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학교에서 퇴근할 때 연구실에서 나와 보니 건물 앞에 내 차가 없었다. 순간 도둑 맞았나 했지만 곧 점심 때 혼자 차를 타고 구내 식당에 갔다가 걸어서 돌아 온 것이 생각났다. 식당에서 동료들을 만나 잡담을 하다가 그만 차를 가지고 간 사실을 잊어버리고 그들과 함께 걸어서 돌아 온 것이었다. 이런 증상을 아마 건망증 (健忘症, absent mindedness)이라고 부를 터인데 건망증은 치매 (dimentia 또는 Alzheimer’s disease)와는 다르다고 하지만 그래도 최근 이런 일이 자주 반복되다 보니 내 자신의 기억력 (memory)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나는 특히 예전에 만난 사람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가끔 어떤 사람이 반갑게 인사를 하는데 그 사람이 누군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아 어정쩡하게 인사를 받고 마는 경우가 있다. 나중에 ‘아! 그 사람이었구나, 그럼 그렇게 인사를 받아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하고 후회 (?)를 했던 경험도 많다. 물론 누구인지 끝내 생각이 안 나 기억하기를 포기한 경우고 있다. 얼굴은 생각나는데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경우는 부지기수 (不知其數)로 많다. 그래서 때로는 사람 만나기가 두렵다. 다행히 (?) 이런 일은 나에게만 일어나는 일은 아닌 모양이다. 가끔 남의 건망증 이야기를 듣고 위로를 받기도 한다. 최근 내가 위로 받은 사례 4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사례1: 얼마 전 아내와 함께 친구 아들 결혼식에 갔었는데 어떤 부인이 아내의 손을 붙잡고 매우 반갑게 아는 체를 하였다. 아내도 얼떨결에 반갑게 인사를 받긴 했지만 그 부인이 누구인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단다. 그런데 나중에 그 부인이 자기 테이블에 앉은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엿들어 보니, 그 부인이 아내를 다른 사람으로 착각을 하고 인사를 한 것이었다. 허허 웃을 수 밖에. 그 사람이나 아내나 기억력이 다 거기서 거기인 것 같았다.
사례2: 서울대 P교수는 대덕단지에서 열리는 회의에 자기 차를 운전하고 갔다가 돌아 올 때에는 고속 버스를 타고 왔다. 다음날 아침에 출근하려고 아파트 주차장에 가 보니 자기 차가 없었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자기가 대덕에 차를 두고 온 사실을 생각해 내었다. 학교 구내에 차를 두고 걸어 온 내 건망증은 쨉도 되지 않아 보였다.
사례3: 연세대 K교수는 구내 식당에서 점심을 들면서 하는 회의를 소집해 놓고는 자신은 깜빡 잊고 연구실에 앉아 있었다. 모임 시간이 지나자 식당에 모인 한 참석자가 전화를 걸어 왜 안 내려 오시느냐 물었다. K교수는 ‘아! 깜빡 했네요. 곧 내려갑니다’라고 대답을 하고 식당으로 가기 위해 연구실을 나섰다. 그런데 식당으로 가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절친했던 옛 친구를 만났다. 반갑게 대화를 나누는데 그 친구가 점심 때이니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했다. K교수는 ‘그렇지, 밥은 먹어야지’ 하면서 무심히 그 친구를 따라 외부에 있는 식당에 갔다. 얼마 후 아까 전화했던 사람이 다시 전화를 해왔다. ‘어디 계시는데 이렇게 못 오세요?’. K교수는 앗! 소리 외에는 아무런 대답이나 변명을 할 수 없었다. 그 일로 K교수는 매우 큰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사례4: 우스개 책에서 본 건망증 이야기 하나를 마지막으로 소개한다. 씩씩하게 아내의 이름을 부르곤 반말로 이것 저것 시키던 경상도 싸나이가 있었다. 친구들은 그의 싸나이다움을 늘 부러워했다. 그런데 환갑이 지난 어느 날 친구들이 그 집에 놀러 가 보니, 그가 자기 아내를 이렇게 부르는 것이었다. ‘자기야, 자기야’ 라고. 그 것도 한껏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이를 본 친구들이 이구동성 (異口同聲)으로 놀려댔다. “야, 너 옛날의 그 기세는 다 어디로 가고 남사스럽게 ‘자기야’ 가 다 뭐냐?”고. 사나이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야, 너무 놀리지 마, 얼마 전부터 마누라 이름이 생각이 잘 안 나서 그래, 이해해 줘’ 했다나?
독자 여러분, 위로 받으셨나요? 어쩌겠습니까? 나이 먹으면 다 그러려니 하며 서로 이해하며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