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년에 제59권을 발간하고 있는 ‘약학회지’가 창간된 것은 1948년 3월이다. 그러나 정작 약학회지를 발간하고 있는 ‘대한약학회’는 1951년에 창립되었다. 학회지가 학회보다 3년 먼저 발간되기 시작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 전말을 소개하기로 한다.
1. 일제시대의 ‘조선약학회’ 창립 (1911)
최초의 근대 약학 연구 모임인 조선약학회(朝鮮藥學會)가 창립된 것은 1911년으로 중심이 된 것은 경인 지방의 학자들이었다. 회보인 조선약학회보(朝鮮藥學會報)도 같은 해 창간되었다. 1914년 일본 약학의 태두인 나가이(長井長義)가 방한하자 이를 계기로 전국의 학자들이 모여 조선약학회를 정식으로 발족시켰다. 99명 회원의 대부분은 일본학자이었다. 조선약학회보는 1916년 제6호부터 조선약학잡지(朝鮮藥學雜誌)로 개칭되었다.
당시의 한국인 연구진은 주로 총독부 위생시험소와, 순전히 한국인에 의해 운영되던 계농생약연구소(桂農生藥硏究所) 및 당시 최대의 제약회사인 금강제약(金剛製藥)에 근무하는 연구자들 이었다. 1920년대에 조선약학잡지에 실린 한국인의 논문은 이호벽, 김충현의 논문 2편뿐이었다.
그러나 1930년대는 도봉섭(1934), 한구동(1935, 1942), 신덕균(1937), 김기우(1938) 등이 매년 1명씩 선정 시상하는 우수 논문상을 받을 정도로 한국인들이 활약하였다. 1942년에 열린 조선약학회 창립 30주년 기념 학술행사에서는, 총 50편 중 19편의 연구논문이 한국인에 의해 발표되었다. 조선약학잡지는 일제 말기인 1943년 이후에는 발간되지 않은 것 같다.
2. 광복 후 ‘조선약학회’의 재건(1946) 및 약학회지의 창간(1948)
1945년에 광복이 되자 일본인 중심의 조선약학회는 자연 해산되었다. 다음해인 1946년 4월 13일, 도봉섭, 한구동 등의 한국인을 중심으로 조선약학회를 재건하는 창립총회가 (사립)서울약학대학에서 열렸다.
[회장: 도봉섭, 부회장: 한구동, 서무간사: 심학진, 회계간사: 이남순 (東京帝國大學 약학박사), 편집간사: 허금]. 그 해 12월 14일에는 서울약학대학에서 제1회 학술대회 (30명 참석, 6개의 논문 발표)가 열렸다. 그리고 두 해 뒤인 1948년 3월, 드디어 약학회지(藥學會誌) 제1권 제1호가 발간되었다. ‘藥學會誌’라는 제호(題號)는 김충현씨가 붓으로 썼다고 한다.
3. 6.25 전쟁시 ‘대한약학회’로 개칭 (1951)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나자 조선약학회의 활동이 중단되었다. 1951년 12월 16일, 1948년 수립된 대한민국 국호(國號)에 따라 ‘조선약학회’를 ‘대한약학회(大韓藥學會)’로 개칭하는 발기총회가 열렸다. 장소는 피난지인 부산시의 시청 회의실이었다.
그러나 학회지명은 ‘藥學會誌’를 그대로 계승하기로 하였다. 대한약학회는 1955년 9.28 수복 후인 10월 12일, 을지로 6가에 있는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에서 제1회 학술대회 및 총회를 열었다.
일부 학자들은 6.25를 전후하여 월북하거나 또는 납북되어 북한의 약학을 육성하는 데 참여하였다. 그들은 1957년 ‘조선약학(朝鮮藥學)’이라는 학술잡지를 발행하였고, 1960년에는 북한 보건성 이름으로 ‘조선약전’을 제정하는데 참여하였다. 남한의 대한약전(大韓藥典)은 1958년에 제정 공포되었다.
4. 요약
우리나라 약학회의 역사는 1) 1911년 일제하의 ‘朝鮮藥學會’ 창립, 2) 1946년 광복 후의 ‘朝鮮藥學會’ 재건, 3) 1951년 ‘大韓藥學會’로 개칭 요약할 수 있고, 학회지의 역사는 1) 1911년 ‘朝鮮藥學會報’의 창간, 2) 1916년 ‘朝鮮藥學雜誌’로 개칭, 그리고 3) 1948년 ‘藥學會誌’의 창간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렇다면 대한약학회의 출발 연도는 아무리 늦게 잡아도 해방 후 한국인들에 의해 ‘조선약학회’가 재건된 1946년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 때부터 ‘약학회지’가 발간되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역사는 정확할 때에 비로소 힘이 생기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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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에 제59권을 발간하고 있는 ‘약학회지’가 창간된 것은 1948년 3월이다. 그러나 정작 약학회지를 발간하고 있는 ‘대한약학회’는 1951년에 창립되었다. 학회지가 학회보다 3년 먼저 발간되기 시작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 전말을 소개하기로 한다.
