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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 '리스트'와 법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입력 2015-04-22 09:38 수정 최종수정 2015-04-22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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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아무개 리스트’가 공개되면서 총리를 비롯한 정치인들의 정치자금 수수 의혹으로 온 나라가 뒤숭숭하다. 문제가 심각한 것은 리스트에 이름이 오른 정치인만 돈을 받았으리라 믿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그만큼 우리 정치에 돈 문제는 그 저변이 넓고 뿌리가 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발각된 사람도 ‘나만 받았나?’ 하면서 돈 받은 행위 자체보다 허술하게 받은 부주의를 후회하는 웃지 못할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뇌물, 부정 부패 등 범법 행위에 대한 불감증이 극에 달한 느낌이다. 가히 국가적 위기상황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고등학교에서 ‘일반사회’라는 과목을 배울 때부터, 나는 ‘법이란 거미줄 같아야지 매미채 같은 존재이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였다. 집의 처마 밑에 쳐 있는 거미줄을 향해 나는 날벌레는 예외 없이 거미줄에 걸리게 마련이다. 모든 날벌레에 있어서 거미줄은 공정한 규제이다.

반면에 매미채는 그것을 들고 있는 사람이 잡으려고 정한 날벌레를 쫓아가 잡는다. 어떤 벌레를 잡을 것인가는 전적으로 매미채 주인의 선택에 달려있다. 따라서 매미채는 날벌레 입장에서 보면 전혀 공정하지 않은 규제인 것이다.

세상에 범법자는 많지만 극히 일부만 잡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특히 우리나라의 법은 거미줄보다는 매미채에 훨씬 가깝다는 느낌이다. 범법자 중 누구를 잡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수사 당국의 선택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법률이 매미채 같이 운용되고 있는 사회에서는, 붙잡힌 범법자는 범법을 회개하지 않는다. 오히려 ‘왜 하필 나만 표적 수사 하느냐?’고 불만을 품는다.

그래서 모든 범법자는 반드시 단속되는, 거미줄 같은 법률체계나 단속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거미줄이 쳐있는 곳을 지나가는 벌레가 반드시 잡히는 것처럼, ‘법을 어기는 사람은 반드시 걸린다’는 인식이 상식이 되면, 모든 국민은 누가 뭐래지 않아도 법을 지키게 된다. 공정한 법의 권위가 살아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범법자가 너무 많아 현실적으로 모든 범법자를 다 잡아 낼 수 없다는 데에 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범법자의 수를 잡아 낼 수 있을 정도의 규모로 줄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모두가 철저한 준법 생활을 다짐하여야 한다.

지도층이 앞장서서 모범을 보이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겠지만, 지금까지 세상 돌아 가는 모양을 보면 그것은 아무래도 연목구어(緣木求魚)인 듯싶다. 차라리 일반 시민들이 먼저 나서는 편이 나을 듯해 보인다. 한심한 상황이다.

범법자 수를 줄이기 위한 두 번째 방편은 법규의 수준을 대다수의 국민이 지킬 수 있는 수준으로 낮추는 것이다. 적용하면 모든 국민이 다 범법자가 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지나치게 엄격한 법은 실효성이 없다. 그런 상황에서는 사법 당국은 일부 범법자만 단속할 수 밖에 없다.

그러면 국민들은 ‘모든 사람이 법을 어기는데, 걸린 사람은 재수가 없는 사람’이라며 법규를 경시하게 된다. 사법 당국도 부득이 법을 매미채처럼 자의적, 편의적으로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오래 전 ‘준법 투쟁’을 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지하철 노조 뉴스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어떻게 법을 지키는 것이 투쟁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준법투쟁’이란 말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관련 법규를 문자 그대로 지켜서는 지하철이 제대로 운행될 수 없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다. ‘준법투쟁’, 세상에 이런 코미디는 다시 없을 것이다.

이처럼 지나치게 엄격하거나, 또는 앞뒤가 안 맞는 엉터리 법규는 마땅히 개정되어야 한다. 이게 우리가 추구해야 할 ‘규제개혁’의 본질이라고 믿는다. 이렇게 하여 범법자의 수를 대폭 줄인 다음에는, 그 법규를 위반한 모든 범법자를 예외 없이 잡아내야 한다.

범법자 단속에 사법 당국의 ‘의도’가 개입될 여지를 없애야 한다. 그때에야 비로서 법의 공정성과 권위가 세워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범법자의 수가 더욱 줄어드는 선순환 궤도에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나라가 걱정이다. 하나님 보호하여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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