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온누리교회 설교 시간에 이재훈 목사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다. 온누리교회의 담임목사이셨던 고 하용조 목사님께서 부목사님들과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일어난 일이란다. 한 젊은 부목사가 ‘자기는 영어를 잘 못해서 속상하다’는 취지의 하소연을 했단다. 이 말은 들은 하목사님은 “속상해 하지마”라고 말한 뒤 “사실이잖아?” 했단다.
많은 교인들이 이 예화를 듣고 감동하였다. 마침 이날 이목사님의 설교 주제가 겸손이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설교 말씀에 따르면, 열등감은 교만한 사람이 나타내는 반응이며,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겸손할 수 있지만 교만한 사람은 같은 상황을 굴욕으로 느끼기 쉽다고 한다. 또 열등감은 자기에게 없는 것을 슬퍼하는 감정인데, 열등감을 갖는 사람이 바로 교만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겸손과 굴욕은 영어로 각각 humility와 humiliation로 두 단어가 매우 비슷하다는 사실이다. 이는 두 단어의 어원이 같기 때문이란다. 다시 말해서 겸손과 굴욕은 본질적으로 같은 특성이라는 것이었다.
나도 수시로 “영어를 못해서 답답해” 소리를 하고 다닌다. 겸손이 아니라 사실이다. 사실인데도 솔직히 열등감을 느낄 때가 많았다. “내가 영어만 잘 했으면 세상을 뒤엎었을 것이다”라고 마음 속 허풍을 떨기도 하였다. 그런데 목사님 말씀을 듣고 보니 내 마음에 겸손을 가장한 교만이 자리잡고 있었다. 맞다. 내가 혹시 영어를 잘 했다면 아마 다른 것에 열등감을 느끼며 살았을 것이다. 그날 목사님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우리들 마음에 겸손을 가장한 열등감, 그리고 그에 기인한 교만함이 자리잡고 있음을 돌아 보게 되지 않았을까?
한편 나는 갑자기 하목사님이 생전의 설교 중에 하신 말씀, 즉 ‘중요한 것은 어떤 말을 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그 말을 하느냐이다’라는 말씀이 떠 올랐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 또는 “자연으로 돌아가라” 등등의 말들은 사실 그 말들을 한 사람들이 유명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유명해진 말들이라는 것이다. 전적으로 동감이다. 그렇다면 유명한 말을 남기기 위해서는 먼저 유명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그러나 유명한 사람의 말이라고 해서 다 유명해 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행적에 감동이 있는 사람의 말이라야 감동을 줄 수 있고, 감동을 주는 말이라야 후세에 유명해 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고 하는 말은 에디슨 같은 대천재가 하면 감동이지만, 실제로 아무 것도 발명하지 못한 바보가 하면 무슨 감동이 있고, 어떻게 유명한 말이 될 수 있겠는가? 장애를 극복한 닉 부이치치 같은 분이 하는 말은 말마다 감동이다. 그러나 난관을 극복하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의 말은 감동으로 받아들여 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정말로 무슨 말이냐 보다 누가 그 말을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말에 공감이 간다.
사실 “사실이잖아”라는 말도 인자하고 영적 권위가 있는 하목사님이 했으니까 감동이나 교훈으로 받아들여 질 수 있는 것이지, 만약 다른 사람이 그 말을 했다면 다르게 받아들여졌을지도 모르겠다. 요컨대 감동이 있는 인격자의 입에서 나온 말만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고 후세에 유명해질 수도 있을 것이란 이야기이다.
교회를 오랫동안 섬기다 보면 대중기도를 할 기회가 주어진다. 대중기도란 남들을 대표하여 소리 내어 하나님께 기도 드리는 것이다. 처음에 내게 그 역할이 주어졌을 때의 난감함을 잊을 수 없다. 기도에 적합한 성경 구절을 인용할 지식도 모자랐지만, 무엇보다 마치 믿음이 좋은 사람처럼 거룩한 말씀을 동원하여 기도를 올려도 괜찮은 것일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이제 세월이 흘러 조금 기도의 연륜이 쌓인 지금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혹시 기도의 기술만 느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신실한 삶을 살지 못하고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 대중기도는 늘 두려운 행사이다. 기도에 있어서도, 내용보다 누가 드리는가가 더 중요할지 모른다는 생각이다.
