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1월 25일부터 27일까지 방콕에서 열린 아시아 AFPS(Asia Federation for Pharmaceutical Sciences)에 다녀 왔다. 요즘엔 외국에 오래 머무는 것이 싫어서 꼭 필요한 최소한의 기간만 있다가 돌아 오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AFPS는 ‘아시아 약학회’라고 번역할 수도 있겠지만, 참가자들이 주로 약제학 전공자들이라는 점에서 ‘아시아 약제학회’라고 부르기도 한다.
AFPS는 2007년부터 2년마다 개최국을 바꾸어 가며 열리고 있는데, 재작년에는 우리나라 약제학회의 주최로 제주도에서 열린 바 있다. AFPS는 2002년 나와 일본의 스기야마 교수가 시작한 ‘한일(韓日) 약제학 심포지엄’이 기원이다. 당시 우리나라와 일본 약제학회의 회장이었던 나와 스기야마 교수는, 각국의 약제학자 10명씩이 구두로 발표하는 심포지엄을 2년마다 열기로 합의하였다.
나는 이 합의를 이룬 것이 매우 기뻤다. 세계 최고수준이라고 자부하며 미국이나 유럽하고만 심포지엄을 열어 왔던 콧대 높은 일본 약제학계가 마침내 우리나라 약제학의 수준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고 볼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1회 심포지엄은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열렸다. 우리 측은 최고 수준의 연자 10명을 선정하는 등 최선의 준비를 하였다. 그 결과 심포지엄은 대성공이었다. 즉 우리 측 연자들의 영어 수준도 매우 높았고 영어 발표도 훌륭하였다. 그 심포지엄은 결국 일본 학자들이 우리나라 약제학의 수준을 다시 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실상은 보이는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연자 풀이 엄청나게 큰 일본과 달리 우리로서는 10명의 연자를 선정하는 일 자체가 쉽지 않았다. 연자 수 10명은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연자 수의 상한선이었다. 내가 심포지엄을 매년이 아닌 2년마다 열자고 제안한 것은 이처럼 우리의 연자 동원 능력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본 교토에서 2004년에 열린 제2회 한일 약제학 심포지엄도 성공이었다. 1회 때와 마찬가지로 양국으로부터의 참가자 모두가 심포지엄의 내용과 진행에 만족하였다. 당시 식약청장으로 신분이 바뀌어 있던 나는 그 심포지엄에 참석하여 축사를 하였다.
그 후 일본 호시(星)약과대학 학장을 역임한 나가이 교수(Nagai T)는 이 심포지엄을 범 아시아 차원으로 확장하자고 제안하였다. 우리나라 약제학회 임원들은 이 제안을 마땅치 않게 생각하였다. 모처럼 한일 간에 성사된 심포지엄의 수준이 낮아질뿐더러 한일 간의 유대도 느슨해질 우려가 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일 심포지엄의 한 상대방인 일본측의 대장 나가이 교수가 강력하게 주장하는 데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아시아약제학회(AFPS)는 이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태동되었다. 2007년의 일이다.
그 동안 AFPS 학회는 처음에 우려했던 대로 과학의 수준이 많이 낮아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시아 학회라는 이름 때문에 아시아 각국에 연자를 안배할 수 밖에 없는데, 문제는 일본과 한국 외에 약제학을 수준 높게 연구하는 아시아 나라가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대충 노는 기분으로 AFPS에 참석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사실 나도 그 동안 반쯤은 그런 자세로 AFPS를 바라보곤 하였다.
이런 인식 하에 이번 학회에도 비교적 가벼운 기분으로 참석하여 26일 오후에 ‘나노 의약과 광조사 치료법’이라는 주제로 초청강연을 하였다. 그러나 이 가벼운 기분은 내가 다음 날 오전 중국 베이징 대학의 Zhang Qiang 교수와 태국 출라롱콘 대학의 Pithi Chanvorachote 부교수의 강연 좌장을 맡으면서 완벽하게 사라지게 되었다.
이 두 교수의 연구 수준이 놀랄 만큼 높았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태국 교수는 겨우 35세의 약관(弱冠)이었다. 이에 나는 큰 충격을 받고 다소 자만에 빠져 있던 태도를 반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충격을 우리나라 약제학자들에게도 반드시 전달해 주어야겠다는 사명감을 느꼈다.
