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부부는 1988년에 미국 인디아나 주에 있는 퍼듀 대학에 방문 교수로 약 10개월간 체류하면서 본격적으로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였다. ‘퍼듀 한인 교회’ 이었다. 그 때 그 교회는 한국에서 신학대학 학장을 역임하시고 정년 퇴직하신 박창환 목사님이란 분이 새로 부임하셔서 처음으로 목회 (牧會)를 시작하실 때이었다. 박목사님은 교수 출신이라 그런지 설교도 차분하게 대학 강의처럼 하셨다. 또 성품이 인자하셔서 외로운 유학생들이 아버지처럼 따르곤 하였다. 그 분은 아무 것도 모르는 우리 부부를 격려하시며 세례를 주셨는데, 그 세례가 계기가 되어 우리 부부는 부족하나마 지금까지 교인의 길을 걷게 되었다.
박목사님은 교회에 부임하자마자 토요일 오후에 성경 공부반을 개설하셨다. 나를 비롯한 10명 정도가 수강하게 되었는데 나는 그 중 나이가 많은 학생이었다. 그런데 공부를 시작해 보니 성경이 너무 재미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매주 토요일 맨 앞자리에 앉아 고개를 바짝 들고 필기를 해 가며 목사님 강의를 경청하였다. 몇 달 후 귀국하게 되었을 때에는 그 강의를 더 이상 못 듣게 되는 것이 가장 아쉬웠던 기억이 새롭다. 목사님은 그 때 요한복음을 강의하셨는데, 강의를 듣고 내가 제일 놀란 것은 단지 몇 줄의 글에 엄청날 정도로 많은 내용이 함축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성경의 의미도 내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예컨대 ‘복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설명하시는데, 복음이란 예수님인가,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식인가, 아니면 그런 내용이 써 있는 성경책을 말하는가 등 생각할 점이 간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깨달은 것은 성경은 내 멋대로 해석해서는 안 되는 책이구나 하는 것이었다. 이 깨달음은 훗날 내가 성경책을 잘 읽지 않는 훌륭한 핑계가 되었다.
아무튼 성경에는 혼자서 해석하기 쉽지 않은 대목이 적지 않아 보인다. 오래 전 주일에 목사님이 설교하신 마태복음 10장 34-39절도 그러하다. 거기에 써 있는 예수님의 표면적인 말씀은, 예수님께서 아들과 아버지, 딸과 어머니, 며느리와 시어머니 간에 불화 (不和)를 만들러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이다. 그럴 리가 있나?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이었다. 목사님은 믿음의 길에 그만한 어려움이 있다는 취지의 설교를 하셨지만, 나는 내 멋대로 다른 생각을 해 보았다.
나는 어떤 두 사람이 갑자기 떨어져서는 못 살 것 같이 친밀하게 지내더니, 얼마 가지 않아 서로 얼굴도 보기 싫어하는 원수 사이로 변하는 걸 몇 번이나 본적이 있다. 그 때, ‘아하 친구를 너무 가깝게 생각하면, 금방 실망을 하게 되는구나’ 생각했었다. 그런데 앞의 성경구절에 대한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그 사이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그 관계가 오래 갈 수 없다는 말씀인가보다 생각하게 되었다.
인간 관계 중에서 부자 (夫子), 모녀 (母女), 고부 (姑婦) 간의 관계보다 더 가까운 관계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그런 관계도 너무 가깝고 직접적이면 오히려 서로 상처받아 깨지기 쉬운 것은 아닐까? 그 관계 사이에 하나님이 개입되어 계시면, 둘 사이는 다소 멀어지고 간접적이 되지만, 그래서 일견 예수님이 불화 (不和)를 일으키시는 것 같아 보이지만, 오히려 그래야만 그 관계가 오래 지속된다는 의미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간의 관계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돈을 벌 때도, 돈을 쓸 때도, 또 무릇 세상의 어떤 일을 보거나 행 (行)할 때도, 나와 그 행위 사이에 하나님이 계시도록 해야 하는 것은 아닐지? 예컨대 안경을 통해 사물을 볼 때에도 안경의 렌즈는 하나님의 시각이어야 하지 않을까? 또 어려운 이웃을 위하여 돈을 기부할 때에도, 내 의 (義)를 들어내지 않으려면 교회를 통하는 것이 하나님 뜻에 합당하지 않을까?
