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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 아 옛날이여!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입력 2013-10-10 07:0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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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5월부터 다니기 시작한 Y약품에서의 약 3년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잘 나가던 시절이었다. 사장님에게 잘 보인 나는 평사원 시절에도 공장 간부들과 사장님이 만나는 간부회의에 참석할 수 있었다. 사장님이 특별히 나를 찾으셨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런 저런 이유로 나는 기고만장 (氣高萬丈)의 세월을 보냈다.

당시 나는 시험과에서 P라고 하는 어린이용 앰피실린 드라이 시럽 (복용 시 물을 가해 흔들어 먹이는 분말형 시럽제) 중 앰피실린의 함량을 정량하는 업무를 맡고 있었는데, 한번은 분석하려고 물을 가해 실험대에 놓아 보니 기존 제품들과 달리 시간이 흐를수록 P시럽 고유의 핑크 빛이 엷어지는 것이었다. 전에는 없던 일이라 즉시 상사에게 보고하였더니 회사에 난리가 났다. 그리고는 내게 얼른 변색(變色)의 원인을 찾아내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그러나 이 드라이 시럽제에는 약 20가지의 첨가제가 들어가기 때문에 어떤 첨가제가 잘못 들어갔을까를 찾아내는 일은 쉽지 않아 보였다. 생각해 보니 색갈이 변색(탈색, 脫色)되었다는 것은 아마도 환원제가 잘못 들어갔다는 의미일 것이었다. 그래서 이 시럽제의 원료를 칭량(秤量)하는 원료실을 방문해 보니, 첨가제 중의 하나인 쏘디움 설페이트(S) 통 옆에 환원제인 쏘디움 치오설페이트(TS) 통이 있는 것이었다. 정상적으로 P 시럽제에 가하는 첨가제는 S이었다. 순간 담당자의 착각으로 S 대신 TS를 가해 시럽제를 만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실험실로 돌아와 S 대신에 TS 를 넣어 P 시럽을 조제한 다음 물을 가해 보았더니, 며칠 전에 발견했던 것과 똑 같은 탈색현상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원료실로 달려가 각 원료의 칭량 기록을 살펴 보았다. 예상대로 S 는 처방 보다 많이, 그리고 TS 는 처방보다 모자라게 남아 있었다. 이로써 탈색의 원인이 첨가제를 잘못 넣은 것임을 완벽하게 밝힐 수 있었다.

원료실 책임자는 나에게 살려 달라고 빌었지만 무얼 어떻게 살려 줄 길이 없는 사고이었다. 다행히 P시럽을 조기(早期)에 회수하여 인명(人命) 사고로 연결되지는 않았으니, 그런 의미에서는 내가 그 책임자를 살려 준 것일지도 모르는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부터 나는 GMP가 정말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다행히 그 후로 Y약품에서 유사한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이 공 (功)으로 다음 해 연초에 ‘창의상(創意賞)’과 부상 10만원을 받았는데 10만원은 한 달치 봉급보다도 많은 금액이었다. 나는 다음 해에도 연거푸 이 상을 받았다. 두 해 모두 나 홀로 이 상을 받았으니 내가 얼마나 으쓱했겠는가?   

그런데 회사 내의 시험과를 거쳐 연구과 주임으로 승진하면서 이런 저런 연구를 해 보니 어떻게 연구하는 것이 제대로 연구하는 것인지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예컨대 일본에서 수입하는 남천 (南天)을 가지고 일본에서 팔리고 있는 어린이 감기약 시럽인 ‘남천 시럽’을 만들어 보라는 지시를 받았는데, 어떻게 주물럭거리다 보니 외관상으로는 제법 그럴듯한 시럽 모양을 만들 수 있었고, 당시 보건원으로부터 제품허가도 받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선진국에서도 이렇게 주물럭거려서 제제(製劑)를 만드는지 매우 궁금하였다. 더구나 어린이가 먹을 시럽을 이렇게 대충 만들어도 되는지도 매우 걱정이 되었다.

회사 내에는 이런 의문에 대답을 해 줄만한 마땅한 선배가 계시지 않았다. 그래서 ‘이왕 제제를 설계하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원칙인가를 제대로 배우자. 그러려면 유학을 가서 이 방면의 박사 학위를 받자’라고 결심하게 되었다. 그래서 1977년 회사를 떠나, 1979년 일본 유학 길에 나서게 되었다.  

우리 나라 제약회사의 경영자는 지금도 소속 직원들의 잦은 이직(離職)을 막지 못해 고민하고 있다. 잦은 이직은 자연 업무효율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혹시 이직률은 회사 내에 모방하고 싶은 롤 모델이 없을 때 높아지는 것은 아닐까? 

어쨌든 그 때는 젊기 때문에 두려울 것이 없었다. 아 옛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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