국제 학회에 참석하면 언제나 사전에 예기하지 못했던 자극을 받고 돌아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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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5일부터 27일까지 방콕에서 열린 아시아 AFPS(Asia Federation for Pharmaceutical Sciences)에 다녀 왔다. 요즘엔 외국에 오래 머무는 것이 싫어서 꼭 필요한 최소한의 기간만 있다가 돌아 오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AFPS는 ‘아시아 약학회’라고 번역할 수도 있겠지만, 참가자들이 주로 약제학 전공자들이라는 점에서 ‘아시아 약제학회’라고 부르기도 한다.
AFPS는 2007년부터 2년마다 개최국을 바꾸어 가며 열리고 있는데, 재작년에는 우리나라 약제학회의 주최로 제주도에서 열린 바 있다. AFPS는 2002년 나와 일본의 스기야마 교수가 시작한 ‘한일(韓日) 약제학 심포지엄’이 기원이다. 당시 우리나라와 일본 약제학회의 회장이었던 나와 스기야마 교수는, 각국의 약제학자 10명씩이 구두로 발표하는 심포지엄을 2년마다 열기로 합의하였다.
나는 이 합의를 이룬 것이 매우 기뻤다. 세계 최고수준이라고 자부하며 미국이나 유럽하고만 심포지엄을 열어 왔던 콧대 높은 일본 약제학계가 마침내 우리나라 약제학의 수준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고 볼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1회 심포지엄은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열렸다. 우리 측은 최고 수준의 연자 10명을 선정하는 등 최선의 준비를 하였다. 그 결과 심포지엄은 대성공이었다. 즉 우리 측 연자들의 영어 수준도 매우 높았고 영어 발표도 훌륭하였다. 그 심포지엄은 결국 일본 학자들이 우리나라 약제학의 수준을 다시 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실상은 보이는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연자 풀이 엄청나게 큰 일본과 달리 우리로서는 10명의 연자를 선정하는 일 자체가 쉽지 않았다. 연자 수 10명은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연자 수의 상한선이었다. 내가 심포지엄을 매년이 아닌 2년마다 열자고 제안한 것은 이처럼 우리의 연자 동원 능력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본 교토에서 2004년에 열린 제2회 한일 약제학 심포지엄도 성공이었다. 1회 때와 마찬가지로 양국으로부터의 참가자 모두가 심포지엄의 내용과 진행에 만족하였다. 당시 식약청장으로 신분이 바뀌어 있던 나는 그 심포지엄에 참석하여 축사를 하였다.
그 후 일본 호시(星)약과대학 학장을 역임한 나가이 교수(Nagai T)는 이 심포지엄을 범 아시아 차원으로 확장하자고 제안하였다. 우리나라 약제학회 임원들은 이 제안을 마땅치 않게 생각하였다. 모처럼 한일 간에 성사된 심포지엄의 수준이 낮아질뿐더러 한일 간의 유대도 느슨해질 우려가 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일 심포지엄의 한 상대방인 일본측의 대장 나가이 교수가 강력하게 주장하는 데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아시아약제학회(AFPS)는 이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태동되었다. 2007년의 일이다.
그 동안 AFPS 학회는 처음에 우려했던 대로 과학의 수준이 많이 낮아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시아 학회라는 이름 때문에 아시아 각국에 연자를 안배할 수 밖에 없는데, 문제는 일본과 한국 외에 약제학을 수준 높게 연구하는 아시아 나라가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대충 노는 기분으로 AFPS에 참석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사실 나도 그 동안 반쯤은 그런 자세로 AFPS를 바라보곤 하였다.
이런 인식 하에 이번 학회에도 비교적 가벼운 기분으로 참석하여 26일 오후에 ‘나노 의약과 광조사 치료법’이라는 주제로 초청강연을 하였다. 그러나 이 가벼운 기분은 내가 다음 날 오전 중국 베이징 대학의 Zhang Qiang 교수와 태국 출라롱콘 대학의 Pithi Chanvorachote 부교수의 강연 좌장을 맡으면서 완벽하게 사라지게 되었다.
이 두 교수의 연구 수준이 놀랄 만큼 높았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태국 교수는 겨우 35세의 약관(弱冠)이었다. 이에 나는 큰 충격을 받고 다소 자만에 빠져 있던 태도를 반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충격을 우리나라 약제학자들에게도 반드시 전달해 주어야겠다는 사명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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