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지런함과 함께 일본인의 특성 중 또 하나 놀라운 것은 꼼꼼함이다. 유학 시절, 내가 다니는 동경대학과 치바대학의 약대생 간에 야구 시합이 있었다. 그런데 그 시합을 알리는 팜플렛을 보니 야구부 선수들에게 숙소인 여관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글이 실려 있었다. 각종 주의 사항, 예컨대 베개의 사용 방법이라든지, ‘10시 넘어 자지 않을 경우에는 전등 덮개를 이렇게 내려서 이웃의 취침을 방해하지 말아라’에 이르기까지 시시콜콜한 주의사항들이 만화와 함께 상세히 설명되어 있었다.
1981년엔가 테라사끼 (현 東北대학 교수)라는 대학원 후배와 단 둘이 구마모또 (熊本)에서 열리는 일본약학회에 참석하러 간 적이 있었다. 나와 단둘이 가는 여행인데도 그는 동경에서부터 구마모또에 이르기까지의 전 여정에 대한 완벽한 정보를 타이핑 한 다음 복사본 한 부를 내게 전해 주었다. 거기에는 예컨대 기차, 버스, 배 등 모든 교통수단의 시간표, 요금 및 탑승 소요시간, 그리고 어느 고장에 가면 어느 찻집이 유명하니 그 집에서 얼마를 내고 몇 분간 차를 즐기자는 등에 이르기까지, 여행 전반에 관한 시시콜콜한 정보와 계획이 깨알같이 적혀 있었다. 여행 도중 히로시마 어딘가를 지날 때 경치가 하도 좋길래 ‘여기에서 좀 더 쉬었다 가자’고 했더니, 그는 일정표를 꺼내 보면서 ‘여기서는 10분간 쉬게 계획되어 있으니 그냥 가자”는 것이었다. 그 융통머리 없음에 나는 그만 반항할 기력을 완전히 잃었다. 일본인의 꼼꼼함을 소름끼치도록 느끼면서.
그 다음해에는 오오사까 (大阪)에서 열리는 약학회에 논문을 발표하러 갈 일이 생겼다. 나는 내가 발표할 논문에 대한 슬라이드를 한 부 만들었다. 그런데 우리 방 조수 (우리의 조교수에 해당)가 나더러 한 부를 더 만들라는 것이었다. 왜냐고 물었더니 내가 슬라이드를 분실할 경우를 대비해서 한 부는 자기가 가지고 가겠다는 것이었다. 더 놀란 것은 각자 다른 차를 타고 가자는 것이었다. 이유인즉 만약에 우리 둘 중 누군가에게 교통 사고가 생기면 나머지 한 사람이라도 가서 발표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아! 결국 우리는 각자 슬라이드 한 부씩을 갖고 서로 다른 차를 타고 오오사카에 갈 수 밖에 없었다.
2004년 겨울의 어느 날 앞서 말한 테라사끼 교수가 내게 2005년도 11월에 선정하는 미국약학회 (AAPS)의 펠로우에 신청해 보라고 권하였다. 그리고는 자신이 전에 제출해서 성공했던 서류 파일을 이메일로 보내 주었다. 나는 그 파일을 열어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로 성실하게, 아니 꼼꼼하게 정리된 신청서였다. 연구 논문을 비롯한 연구 관련 각종 이력은 말할 것도 없고, 예컨대 ‘언제 어디에서 어떤 제목으로 강연하였는데, 그 때 약 몇 명의 청중이 참석했으며, 그들의 신분은 주로 교수 및 대학원생이었다’는 식으로 그의 연구 관련 활동에 관한 모든 사항이 더 이상은 불가능할 정도로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그는 내게 당부하기를, 좋은 논문 2-3편 쓰는 것 이상의 정성으로 신청서를 작성하라고 하였다. 나는 최선을 다해 그 신청서를 모방하였다. 내가 2005년도에 AAPS의 펠로우로 선정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그 교수의 덕택이었다.
예전에 ‘맞아 죽을 각오로 쓴 한국인’이라는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일본 기술자가 한국인 기술자에게 어떤 기술을 전수하려고 할 때, 10가지 사항을 가르쳐 주어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일본 사람이 7~8가지를 설명한 시점에서 한국 사람들은, ‘대충 감 잡았다’느니, 또는 ‘원칙만 알면 되었지 꼭 10가지를 고대로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등 궁시렁거리면서 엉덩이를 들썩거린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일본인은 융통성이 없고 너무 고지식하다’고 한단다. ‘쪼잔하다’고 비웃는 사람도 있단다. 과연 그럴까? KTX사고가 빈발하고 있다는 뉴스를 들으며, 일본 사람의 꼼꼼함을 다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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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함과 함께 일본인의 특성 중 또 하나 놀라운 것은 꼼꼼함이다. 유학 시절, 내가 다니는 동경대학과 치바대학의 약대생 간에 야구 시합이 있었다. 그런데 그 시합을 알리는 팜플렛을 보니 야구부 선수들에게 숙소인 여관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글이 실려 있었다. 각종 주의 사항, 예컨대 베개의 사용 방법이라든지, ‘10시 넘어 자지 않을 경우에는 전등 덮개를 이렇게 내려서 이웃의 취침을 방해하지 말아라’에 이르기까지 시시콜콜한 주의사항들이 만화와 함께 상세히 설명되어 있었다.