성경을 자의적 (恣意的)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깨달았던 내가 또다시 내 맘대로 성경을 해석하고 있다. 언젠가 목사님께 이렇게 해석해도 되는 것인지 여쭈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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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는 1988년에 미국 인디아나 주에 있는 퍼듀 대학에 방문 교수로 약 10개월간 체류하면서 본격적으로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였다. ‘퍼듀 한인 교회’ 이었다. 그 때 그 교회는 한국에서 신학대학 학장을 역임하시고 정년 퇴직하신 박창환 목사님이란 분이 새로 부임하셔서 처음으로 목회 (牧會)를 시작하실 때이었다. 박목사님은 교수 출신이라 그런지 설교도 차분하게 대학 강의처럼 하셨다. 또 성품이 인자하셔서 외로운 유학생들이 아버지처럼 따르곤 하였다. 그 분은 아무 것도 모르는 우리 부부를 격려하시며 세례를 주셨는데, 그 세례가 계기가 되어 우리 부부는 부족하나마 지금까지 교인의 길을 걷게 되었다.
박목사님은 교회에 부임하자마자 토요일 오후에 성경 공부반을 개설하셨다. 나를 비롯한 10명 정도가 수강하게 되었는데 나는 그 중 나이가 많은 학생이었다. 그런데 공부를 시작해 보니 성경이 너무 재미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매주 토요일 맨 앞자리에 앉아 고개를 바짝 들고 필기를 해 가며 목사님 강의를 경청하였다. 몇 달 후 귀국하게 되었을 때에는 그 강의를 더 이상 못 듣게 되는 것이 가장 아쉬웠던 기억이 새롭다. 목사님은 그 때 요한복음을 강의하셨는데, 강의를 듣고 내가 제일 놀란 것은 단지 몇 줄의 글에 엄청날 정도로 많은 내용이 함축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성경의 의미도 내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예컨대 ‘복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설명하시는데, 복음이란 예수님인가,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식인가, 아니면 그런 내용이 써 있는 성경책을 말하는가 등 생각할 점이 간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깨달은 것은 성경은 내 멋대로 해석해서는 안 되는 책이구나 하는 것이었다. 이 깨달음은 훗날 내가 성경책을 잘 읽지 않는 훌륭한 핑계가 되었다.
아무튼 성경에는 혼자서 해석하기 쉽지 않은 대목이 적지 않아 보인다. 오래 전 주일에 목사님이 설교하신 마태복음 10장 34-39절도 그러하다. 거기에 써 있는 예수님의 표면적인 말씀은, 예수님께서 아들과 아버지, 딸과 어머니, 며느리와 시어머니 간에 불화 (不和)를 만들러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이다. 그럴 리가 있나?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이었다. 목사님은 믿음의 길에 그만한 어려움이 있다는 취지의 설교를 하셨지만, 나는 내 멋대로 다른 생각을 해 보았다.
나는 어떤 두 사람이 갑자기 떨어져서는 못 살 것 같이 친밀하게 지내더니, 얼마 가지 않아 서로 얼굴도 보기 싫어하는 원수 사이로 변하는 걸 몇 번이나 본적이 있다. 그 때, ‘아하 친구를 너무 가깝게 생각하면, 금방 실망을 하게 되는구나’ 생각했었다. 그런데 앞의 성경구절에 대한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그 사이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그 관계가 오래 갈 수 없다는 말씀인가보다 생각하게 되었다.
인간 관계 중에서 부자 (夫子), 모녀 (母女), 고부 (姑婦) 간의 관계보다 더 가까운 관계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그런 관계도 너무 가깝고 직접적이면 오히려 서로 상처받아 깨지기 쉬운 것은 아닐까? 그 관계 사이에 하나님이 개입되어 계시면, 둘 사이는 다소 멀어지고 간접적이 되지만, 그래서 일견 예수님이 불화 (不和)를 일으키시는 것 같아 보이지만, 오히려 그래야만 그 관계가 오래 지속된다는 의미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간의 관계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돈을 벌 때도, 돈을 쓸 때도, 또 무릇 세상의 어떤 일을 보거나 행 (行)할 때도, 나와 그 행위 사이에 하나님이 계시도록 해야 하는 것은 아닐지? 예컨대 안경을 통해 사물을 볼 때에도 안경의 렌즈는 하나님의 시각이어야 하지 않을까? 또 어려운 이웃을 위하여 돈을 기부할 때에도, 내 의 (義)를 들어내지 않으려면 교회를 통하는 것이 하나님 뜻에 합당하지 않을까?
성경을 자의적 (恣意的)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깨달았던 내가 또다시 내 맘대로 성경을 해석하고 있다. 언젠가 목사님께 이렇게 해석해도 되는 것인지 여쭈어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