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스무 살이 되었을 무렵 ‘나는 이미 20세 때 인생의 목표를 세웠었다’는 아버지 말씀을 듣고 매우 초조해 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대학생이던 나는 미래에 대해 아무런 구체적인 계획이나 인생관을 정립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내년에는 어떻게 방향이 떠오르겠거니’ 하며 한 해 두 해 세월만 보내고 있었다. 대학을 졸업을 할 때가 되었는데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 대학원에 들어가서 생각하자’는 마음에서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다.
요즘 대학생이나 대학원생들을 보면 그 때의 내 모습이 떠 오른다. 내가 그 때 그랬던 것처럼 그들도 인생의 방향을 세우지 못해 고민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시대를 불문하고 젊었을 때 인생의 목표를 세우기란 쉬운 일이 아닌가 보다. 그도 그럴 것이 미래란 가보지 않은 길이 아니겠는가? 그러고 보면 스무 살에 인생관을 정립하신 우리 아버지는 정말 대단한 분인 것 같다.
나는 우리 대학원 학생들이 세계적인 과학자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것은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어렵게 생각하지 먼저, 자신이 속한 그룹에서 가장 성실하고 유능한 사람이란 평을 듣도록 노력해라. 그러면 그 다음 길은 저절로 열릴 것이다’라고 말한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인생은 하늘에 매달린 비전의 사다리 오르기’와 같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다리는 한 칸을 오를 때마다 시야 (視野)가 넓어져 밑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세상이 보인다. 우리의 인생도 사는 도중에 얻은 깨달음을 통해 더 큰 비전을 품을 수 있다. 그러므로 먼 곳을 보고자 한다면 사다리를 올라가야 한다. 인생도 젊은 날의 짧은 안목으로 지나치게 먼 훗날을 정확하게 설계할 수 없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일단 네가 속한 그룹에서 좋은 평을 듣도록 노력하라’고 매우 단순한(?) 지침을 주는 것이다.
좋은 평을 듣는 학생은 지도 교수의 강력한 추천서를 받아 좋은 연구를 할 기회를 얻기 쉽다. 다시 그 곳에서 좋은 연구 결과를 내면 훌륭한 학자들과 교류할 기회나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다. 이처럼 지금 내 앞에 주어진 과제를 성실히 수행하면 좋은 일이 연속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비전의 선(善) 순환’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성취가 더 높은 비전을 낳고, 높은 비전이 더 좋은 결과를 낳는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지금 내 앞에 놓여진 과제를 성실히 수행하여야 한다. 마치 사다리를 한 칸씩 오르는 심정으로.
‘성실히 노력하면 그 다음은 저절로 풀린다’는 말을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예컨대 비전을 품고 사다리를 오르다 보면 많은 ‘은혜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1979년 나는 일본 문부성 장학생에 응시하여 선발되었는데, 그것은 지금은 동료가 된 C교수가 2년 먼저 장학생으로 선발된 데에 자극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지금 다른 대학에 근무하는 Y교수는 나보다 2년 뒤에 일본 유학 길에 올랐는데, 그는 아마 나나 C교수에게 자극을 받았을 것이다. 나나 Y가 C로 부터 자극을 받았던 것은 우리 모두가 유학이라는 비전의 사다리를 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사다리를 오르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은혜의 사람’이 눈에 띠기 마련인 것이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란 말이 생각난다. 아이 교육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를 간 맹자님의 어머니 이야기인데, 이는 아마 ‘은혜의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만날만한 자리’로 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만날만한 자리’가 비전의 사다리라고 믿는다. 가수 노사연의 노래말처럼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누군가와의 만남은 우연만은 아닌 것 같다.
‘사랑하는 제자들이여, 인생의 목표를 세우려고 너무 고민만 하지 말고 지금 여러분 앞에 주어진 사다리의 첫 칸을 착실히 올라가라. 그 다음은 올라가 보면 생각이 날 것이다.’ 내 말이 학생들에게 조그만 위로라도 되었으면 한다. 저는 ‘바담 풍’ 하면서도 제자들은 ‘바람 풍(風)’ 하기를 바라는 훈장의 심정으로 한 말씀 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