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 타이틀 텍스트
<131> 어쭈, 손을 놔?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입력 2013-07-30 17:39 수정 최종수정 2013-08-05 03:43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스크랩하기
작게보기 크게보기
내가 군대에서 얻어 맞으면서도 감동한 사건 하나를 소개한다. 나는 1971년에서부터 1974년까지 꼬박 34개월을 육군 사병으로 원주에서 근무하였는데, 복무 중 2번이나 유격 훈련 (遊擊訓練, guerrilla training)을 받았다. 유격 훈련은 북한 공비(共匪, communist guerrillas)의 남침에 대비하기 위한 훈련이다. 훈련생들은 모두 자기의 계급과 이름 대신 ‘O번 올빼미’로 불린다. 이는 계급이나 이름이 고려되지 않는 훈련 상황의 상징적 표현이다. 그래서 유격 훈련을 받으러 가는 군인의 심정은 군대에 처음 입소하는 민간인 이상으로 심란하다.

유격은 평시에 하는 작전이 아니다. 기진맥진(氣盡脈盡) 지친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하는 작전이다. 그래서 일부러 그런 상황을 만들어 놓고 훈련을 시킨다. 한마디로 죽을 맛이다. 올빼미들은 우선 강변에서 각종 기합을 받거나 이 산 꼭대기에서 저 산 꼭대기로 선착순 구보(驅步)를 해야 한다. 마침내 올빼미들이 녹초가 되면 그제서야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된다. 로프를 잡고 절벽과 90도 되게 몸을 세우고 절벽을 뛰어 내려오는 훈련은 재미있는 편에 속한다. 훈련의 하이라이트는 아무래도 도강(渡江) 훈련이다. 이는 절벽에서 도르래에 매달려 로프를 타고 저 아래 강으로 뛰어 드는 훈련이다.

나도 남들처럼 기진맥진한 몸을 이끌고 절벽에 서서 두 손으로 도르래를 잡았다. 발 아래로 강이 까마득하였다. 이걸 도대체 어떻게 뛰어내리나 잔뜩 겁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훈련 조교가 곡괭이 자루로 머리와 허리를 후려 갈겼다. “아야, 왜 때려요?” 나는 조건반사적으로 도르래를 잡았던 손을 놓고, 머리와 어깨를 만지며 소리쳤다. 그러자 조교는 “어쭈, 이 XX 봐라, 도르래를 놓네. 너 죽을래?” 하며 계속해서 더 세게 나를 후려치는 것이었다.

왜 때리냐고 분개를 하다 보니 퍼뜩 저 아래에서 “어떤 경우라도 도르래를 놓으면 곧 죽음이다. 머리에 총알이 박혀도 도르래를 놓지 말아라. 알간나?” 하며 우리를 닥달하던 조교의 가르침이 뇌리에 스쳤다. 그 순간 머리와 어깨의 통증을 참고 얼른 다시 도르래를 움켜 잡았다. 그제서야 조교의 매질이 멈추는 것이었다. 나는 진정으로 감탄 감동하였다. “그래 이게 훈련이다! 이게 참 교육이다!”

도르래를 꽉 잡은 올빼미들은 고향에 두고 온 애인의 이름을 애절하게 부르며 한 명씩 절벽을 뛰어 내린다. 얼마만큼 도르래를 타고 쏜 살같이 내려 가다 보면 강 끝 지점에 서있는 조교가 깃발을 드는 게 보인다. 이 순간 과감히 도르래를 놓고 강으로 떨어져야 한다. 이 때 머뭇거리면 강 건너 설치된 담벼락에 부딪혀 큰 부상을 당한다. 강에 떨어져 허우적대는 올빼미들은 보트가 와서 건져 낸다. 

운이 좋은 친구들은 한번만 받아도 되는 이런 유격 훈련을 나는 두 번이나 받았다. 그러나 이 훈련은 평생 나에게 깊은 교훈을 주었다. 원래 비합리적인 것의 극치가 전쟁이고, 따라서 전쟁을 치르는 조직인 군대도 자연 비합리적일 수 밖에 없는 측면이 있는데, 그런데 이 유격 훈련만큼은 전혀 느낌이 달랐다.

극한 상황을 뚫고 살아 남기 위한 훈련이 유격 훈련이라면, 도르래를 잡기 전에 혹독한 기합으로 사람의 진을 빼놓고, 또 도르래를 잡았을 때 어떠한 상황이 닥쳐도 도르래를 놓지 못하게 훈련시키는 것을 비합리적(irrational)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오히려 혹시 초합리적(超合理的, surrational)이라는 말이 있다면 그 말이 더 적절할 것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미국에서 입원환자 중 약 10만 명이 의약품의 부작용으로 죽고 있을 정도로 의약품의 안전 사용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명제이다. 이와 관련하여 30년 6개월간의 약대 교수 생활을 돌아 보니, 어떤 지식은 유격훈련처럼 초합리적인 훈련을 통해서라도 반드시 예비 약사들에게 암기시켰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아쉬움이 든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같은 소리지만 말이다.
전체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인기기사 더보기 +
인터뷰 더보기 +
설덕인 원장, “천연물 기반 질염 치료제 개발할 것”
웨스트파마슈티컬서비스 “주사제 ‘용기·투여 시스템’까지 검증 필수”
창고형 약국 공세…'가격으론 못 이긴다' 동네약국 생존법은
약업신문 타이틀 이미지
[]<131> 어쭈, 손을 놔?
아이콘 개인정보 수집 · 이용에 관한 사항 (필수)
  - 개인정보 이용 목적 : 콘텐츠 발송
- 개인정보 수집 항목 : 받는분 이메일, 보내는 분 이름, 이메일 정보
- 개인정보 보유 및 이용 기간 : 이메일 발송 후 1일내 파기
받는 사람 이메일
* 받는 사람이 여러사람일 경우 Enter를 사용하시면 됩니다.
* (최대 5명까지 가능)
보낼 메세지
(선택사항)
보내는 사람 이름
보내는 사람 이메일
@
Copyright © Yakup.com All rights reserved.
약업신문 의 모든 컨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약업신문 타이틀 이미지
[]<131> 어쭈, 손을 놔?
이 정보를 스크랩 하시겠습니까?
스크랩한 정보는 마이페이지에서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Copyright © Yakup.com All rights reserved.
약업신문 의 모든 컨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