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서울에서 자가용으로 출퇴근하게 된 A박사에게 직장동료 B가 조언을 하였다. ‘한국에서 운전을 하려면 지갑에 면허증과 오천원짜리 한 장을 함께 끼워 놓아야 한다’고. A박사는 ‘아마 그렇게 해야 사고가 잘 안 난다는 말인가 보다’ 생각하고 즉시 실행에 옮겼다. 어느 날 시내를 지나는데 교통 경찰이 차를 세우고 면허증을 보여달라는 것이었다. 면허증을 제시하였더니 경찰은 잠시 후 말없이 면허증을 되돌려 주었다. 한참을 가던 A 박사는 면허증 뒤에 끼워 놓았던 오천 원권이 없어진 사실을 발견하였다. ‘내가 부적처럼 갖고 다니는 오천 원권을 빼 가다니!’ 화가 치밀어 오른 그는 그 자리에서 차를 돌려 경찰에게 다가 갔다. 그리고 따졌다. “여보시오, 왜 남의 돈을 빼 갑니까?”라고. 그 말을 들은 경찰은 창백해진 얼굴로 황급히 돈을 돌려 주며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를 반복하였다.
직장에 도착한 A 박사는 ‘별 이상한 경찰이 다 있더라’며 동료 B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B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어어 A박사, 앞으로는 그 길로 다니다가 절대로 신호 위반을 하면 안 됩니다. 다시 그 경찰한테 걸리면 절대로 무사하지 못 할 겁니다”.
A 박사는 당시 운전자들이 경찰에게 걸리면 돈을 주는 관행(?)을 몰랐기 때문에 그 경찰이 몹시 불쾌했었다. 한편 경찰은 얼마나 놀랐을까? 운전자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면 경찰에게 돌아 와 ‘왜 내 돈 가져갔냐?’고 따졌을까 싶었을 것이다. 아마 자기가 짤리는(파면되는) 순간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이상은 1980년대의 이야기이다.
지금은 그 때처럼 교통경찰이 돈을 받는 관행은 우리나라에서 거의 완벽하게 사라졌다. 정말 용케도 없어졌다. 놀랍고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일을 보면 우리나라에 아직까지 남아 있는 적지 않은 불합리한 일들도 언젠가는 없어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희망이 생긴다.
말이 나온 김에 돌아 보니 학교에도 그 동안 사라진 것들이 많았다. 우선 교수들이 학부 강의를 빼먹는 소위 ‘휴강’이 거의 완벽하게 사라졌다. 내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 (1967~1971) 연건동에 있던 약대는 봄이 되면 당시 창경원에서 흘러 나오는 스피커 소리 때문에 공부 분위기가 흐트러지곤 하였다. 학생들은 수업에 들어 오신 교수님을 보고 “선생님, 휴강해 주세요” 소리를 두세 번 외친다. 그러면 교수님은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휴강을 한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때 휴강이 많았던 것은 무엇보다 교수님들의 불성실함 때문이었다. 어떤 교수님은 전날 과음하신 탓에, 또 어떤 교수님은 테니스를 치다 보니 수업시간에 맞추어 오기 어렵다는 등, 요즘 같으면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휴강을 하였다. 그랬던 휴강이 1980년대부터 서서히 없어지더니, 90년대 이후에는 거의 완벽하게 대학에서 사라졌다.
또 하나 학교에서 사라진 것은 교수들의 ‘교과서 표절’이다. 2010년대 전까지만 해도 외국 책을 서너 권 번역한 후 적당히 편집을 하여 교과서로 만드는 것이 관례이었다. 그 때에는 ‘표절’이라는 말 자체도 없었다. 당시에는 외국 책을 베끼지 않고는 교과서를 만들 방법이 달리 없기도 하였다. 나만 해도 1999년까지 두 권의 책을 썼는데, 외국의 유명한 한 책을 중심으로 기타 몇 가지 책을 참조 보완하여 나름대로 독창성 있게 만든 것이었다. 그러나 ‘남의 책에서 문장이나 그림, 또는 표의 일부를 가져다 써도 ‘표절’이 되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내 책들도 아마 ‘표절’의 의혹을 벗기 어려울 것이다.