1981년엔가 테라사끼 (현 東北대학 교수)라는 대학원 후배와 단 둘이 구마모또 (熊本)에서 열리는 일본약학회에 참석하러 간 적이 있었다. 나와 단둘이 가는 여행인데도 그는 동경에서부터 구마모또에 이르기까지의 전 여정에 대한 완벽한 정보를 타이핑 한 다음 복사본 한 부를 내게 전해 주었다. 거기에는 예컨대 기차, 버스, 배 등 모든 교통수단의 시간표, 요금 및 탑승 소요시간, 그리고 어느 고장에 가면 어느 찻집이 유명하니 그 집에서 얼마를 내고 몇 분간 차를 즐기자는 등에 이르기까지, 여행 전반에 관한 시시콜콜한 정보와 계획이 깨알같이 적혀 있었다. 여행 도중 히로시마 어딘가를 지날 때 경치가 하도 좋길래 ‘여기에서 좀 더 쉬었다 가자’고 했더니, 그는 일정표를 꺼내 보면서 ‘여기서는 10분간 쉬게 계획되어 있으니 그냥 가자”는 것이었다. 그 융통머리 없음에 나는 그만 반항할 기력을 완전히 잃었다. 일본인의 꼼꼼함을 소름끼치도록 느끼면서.
그 다음해에는 오오사까 (大阪)에서 열리는 약학회에 논문을 발표하러 갈 일이 생겼다. 나는 내가 발표할 논문에 대한 슬라이드를 한 부 만들었다. 그런데 우리 방 조수 (우리의 조교수에 해당)가 나더러 한 부를 더 만들라는 것이었다. 왜냐고 물었더니 내가 슬라이드를 분실할 경우를 대비해서 한 부는 자기가 가지고 가겠다는 것이었다. 더 놀란 것은 각자 다른 차를 타고 가자는 것이었다. 이유인즉 만약에 우리 둘 중 누군가에게 교통 사고가 생기면 나머지 한 사람이라도 가서 발표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아! 결국 우리는 각자 슬라이드 한 부씩을 갖고 서로 다른 차를 타고 오오사카에 갈 수 밖에 없었다.
2004년 겨울의 어느 날 앞서 말한 테라사끼 교수가 내게 2005년도 11월에 선정하는 미국약학회 (AAPS)의 펠로우에 신청해 보라고 권하였다. 그리고는 자신이 전에 제출해서 성공했던 서류 파일을 이메일로 보내 주었다. 나는 그 파일을 열어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로 성실하게, 아니 꼼꼼하게 정리된 신청서였다. 연구 논문을 비롯한 연구 관련 각종 이력은 말할 것도 없고, 예컨대 ‘언제 어디에서 어떤 제목으로 강연하였는데, 그 때 약 몇 명의 청중이 참석했으며, 그들의 신분은 주로 교수 및 대학원생이었다’는 식으로 그의 연구 관련 활동에 관한 모든 사항이 더 이상은 불가능할 정도로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그는 내게 당부하기를, 좋은 논문 2-3편 쓰는 것 이상의 정성으로 신청서를 작성하라고 하였다. 나는 최선을 다해 그 신청서를 모방하였다. 내가 2005년도에 AAPS의 펠로우로 선정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그 교수의 덕택이었다.
예전에 ‘맞아 죽을 각오로 쓴 한국인’이라는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일본 기술자가 한국인 기술자에게 어떤 기술을 전수하려고 할 때, 10가지 사항을 가르쳐 주어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일본 사람이 7~8가지를 설명한 시점에서 한국 사람들은, ‘대충 감 잡았다’느니, 또는 ‘원칙만 알면 되었지 꼭 10가지를 고대로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등 궁시렁거리면서 엉덩이를 들썩거린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일본인은 융통성이 없고 너무 고지식하다’고 한단다. ‘쪼잔하다’고 비웃는 사람도 있단다. 과연 그럴까? KTX사고가 빈발하고 있다는 뉴스를 들으며, 일본 사람의 꼼꼼함을 다시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