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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 ‘참 좋은 것 같아요’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입력 2015-12-02 09:38 수정 최종수정 2015-12-02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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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 말 중 좀 이상하고 거북하게 사용되고 있는 표현들을 다루고자 한다.

그런 표현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물건을 사고 계산대에 가서 값을 치르려고 하면 담당 직원이 “계산 도와드리겠습니다”라고 한다. ‘계산을 해 보니 얼마입니다’가 아니라 ‘내가 계산하는 것을 도와주겠다?’ “십만 원 되시겠습니다”도 웃기는 표현이다.

학회에서 사회를 보는 사람이 “지금부터 발표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연자를 소개할 때 “아무개를 소개시켜드리겠습니다”라고 한다. ‘시작하겠습니다’와 “소개하겠습니다’가 바른 표현이라고 한다.

“아침식사 됩니다”와 “좋은 하루 되세요”도 좀 이상하다. 각각 ‘아침 식사 준비할 수 있습니다’와 ‘오늘 하루를 잘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뜻일 터인데 좀 더 나은 표현을 찾아 봐야 할 것이다.

유식한 사람들의 토론을 듣다 보면 ‘일정 정도 책임이 있다’라든지, ‘영향력은 제한적’이라는 표현을 자주 듣는다. 그러나 그냥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 라든지, ‘영향력은 그다지 크지 않다’고 하면 더 알기 쉬울 것이다. 최근 대화 중에 ‘나의 지인(知人)’이라는 표현을 쓰는 사람이 많은데, 과거에는 그냥 ‘내가 아는 사람’이라고 했었다. 나는 ‘지인’보다는 ‘아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귀에 편하다.

자기의 재능을 ‘십분’ 활용한다는 표현이 있다. 내가 알기로 일본어에서는 ‘充分(충분)’을 간단하게 쓸 때 ‘十分(십분)’ 이라고 쓴다. 일본어에서는 充分의 발음이 十分과 똑같이 ‘쥬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充分’과 ‘十分’의 발음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충분’을 ‘십분’으로 대체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 ‘십분’은 있을 수 없다. ‘충분’만이 옳은 표현이다.

사람 중에 말끝마다 ‘제가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또는 ‘맞는 부분입니다’ 식으로 ‘부분’이라는 표현을 오용 남용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의미 전달상 적합하지 않은 ‘부분’에서 사용하는 것은 삼가야 할 것이다. 또 ‘염두(念頭)하다’라는 표현을 쓰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염두에 두다’의 틀린 표현이다.

방송에 나와 인터뷰에 응하면서 “저는 그 때부터 굳은 결심을 하게 됩니다”는 식으로 자신의 과거사를 현재형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거사를 현재형으로 표현하면 신기하게도 그 사람이 마치 위인이나 영웅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또 과거사가 역사적인 일처럼 들리기도 한다. 위인전이나 영웅전 같은 전기에서 그런 현재형 표현을 많이 사용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과거를 현재형으로 말하는 것은 우선 문법적으로 틀렸고, 대부분의 경우 말하는 사람을 교만하게 보이게 만든다는 점에서도 피해야 할 일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지만, ‘생각된다’와 ‘느껴진다’는 ‘생각한다’와 ‘느낀다’로 표현해야 맞다. 우리가 이처럼 수동태 표현을 남용하게 된 것은 십중팔구 일본어의 영향이다. 일본인은 자신이 ‘생각하고’ ‘느낀다’고 능동태로 표현하는 것을 꺼린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두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생각이 ‘된다’고 하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느껴진다’고 책임 회피성 표현을 하는 것이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일본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수동태로 표현하는 것이 예의였을 것이다.

“단풍 길을 걸으니 기분이 참 좋은 것 같아요” 처럼 ‘좋은 것 같아요’도 너무 오남용 되고 있는 비겁한 표현이다. “단풍 길을 걸으니 기분이 참 좋네요”하면 될 일인데, “정말 기분 좋은 것 맞나요?”라고 누가 추궁할까 봐 지레 겁을 먹고 책임을 회피하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역시 일본어의 영향일 것이다. 우리는 이처럼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느끼고, 이런 것이 좋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는 매우 비겁한 언어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이 그만큼 험해졌음을 반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끝으로 평화를 바라는 세계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파리 테러의 희생자들을 진심으로 애도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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