요즘 원전비리(原電非理) 때문에 전기가 모자란다고 아우성이다. 에어컨도 못 켜게 해서 더욱 덥다. 이처럼 우리를 답답하게 하는 불합리한 일들이 아직도 부지기수이지만, ‘돈 받는 경찰이 없어지고, 대학에서 휴강과 표절이 사라진’ 기적들을 회고하면서, 언젠가는 원전비리 같은 일도 근본적으로 사라질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가져 본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덜 더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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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서울에서 자가용으로 출퇴근하게 된 A박사에게 직장동료 B가 조언을 하였다. ‘한국에서 운전을 하려면 지갑에 면허증과 오천원짜리 한 장을 함께 끼워 놓아야 한다’고. A박사는 ‘아마 그렇게 해야 사고가 잘 안 난다는 말인가 보다’ 생각하고 즉시 실행에 옮겼다. 어느 날 시내를 지나는데 교통 경찰이 차를 세우고 면허증을 보여달라는 것이었다. 면허증을 제시하였더니 경찰은 잠시 후 말없이 면허증을 되돌려 주었다. 한참을 가던 A 박사는 면허증 뒤에 끼워 놓았던 오천 원권이 없어진 사실을 발견하였다. ‘내가 부적처럼 갖고 다니는 오천 원권을 빼 가다니!’ 화가 치밀어 오른 그는 그 자리에서 차를 돌려 경찰에게 다가 갔다. 그리고 따졌다. “여보시오, 왜 남의 돈을 빼 갑니까?”라고. 그 말을 들은 경찰은 창백해진 얼굴로 황급히 돈을 돌려 주며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를 반복하였다.
직장에 도착한 A 박사는 ‘별 이상한 경찰이 다 있더라’며 동료 B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B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어어 A박사, 앞으로는 그 길로 다니다가 절대로 신호 위반을 하면 안 됩니다. 다시 그 경찰한테 걸리면 절대로 무사하지 못 할 겁니다”.
A 박사는 당시 운전자들이 경찰에게 걸리면 돈을 주는 관행(?)을 몰랐기 때문에 그 경찰이 몹시 불쾌했었다. 한편 경찰은 얼마나 놀랐을까? 운전자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면 경찰에게 돌아 와 ‘왜 내 돈 가져갔냐?’고 따졌을까 싶었을 것이다. 아마 자기가 짤리는(파면되는) 순간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이상은 1980년대의 이야기이다.
지금은 그 때처럼 교통경찰이 돈을 받는 관행은 우리나라에서 거의 완벽하게 사라졌다. 정말 용케도 없어졌다. 놀랍고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일을 보면 우리나라에 아직까지 남아 있는 적지 않은 불합리한 일들도 언젠가는 없어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희망이 생긴다.
말이 나온 김에 돌아 보니 학교에도 그 동안 사라진 것들이 많았다. 우선 교수들이 학부 강의를 빼먹는 소위 ‘휴강’이 거의 완벽하게 사라졌다. 내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 (1967~1971) 연건동에 있던 약대는 봄이 되면 당시 창경원에서 흘러 나오는 스피커 소리 때문에 공부 분위기가 흐트러지곤 하였다. 학생들은 수업에 들어 오신 교수님을 보고 “선생님, 휴강해 주세요” 소리를 두세 번 외친다. 그러면 교수님은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휴강을 한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때 휴강이 많았던 것은 무엇보다 교수님들의 불성실함 때문이었다. 어떤 교수님은 전날 과음하신 탓에, 또 어떤 교수님은 테니스를 치다 보니 수업시간에 맞추어 오기 어렵다는 등, 요즘 같으면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휴강을 하였다. 그랬던 휴강이 1980년대부터 서서히 없어지더니, 90년대 이후에는 거의 완벽하게 대학에서 사라졌다.
또 하나 학교에서 사라진 것은 교수들의 ‘교과서 표절’이다. 2010년대 전까지만 해도 외국 책을 서너 권 번역한 후 적당히 편집을 하여 교과서로 만드는 것이 관례이었다. 그 때에는 ‘표절’이라는 말 자체도 없었다. 당시에는 외국 책을 베끼지 않고는 교과서를 만들 방법이 달리 없기도 하였다. 나만 해도 1999년까지 두 권의 책을 썼는데, 외국의 유명한 한 책을 중심으로 기타 몇 가지 책을 참조 보완하여 나름대로 독창성 있게 만든 것이었다. 그러나 ‘남의 책에서 문장이나 그림, 또는 표의 일부를 가져다 써도 ‘표절’이 되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내 책들도 아마 ‘표절’의 의혹을 벗기 어려울 것이다.
요즘 원전비리(原電非理) 때문에 전기가 모자란다고 아우성이다. 에어컨도 못 켜게 해서 더욱 덥다. 이처럼 우리를 답답하게 하는 불합리한 일들이 아직도 부지기수이지만, ‘돈 받는 경찰이 없어지고, 대학에서 휴강과 표절이 사라진’ 기적들을 회고하면서, 언젠가는 원전비리 같은 일도 근본적으로 사라질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가져 본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덜 더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