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동경대학 유학 시절, 가끔 학교 앞 불고기 집에 점심을 먹으러 다녔다. 하루는 일본인 학생과 함께 갔는데, 식당 주인이 내게 살며시 다가 와 묻는 것이었다. ‘혹시 저 일본인 학생과 친구 관계이냐?’고. 듣고 보니 글쎄 진정한 의미에서 친구라고 할 수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고 하였다. 그랬더니 그 주인의 얼굴이 밝아지면서, ‘역시 그렇지요?’ 하면서 자기는 일본에 살고 있는 우리 교포인데, 그렇게 오래 살아도 일본 사람과는 친구가 되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일본인은 오랫동안 사귀어도 속 마음을 주지 않기 때문에 참된 친구가 되기 어렵다는 말을 덧붙였다.
과연 일본 사람은 속마음을 잘 주지 않는가? 이 질문을 생각하다 보니, 문득 일본어에는 속마음 또는 본심을 뜻하는 혼네 (本音, ほん-ね)라는 말과 함께 겉으로 내세우는 말, 즉 겉마음을 뜻하는 다테마에 (建前, たてまえ) 란 말이 따로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되었다. 마음에 속마음과 겉마음이 따로 있을 수 있는가? 그렇다면 경우에 따라서는 속마음과 다른 겉마음으로 사람을 대할 경우도 있다는 말이 아닌가? 왜 특히 일본어에 겉마음이란 별도의 단어가 필요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본 사회는 특히 본심을 드러내고 살기에 두려운 사회였음을 뜻하는 것은 아닐까? 물론 사람이 사는 사회 중에 본심을 다 드러내고 살아도 아무 문제가 없는 사회는 없을 것이지만, 사무라이의 나라, 칼의 나라였던 일본은 그 중에서도 정도가 심했던 나라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일본 사람들이 속마음을 드러내기 어려워하는 현상은 정치를 보면 그대로 나타난다. 최근 일본의 간총리와 관방장관은 한반도 유사시 우리나라에 ‘자위대를 파견해야 한다, 아니다’를 가지고 엇갈린 의견을 표명하였다. 수상과 장관이 서로 다른 소리를 하는 것이다. 우리로서는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지만, 일본에서는 보통으로 있는 일이다.
내가 일본에 있던 1980년대 초 당시 새로 선출된 스즈끼 수상은 ‘수상으로 선출되면 우선 미국에 인사부터 가는’ 관례대로 미국을 방문하였다. 미국 대통령을 만난 그는 미국과 일본은 동맹 관계에 있다라는 말을 한 모양이다. 그런데 회담을 끝내고 나서 가진 기자 회견에서는 자기가 말한 동맹이란 말에는 군사적인 의미가 들어 있지 않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였다. 미국측은 당연히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고 반발을 하였다. 그러자 일본에 있던 외무상이 한 말씀 하였다. 내용인즉 ‘수상의 외교적 무지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군사적 의미를 배제한 동맹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수상의 말에 감히 장관이 엿을 먹여?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해프닝이었다. 외무상의 발언을 듣고 난 미국 대통령 등은 도대체 누구의 말이 본심인지 헷갈리게 되었다.
그럼 이 경우 일본의 본심은 무엇이었을까? 내 판단으로는 이처럼 서로 다른 두 가지 말을 하는 것이 다 본심이다. 즉 두 가지 상반된 말을 해 놓고 여론 또는 판세 (判勢)가 어떻게 흘러 가는가를 두고 보다가, 나중에 어느 한 쪽으로 대세가 결정되면, 그 때 가서 ‘그거 봐라, 그래서 전에 아무개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느냐?’며 대세를 쫓는 명문으로 삼으려는 생각이 진짜 본심이라는 것이다.
1979년 일본 유학 시절, 지도교수인 하나노 교수님은, 일본 수상이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요건은, 미국과 소련 (당시)이 전쟁을 하게 되면 일본이 언제 어느 편으로 어느 정도 가담하는 것이 가장 일본 국익에 도움이 되는가를 판단할 능력이라고 하였다. 미국과 혈맹이라면서 무조건 미국 편만을 드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습관을 가졌던 나에게는 일본의 본심에 대한 놀라운 발견이었다.