| 인기기사 | 더보기 + |
| 1 | “조건부 허가 아니다” 큐로셀 CAR-T ‘림카토주’ 3상 없이 정식 허가된 이유 |
| 2 | 100만 바이오 빅데이터 문 열린다… '의료 AI·신약' 대도약 시대 개막 |
| 3 | 유통업계, 대웅 압박 국회로…5월 국회 릴레이 1인 시위 돌입 |
| 4 | FDA, 암젠 희귀질환 치료제 허가 취소 압박…‘데이터 조작’ 직접 언급 |
| 5 | 중국 제약사 세계 최초 재조합 보툴리눔 독소 개발 |
| 6 | 임상 규제 허문다… 복지부, 시범사업 넘어 '분산형 임상' 전격 제도화 |
| 7 | 화이자, ‘빈다맥스’ 제네릭 2031년까지 봉쇄…ATTR-CM 시장 주도권 경쟁 격화 |
| 8 | EU 포장규제 8월 시행…K-뷰티도 준비해야 |
| 9 | 제약바이오,차세대 스타트업 투자·육성 본격화..'전주기 동반 성장' 확산 |
| 10 | 알파타우, 유럽서 ‘알파다트’ 이용 췌장암 환자 첫 치료 성공 |
| 인터뷰 | 더보기 + |
| PEOPLE | 더보기 + |
| 컬쳐/클래시그널 | 더보기 + |

며칠 전 온누리교회 설교 시간에 이재훈 목사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다. 온누리교회의 담임목사이셨던 고 하용조 목사님께서 부목사님들과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일어난 일이란다. 한 젊은 부목사가 ‘자기는 영어를 잘 못해서 속상하다’는 취지의 하소연을 했단다. 이 말은 들은 하목사님은 “속상해 하지마”라고 말한 뒤 “사실이잖아?” 했단다.
많은 교인들이 이 예화를 듣고 감동하였다. 마침 이날 이목사님의 설교 주제가 겸손이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설교 말씀에 따르면, 열등감은 교만한 사람이 나타내는 반응이며,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겸손할 수 있지만 교만한 사람은 같은 상황을 굴욕으로 느끼기 쉽다고 한다. 또 열등감은 자기에게 없는 것을 슬퍼하는 감정인데, 열등감을 갖는 사람이 바로 교만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겸손과 굴욕은 영어로 각각 humility와 humiliation로 두 단어가 매우 비슷하다는 사실이다. 이는 두 단어의 어원이 같기 때문이란다. 다시 말해서 겸손과 굴욕은 본질적으로 같은 특성이라는 것이었다.
나도 수시로 “영어를 못해서 답답해” 소리를 하고 다닌다. 겸손이 아니라 사실이다. 사실인데도 솔직히 열등감을 느낄 때가 많았다. “내가 영어만 잘 했으면 세상을 뒤엎었을 것이다”라고 마음 속 허풍을 떨기도 하였다. 그런데 목사님 말씀을 듣고 보니 내 마음에 겸손을 가장한 교만이 자리잡고 있었다. 맞다. 내가 혹시 영어를 잘 했다면 아마 다른 것에 열등감을 느끼며 살았을 것이다. 그날 목사님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우리들 마음에 겸손을 가장한 열등감, 그리고 그에 기인한 교만함이 자리잡고 있음을 돌아 보게 되지 않았을까?
한편 나는 갑자기 하목사님이 생전의 설교 중에 하신 말씀, 즉 ‘중요한 것은 어떤 말을 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그 말을 하느냐이다’라는 말씀이 떠 올랐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 또는 “자연으로 돌아가라” 등등의 말들은 사실 그 말들을 한 사람들이 유명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유명해진 말들이라는 것이다. 전적으로 동감이다. 그렇다면 유명한 말을 남기기 위해서는 먼저 유명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그러나 유명한 사람의 말이라고 해서 다 유명해 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행적에 감동이 있는 사람의 말이라야 감동을 줄 수 있고, 감동을 주는 말이라야 후세에 유명해 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고 하는 말은 에디슨 같은 대천재가 하면 감동이지만, 실제로 아무 것도 발명하지 못한 바보가 하면 무슨 감동이 있고, 어떻게 유명한 말이 될 수 있겠는가? 장애를 극복한 닉 부이치치 같은 분이 하는 말은 말마다 감동이다. 그러나 난관을 극복하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의 말은 감동으로 받아들여 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정말로 무슨 말이냐 보다 누가 그 말을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말에 공감이 간다.
사실 “사실이잖아”라는 말도 인자하고 영적 권위가 있는 하목사님이 했으니까 감동이나 교훈으로 받아들여 질 수 있는 것이지, 만약 다른 사람이 그 말을 했다면 다르게 받아들여졌을지도 모르겠다. 요컨대 감동이 있는 인격자의 입에서 나온 말만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고 후세에 유명해질 수도 있을 것이란 이야기이다.
교회를 오랫동안 섬기다 보면 대중기도를 할 기회가 주어진다. 대중기도란 남들을 대표하여 소리 내어 하나님께 기도 드리는 것이다. 처음에 내게 그 역할이 주어졌을 때의 난감함을 잊을 수 없다. 기도에 적합한 성경 구절을 인용할 지식도 모자랐지만, 무엇보다 마치 믿음이 좋은 사람처럼 거룩한 말씀을 동원하여 기도를 올려도 괜찮은 것일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이제 세월이 흘러 조금 기도의 연륜이 쌓인 지금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혹시 기도의 기술만 느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신실한 삶을 살지 못하고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 대중기도는 늘 두려운 행사이다. 기도에 있어서도, 내용보다 누가 드리는가가 더 중요할지 모른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