것이 전부였다. 화환도 박수치는 사람도 없었다. ‘약국신문사’가 이런 방식으로 상을 주는 이유는, 무엇보다 거창한 시상식을 개최할 경제적 능력이 부족하였기 때문일지 모른다.

둘째, 상패에 수상자의 공적이 200자 넘는 글자로 매우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새겨져 있었다. 나는 지금도 누가 내 공적을 조사해 썼는지 모른다. 다만 느낀 것은 시상자의 정성이다. 셋째, 상패에는 천연색 사진과 함께 내 이름이 큼직하게 인쇄되어 있었지만, 시상자의 이름은 아예 인쇄되어 있지 않았다. 오직 ‘약국신문’이라는 로고만 겸손한 크기로 새겨져 있을 뿐이었다. 시상자의 고결한 인격이 느껴진다.

나는 학교를 퇴임할 때에 상당수의 상패를 처분하였다. 그러나 약국신문사의 이 상패만은 지금껏 식탁 위에 모셔놓고 때때로 감동하며 바라보곤 한다. 지금까지 내가 받은 여러 상 중 이 상이 가장 아름답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시상자가 수상자를 찾아와 상을 주고 가는 조촐함, 그래서 시상자가 아닌 수상자가 주인공이 되는 시상식, 상패에 수상자의 구체적 공적을 적는 정성, 무엇보다 시상자의 이름을 상패에 드러내지 않는 파격적인 겸손, 이런 특성을 갖고 있는 이 상이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만약에 세상의 소위 높은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상을 줄 때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약국신문사의 이런 마음, 이런 태도를 본 받을 수만 있다면 세상은 한결 아름다워질 것이다. 어찌 상(賞)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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