한민족, 즉 ‘의리의 사나이 돌쇠’의 후예인 그 식당 주인은 2가지 애드벌룬을 띄워놓고 판세가 흘러 가는 것을 지켜 보는 일본 사람을 친구로 삼기가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30년 전 동경대학 유학 시절, 가끔 학교 앞 불고기 집에 점심을 먹으러 다녔다. 하루는 일본인 학생과 함께 갔는데, 식당 주인이 내게 살며시 다가 와 묻는 것이었다. ‘혹시 저 일본인 학생과 친구 관계이냐?’고. 듣고 보니 글쎄 진정한 의미에서 친구라고 할 수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고 하였다. 그랬더니 그 주인의 얼굴이 밝아지면서, ‘역시 그렇지요?’ 하면서 자기는 일본에 살고 있는 우리 교포인데, 그렇게 오래 살아도 일본 사람과는 친구가 되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일본인은 오랫동안 사귀어도 속 마음을 주지 않기 때문에 참된 친구가 되기 어렵다는 말을 덧붙였다.
과연 일본 사람은 속마음을 잘 주지 않는가? 이 질문을 생각하다 보니, 문득 일본어에는 속마음 또는 본심을 뜻하는 혼네 (本音, ほん-ね)라는 말과 함께 겉으로 내세우는 말, 즉 겉마음을 뜻하는 다테마에 (建前, たてまえ) 란 말이 따로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되었다. 마음에 속마음과 겉마음이 따로 있을 수 있는가? 그렇다면 경우에 따라서는 속마음과 다른 겉마음으로 사람을 대할 경우도 있다는 말이 아닌가? 왜 특히 일본어에 겉마음이란 별도의 단어가 필요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본 사회는 특히 본심을 드러내고 살기에 두려운 사회였음을 뜻하는 것은 아닐까? 물론 사람이 사는 사회 중에 본심을 다 드러내고 살아도 아무 문제가 없는 사회는 없을 것이지만, 사무라이의 나라, 칼의 나라였던 일본은 그 중에서도 정도가 심했던 나라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일본 사람들이 속마음을 드러내기 어려워하는 현상은 정치를 보면 그대로 나타난다. 최근 일본의 간총리와 관방장관은 한반도 유사시 우리나라에 ‘자위대를 파견해야 한다, 아니다’를 가지고 엇갈린 의견을 표명하였다. 수상과 장관이 서로 다른 소리를 하는 것이다. 우리로서는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지만, 일본에서는 보통으로 있는 일이다.
내가 일본에 있던 1980년대 초 당시 새로 선출된 스즈끼 수상은 ‘수상으로 선출되면 우선 미국에 인사부터 가는’ 관례대로 미국을 방문하였다. 미국 대통령을 만난 그는 미국과 일본은 동맹 관계에 있다라는 말을 한 모양이다. 그런데 회담을 끝내고 나서 가진 기자 회견에서는 자기가 말한 동맹이란 말에는 군사적인 의미가 들어 있지 않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였다. 미국측은 당연히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고 반발을 하였다. 그러자 일본에 있던 외무상이 한 말씀 하였다. 내용인즉 ‘수상의 외교적 무지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군사적 의미를 배제한 동맹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수상의 말에 감히 장관이 엿을 먹여?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해프닝이었다. 외무상의 발언을 듣고 난 미국 대통령 등은 도대체 누구의 말이 본심인지 헷갈리게 되었다.
그럼 이 경우 일본의 본심은 무엇이었을까? 내 판단으로는 이처럼 서로 다른 두 가지 말을 하는 것이 다 본심이다. 즉 두 가지 상반된 말을 해 놓고 여론 또는 판세 (判勢)가 어떻게 흘러 가는가를 두고 보다가, 나중에 어느 한 쪽으로 대세가 결정되면, 그 때 가서 ‘그거 봐라, 그래서 전에 아무개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느냐?’며 대세를 쫓는 명문으로 삼으려는 생각이 진짜 본심이라는 것이다.
1979년 일본 유학 시절, 지도교수인 하나노 교수님은, 일본 수상이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요건은, 미국과 소련 (당시)이 전쟁을 하게 되면 일본이 언제 어느 편으로 어느 정도 가담하는 것이 가장 일본 국익에 도움이 되는가를 판단할 능력이라고 하였다. 미국과 혈맹이라면서 무조건 미국 편만을 드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습관을 가졌던 나에게는 일본의 본심에 대한 놀라운 발견이었다.
한민족, 즉 ‘의리의 사나이 돌쇠’의 후예인 그 식당 주인은 2가지 애드벌룬을 띄워놓고 판세가 흘러 가는 것을 지켜 보는 일본 사람을 친구로 삼기가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