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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미리미리 정신
사람을 두려워하는 나라, 일본 (7)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입력 2011-03-02 09:58 수정 최종수정 2011-03-0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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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4월 일본 유학을 가 보니 다음해 4월에 열릴 일본약학회 학술대회에 제출할 논문 초록을 그 해 11월말까지 마감하고 있었다. 그 초록집은 80년 1월에 내 책상에까지 배달되었다. 학회가 열리기 며칠 전에야 겨우 초록 마감을 한 후, 온갖 난리를 쳐서 학회 당일 날 아침에야 잉크 냄새도 가시지 않은 초록집을 현장에서 받아 볼 수 있던 우리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작년 가을 외국에서 스기야마라는 동경대학 교수를 만났더니, 조만간 열릴 자기의 정년 퇴임 기념 국제 심포지엄에 나보고 연자 (演者)로 와달란다. “영광입니다” 라고 승락을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심포지엄은 올해가 아닌 내년 즉 2012년 1월에 열리는 것이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개최를 앞두고 일본 신문기자가 걱정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당시 일본은 이미 축구장 건설을 완료하고 모의시합까지 해 본 상태이었다. 그는 뒤늦게 시작한 공사 탓에 언제 공사가 끝날지 모르는 우리나라가 과연 기한 내에 공사를 마치고 월드컵을 제대로 개최할 수 있을 것인가 걱정하고 있었다. 결과는 어떠했는가? 비록 난리법석을 피우긴 했지만, 우리는 개최일 직전에 모든 공사를 끝내고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개최하지 않았는가?    

1980년대 여름에 설악산에 ‘대명 콘도’라는 데가 문을 열었다고 해서 대학원생들과 교실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가보니 정식 오프닝 날은 다음날 아침 10시이었다. 저녁이 되어 우리가 방에서 자려고 하는데 ‘실례합니다’ 소리가 들리더니, 승낙할 사이도 없이 인부들이 들이 닥쳤다. 문틀에 니스 칠을 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어이가 없어하는 우리를 보고 한 수를 더 뜨는 것이었다. 일당을 줄 테니 실외 수영장 바닥에 깔 타일을 좀 날라 달란다. 세상에! 아무리 상황이 다급해도 그렇지, 어떻게 투숙객에게까지 이런 부탁을 할 수 있을까? 다음날 아침에 오프닝 행사를 하기는 다 틀려 보였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9시 30분, 공사는 기적같이 완료되었고, 속초 시장님 등 귀빈을 모신 10시의 오프닝은 무사히 개최될 수 있었다.

내가 섬기는 ‘온누리 교회’는 몇 년 전부터 ‘러브소나타’라는 전도 행사를 일본 각지에서 개최하고 있다. 이 행사는 한국과 일본에서 수천~수만명이 참석하는, 일본의 기독교 사상 유례가 없는 큰 행사로 기획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와 함께 이 행사를 준비하는 일본측 관련 당사자들이 내내 난감해 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행사가 내일 모레로 코 앞까지 닥쳤는데도 행사장 예약이나 호텔방 배정, 그리고 식사 예약 등이 제대로 완결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모든 준비가 적어도 몇 달 전에 끝나 있어야 안심이 되는 일본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행사 당일까지도 난리 법석을 떠는 우리의 행사 준비 태도는 공포 그 자체이었을 것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우리 교회의 젊은이들은 밤을 새워 행사를 준비한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도저히 가능해 보이지 것 않던 모든 준비가 기적처럼 완료된다. 그러면 우리는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였다’라고 고백한다. 그러나 일본 사람들은 모든 행사를 미리미리 준비한다. 그리고 그 준비에 의해 행사가 성공했다고 믿는다.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라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는 것이다. 그만큼 하나님의 은혜가 개입하기 어려워진다. 그래서일까? 일본 사람들은 하나님을 잘 믿지 않는다. 

일본인의 ‘미리미리’ 정신은 역시 사람을 두려워하는 그들의 문화와 관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일본에서는 부실한 준비로 사람을 맞는 것이 두려운 일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도 닥쳐서 난리치는 버릇은 고쳐야겠다. 혹자는 우긴다. 그래도 우리는 공사 부진으로 실내 수영장 지붕을 미쳐 다 덮지 못한 상태에서 2004년 올림픽 대회를 개최하여 망신을 산 그리스보단 낫다고. 제발 그러지 말자. 사람이 두려워서이건 어쨌던 일본의 ‘미리미리’ 정신은 배울 가치가 충분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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