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어느덧 큰 아들로부터 두 명의 손녀, 그리고 작은 아들로부터 한 명의 손자를 얻었다. 작은 며느리는 전업 주부를 선언하고 제 손으로 애를 키우고 있기 때문에, 우리 부부는 맞벌이 부부인 큰 아들 내외가 낳은 다섯 살짜리와 세 살짜리 손녀를 봐 주고 있다.
우리 부부는 일주일에 삼 일은 아침 일찍 큰 아들 집으로 출근한다. 자동차로 10분 걸린다. 아내는 출근하는 며느리 밥상을 차리고 나는 어린이집에 데리고 갈 두 손녀에게 밥을 먹인다. 두 아이에게 밥을 먹이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밥을 잘 먹어야 예쁜 공주가 될 수 있다’는 둥 별 소리를 다 해 가며, 때로는 쫓아다니며 먹여야 한다. 대충 먹인 다음에는 물수건으로 얼굴을 씻기고 옷을 입힌다. 옷을 입히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다섯 살짜리는 때때로 꼭 무슨 옷을 입어야겠다고 고집을 피운다. 한편 세 살짜리는 신발은 꼭 제 손으로 신어야 한다고 고집을 피운다.
그 다음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에 가서 내 차에 두 손녀를 태운다. 큰애에게는 안전 벨트를 채우고, 작은 애는 아직 어려 아내가 안고 탄다. 다행히 어린이집은 15분 거리에 있다. 아내는 작은 애를 ‘꽃사과반’으로 데리고 가고, 나는 큰애를 ‘진달래반’으로 데리고 간다. 작은 애는 할머니와 헤어질 때마다 울더니 얼마 전부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이빠이”다. 그 뒤 나는 아내를 우리 집에 태워다 주고 학교로 출근한다. ‘1단계 임무 완료’이다.
저녁이면 나는 아침의 역순(逆順)으로 2단계 임무에 돌입한다. 즉 오후 6시에 학교에서 나와 어린이집에 들러 미리 와 있는 아내와 함께 애들을 태우고 큰 아들네로 간다. 참, 매주 월요일 저녁 7시에는 큰 애가 우리 집에서 ‘한글나라’ 공부를 하기 때문에 우리 집에 데리고 갔다가 아들 집으로 데리고 가야 한다. 아들 집에 오면 아내는 저녁 밥상을 차린다. 아들 내외가 퇴근하면 여섯 식구가 식사를 함께 한다. 역시 시간이 걸린다.
식사를 마쳤다고 ‘일과 끝’이 아니다. 이제부터는 애들과 놀아야 한다. 어찌나 애들이 나를 좋아하는지 잠시도 나를 가만 두지 않는다. 큰애는 특히 ‘역할 바꾸어 놀기’를 좋아한다. 자기가 ‘엄마’가 될 테니 나보고는 ‘자기’의 역할을 하란다. 그리고는 진짜 엄마처럼 나에게 이런 저런 심부름을 시키기도 하고 잔소리를 하기도 한다. 때로는 나보고 결혼을 하잔다. 어디서 보았는지 ‘입장’에서부터 ‘주례사 듣기’, ‘애기 돌보기’ 등을 함께 하자고 조른다. 이런 식으로 안아주고 업어 주고, 엄마 아빠 놀이와 소꿉놀이의 상대가 되어 주다 보면 옆구리가 결리고 허리가 아파 온다. 우리 집으로 돌아 오고 싶어진다. 그러니 큰 손녀는 저녁 9시 반에서 10시 반이나 되어야 ‘퇴근’할 수 있도록 우리를 ‘풀어’준다.
일주일의 나머지 나흘 중 이틀은 외할머니가 와서 봐 주시고 나머지 이틀 즉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아들 내외가 애들을 본다. 그런데 우리 부부는 당번이 아닌 토요일이나 일요일에도 특별히 할 일이 없으면 스스로 큰 아들네 가서 애들과 논다. 스스로 생각해도 심각한 애들 중독 현상이다. 우리가 하도 큰 아들네 애들과만 노니까 작은 아들 내외는 살짝 서운해 하기도 한다.
손녀들과 놀면서 깨달은 것은 손녀들과 노는데도 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만화영화 ‘뽀로로’에 나오는 캐릭터의 이름 정도는 외우고 있어야 한다. 또 백설공주와 신데렐라, 그리고 인어 공주가 어떻게 다른지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겨우 대화가 된다. 바람직하기는 스마트폰이나 ‘아이패드’의 작동법을 숙지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만화, 동요, 율동, 그림 그리기, 동영상 등 아이가 좋아할만한 모든 것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제 ‘신혼 부부 학교’나 ‘아버지 학교’처럼, 교회 같은 곳에 ‘할아버지 학교’가 생겼으면 한다.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좋은 할아버지 노릇을 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음을 절감하기 때문이다. 이래서 ‘배움에 끝이 없다’는 말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