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 6월 21일 개교한 2년제 조선약학교는 1925년 3년제가 되었고 1930년에 “경성약학전문학교(京城藥學專門學校; 3년제, 이하 경성약전)”로 승격되었다. 승격된 연도는 자료에 따라 1930년 (“약사산고
1~3) )과 1928년
4)으로 다르지만 내 생각에는 아무래도 1930년이 맞는 것 같다.5) 최근에 입수한 일본 문헌6)에는 1929년 (교장, 동경대학 약과 출신 玉蟲雄蔵)이라고 써 있지만 이에 대한 1차 사료는 확인할 수 없었다고 하였다.
경성약전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입학 할 수 있었다. 1932년에는 일본 문부성의 인가를 받은 전문학교가 되었다. 조선약학교와 경성약전의 건물은 현재 서울시 중구 구민회관과 구의회의 부지에 있었는데, 서울대 약대 동창회는 이 사실을 기념하고자 1991년 이 자리에 기념비를 세웠다. 비석에는 1918년부터 1959년까지 이 자리에 학교 건물이 있었다고 써 있지만 1918년은 조선약학교가 설치된 해이고 실제로 학교가 이 자리로 이전한 것은 다음해인 1919년이었다.
조선약학교와 경성약전을 통틀어 교장은 초대 조중응 (사진 1)을 제외하고는 5명 모두 일본인 (児島高里, 吉木弥三, 國峰專吉, 安本義久, 玉蟲雄蔵)이었는데 이들은 모두 동경제대 의과대학 약학과를 졸업하였으며, 대한의원, 총독부의원, 경성제대 부속의원의 약국장을 겸하고 있었다.
경성약전에는 교수, 강사, 비상근 강사를 합쳐 약 34명이 근무하였는데 이중에 한국인으로는 도봉섭 (都逢涉) 교수 1명 밖에 없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거의 다 일본에서 제국대학이나 약전을 졸업한 사람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