1. 일제시대의 ‘조선약학회’ 창립 (1911)
최초의 근대 약학 연구 모임인 조선약학회(朝鮮藥學會)가 창립된 것은 1911년으로 중심이 된 것은 경인 지방의 학자들이었다. 회보인 조선약학회보(朝鮮藥學會報)도 같은 해 창간되었다. 1914년 일본 약학의 태두인 나가이(長井長義)가 방한하자 이를 계기로 전국의 학자들이 모여 조선약학회를 정식으로 발족시켰다. 99명 회원의 대부분은 일본학자이었다. 조선약학회보는 1916년 제6호부터 조선약학잡지(朝鮮藥學雜誌)로 개칭되었다.
당시의 한국인 연구진은 주로 총독부 위생시험소와, 순전히 한국인에 의해 운영되던 계농생약연구소(桂農生藥硏究所) 및 당시 최대의 제약회사인 금강제약(金剛製藥)에 근무하는 연구자들 이었다. 1920년대에 조선약학잡지에 실린 한국인의 논문은 이호벽, 김충현의 논문 2편뿐이었다.
그러나 1930년대는 도봉섭(1934), 한구동(1935, 1942), 신덕균(1937), 김기우(1938) 등이 매년 1명씩 선정 시상하는 우수 논문상을 받을 정도로 한국인들이 활약하였다. 1942년에 열린 조선약학회 창립 30주년 기념 학술행사에서는, 총 50편 중 19편의 연구논문이 한국인에 의해 발표되었다. 조선약학잡지는 일제 말기인 1943년 이후에는 발간되지 않은 것 같다.
2. 광복 후 ‘조선약학회’의 재건(1946) 및 약학회지의 창간(1948)
1945년에 광복이 되자 일본인 중심의 조선약학회는 자연 해산되었다. 다음해인 1946년 4월 13일, 도봉섭, 한구동 등의 한국인을 중심으로 조선약학회를 재건하는 창립총회가 (사립)서울약학대학에서 열렸다.
[회장: 도봉섭, 부회장: 한구동, 서무간사: 심학진, 회계간사: 이남순 (東京帝國大學 약학박사), 편집간사: 허금]. 그 해 12월 14일에는 서울약학대학에서 제1회 학술대회 (30명 참석, 6개의 논문 발표)가 열렸다. 그리고 두 해 뒤인 1948년 3월, 드디어 약학회지(藥學會誌) 제1권 제1호가 발간되었다. ‘藥學會誌’라는 제호(題號)는 김충현씨가 붓으로 썼다고 한다.
3. 6.25 전쟁시 ‘대한약학회’로 개칭 (1951)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나자 조선약학회의 활동이 중단되었다. 1951년 12월 16일, 1948년 수립된 대한민국 국호(國號)에 따라 ‘조선약학회’를 ‘대한약학회(大韓藥學會)’로 개칭하는 발기총회가 열렸다. 장소는 피난지인 부산시의 시청 회의실이었다.
그러나 학회지명은 ‘藥學會誌’를 그대로 계승하기로 하였다. 대한약학회는 1955년 9.28 수복 후인 10월 12일, 을지로 6가에 있는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에서 제1회 학술대회 및 총회를 열었다.
일부 학자들은 6.25를 전후하여 월북하거나 또는 납북되어 북한의 약학을 육성하는 데 참여하였다. 그들은 1957년 ‘조선약학(朝鮮藥學)’이라는 학술잡지를 발행하였고, 1960년에는 북한 보건성 이름으로 ‘조선약전’을 제정하는데 참여하였다. 남한의 대한약전(大韓藥典)은 1958년에 제정 공포되었다.
4. 요약
우리나라 약학회의 역사는 1) 1911년 일제하의 ‘朝鮮藥學會’ 창립, 2) 1946년 광복 후의 ‘朝鮮藥學會’ 재건, 3) 1951년 ‘大韓藥學會’로 개칭 요약할 수 있고, 학회지의 역사는 1) 1911년 ‘朝鮮藥學會報’의 창간, 2) 1916년 ‘朝鮮藥學雜誌’로 개칭, 그리고 3) 1948년 ‘藥學會誌’의 창간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렇다면 대한약학회의 출발 연도는 아무리 늦게 잡아도 해방 후 한국인들에 의해 ‘조선약학회’가 재건된 1946년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 때부터 ‘약학회지’가 발간되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역사는 정확할 때에 비로소 힘이 생기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