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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입력 2013-04-10 10:2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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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그 콘서트’라는 티브이 프로그램을 보면 어떤 사안 (事案)에 대하여 새로운 시각의 정의를 내리는 코너가 인기를 끌고 있다. 오늘은 이를 흉내 내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내 나름의 정의를 내려 보기로 한다. 팔구십을 훌륭하게 살고 계신 대 선배님들 보시기에 가소로운 이야기이겠지만 말이다.
 

1. 나로부터 아버지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다. 문득 거울을 보니 그 속에 내가 아닌 늙으신 아버지 모습이 보인다! 순간 가슴에 애잔한 바람이 지나간다.      

2. 여기저기 아프다는 소리를 자주 하게 되는 것이다. 나도 요즘 들어 여기 저기가 아프고 기분도 종종 우울하다. 보통 감기에도 ‘이번에 잘못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비장한 생각이 들더라는 대 선배님의 말씀이 떠 오른다. 그러나 아무도 ‘아프다’는 소리를 귀담아 들어주지 않는다. 마치 내가 과거에 어머니의 하소연을 ‘노인들의 18번’ 쯤으로 치부하였던 것처럼. 

3. 서운한 게 많아지는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 존재감이 가벼워진다. 곧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그래서일 것이다. 젊었을 때와 달리 별 것도 아닌 일에 자주 섭섭하다. 학회나 결혼식장에 갔을 때 제자들이 멀리서 보고 목례 (目禮)만 하고 가까이 오지 않으면 섭섭하다. 또 몸이 아프다고 했는데도 자식들이 관심을 표시해 주지 않으면 살짝 섭섭하다. 그래서 젊은이와 자식들에게 가끔 이른다. 어른을 뵐 땐 반드시 다가 가서 손을 잡고 흔들면서 ‘건강은 어떠시냐’, ‘재미는 어떠시냐’ 꼭 여쭈어 보라고.  

4. 효도 받기를 좋아하게 되는 것이다. 며느리가 밥상을 차려 놓고 “식사하세요’ 부르면 기분이 좋아진다. “진지 잡수세요” 라고 극존칭을 써 주면 더 좋다. 또 “어디 편찮은 데 없으세요?” 소리에 통증이 반쯤 사라지고, “아버지 잘 다녀 오셨어요? 아버지” 하며 앞 뒤로 ‘아버지’ 소리를 붙여주면 더더욱 행복해 진다. 용돈까지 받으면 금상첨화 (錦上添花)의 기분이 된다. 

5. 손주가 무지무지 예뻐지는 것이다. 손주는 내 삶의 동력이자 내 애인이다. 나는 매일 아침 큰 아들 집에 가서 두 손녀에게 밥을 먹이고, 내 차로 어린이 집에 데려다 준 후 출근한다. 저녁 때는 아침의 역순 (逆順)으로 어린이 집에 가서 애들을 데리고 아들 집에 가서 저녁을 먹인다. 주일마다 교회에 가서는 둘째 아들이 낳아 준 손자를 만난다. 손주를 생각하면 살 맛이 나고 건강해 지고 싶어진다. 손주에 관한 한 세상에서 나보다 행복한 할아버지는 없을 것이다. 

6. 매사에 관심이 없어지거나 반대로 쓸 데 없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사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별로 없어진다. 94세이신 아버지는 용돈을 드리면 세어보기만 하신다. 그런데 90 가까이 되신 숙부는 상황이 반대이다. 설날이나 추석 때 우리 집에 오시면, “서울대학교가 법인화 된 후 뭐가 달라졌느냐, 동사무소를 주민센터라고 이름을 바꾼 것이 과연 잘 한 일이냐?” 등 묻는 것도 많으시다. 파고다 공원에 왜 애국지사가 많은지 그 이유를 알 것도 같다.

7. 말이 많아지는 것이다. 행여 젊은이가 무얼 물어 오면 ‘오, 아직 내 가치가 있는 모양이구나’ 흥분해서 말이 많아진다. 물론 젊은이는 대개 ‘괜히 물었네’ 후회하게 된다. ‘나이 먹으면 지갑은 열고 입은 닫으라’는 말이 그래서 생긴 모양이다. 아버지는 경제적으로 어렵게 사는 집안의 젊은이에게 늘 이르셨다. “근면만 하면 잘 살 수 있는 세상이니 열심히 살거라”. 나이 먹은 사람은 자신의 지혜를 남에게 가르쳐 주고 싶어 한다. 그러나 젊은이는 ‘노인의 지혜는 곧 잔소리’ 라고 생각한다.  

8. 끝으로 이처럼 바뀌는 자신의 변화에 놀라게 되는 것이다. 나도 내가 인사 받기나 즐기고, 잔소리 하기를 좋아하며, 며느리의 ‘식사 하세요’ 소리에 행복해 하는 그런 ‘시시한’ 사람이 되어 갈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사람은 나이 먹으면 누구나 다 별 수 없음을 배워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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