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말에는 욕이 없다. 기껏해야 ‘바카야로 (ばかやろ, 바보자식)’ 정도가 있는데, 이 정도는 우리나라에서는 욕 축에 끼지도 못한다. 우리나라 욕들은 얼마나 얼큰하고 걸쭉한가? 내가 꿈에도 그리던 제물포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제일 실망했던 것은 그 선망의 대상이던 동료들이 일상의 대화 중에 욕을 섞어 쓰는 것이었다. 나중에 보니 서울대 학생들도 마찬가지이었다. 군대 시절은 말해 무엇 하리오. 고참의 말은 욕이 절반은 넘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친한 친구 사이일수록 욕을 많이 주고 받는다. 욕을 안 하면 별로 친한 사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찌 욕뿐인가? ‘쪼끄만 놈, 쪼다, 바보, 돌대가리, 병신’ 같은, 상대방에게 인격적인 상처를 주는 험악한 말들이 태평스레 사용된다.
일본 사람은 어떠한가? 우리와 정반대이다. 욕은 커녕 행여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줄까 봐 정말로 곱고 예의 바른 말만을 사용한다. 친구 간에도 그렇다. 모르긴 해도 아마 일본말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울 것이다. 왜 우리말에는 욕이 많고, 우리말과 문법이 매우 비슷한 일본어에는 왜 욕이 없을까?
내 생각에는 일본엔 우리와 달리 사무라이의 칼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칼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상대방의 반격에 대한 걱정 없이 마음 놓고 험한 말을 내 뱉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일본 사람들은 칼을 차고 다녔기 때문에 사람 (남)이 무서웠다. 상대방이 좋아할만한 말만 골라 해도 돌아설 때 등골이 서늘해질 판이었다. 그래서 일본말은 예의 바르고 고와질 수 밖에 없었다. 사실 과거 일본에서는 욕을 할 필요 자체가 없었다. 진짜 죽이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조용히 다가가 찔러 죽이면 그만이다. 괜히 욕으로 상대방의 성질을 돋구어 선제 공격을 당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일본에서 말이란, 최대한 예의 바르고 부드럽게, 그것도 되도록 낮은 목소리로 해야 하는 도구인 것이다.
일본에선 길거리 싸움도 드물다. 왜 그럴까? 칼의 나라 일본에서의 싸움이란 ‘죽고 살기’로 이어지기 십상이었다. 우리처럼 말싸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일본인은 웬만해서는 남과 싸우지 않는다. 하긴 욕이 없으니 말싸움을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만약 우리보고 남과 싸우되 절대로 욕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면, 우리는 답답해서 차라리 싸움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에게는 욕과 싸움은 불가분 (不可分)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어엔 욕이 없다. 그러니 싸울 수가 없다. 안 싸우는 것이 아니라 못 싸우는 것이다.
우리는 싸움을 해도 상대방을 죽이기 까지는 않는다. 요즘엔 세상이 험해져서 상황이 많이 달라졌지만, 주로 말로 싸우고 기껏해야 주먹을 쓴다. 재미있는 것은 누구든 먼저 코피를 흘린 사람이 진 것이라는 불문률도 있다. 물론 말로 싸운다고 해도 말의 상당 부분은 욕이다. 한번 우리나라 시장판에서의 싸움을 보라. 싸움의 실체는 서로 상대방이 얼마나 나쁜 사람인가를 핏대를 세워가며 구경꾼들에게 설명하는 여론전 (與論戰)이다. 이 때 걸쭉한 욕을 섞어 상대방의 나쁜 점을 강조해야 구경꾼의 여론을 내게 유리하게 돌릴 수 있다. 무엇보다 그래야 내 스트레스도 풀린다.
1987년에 미국 퍼듀 대학에 방문교수로 가 있을 때 어떤 미국 여학생이 내게 자기 남자 친구가 연구실 안에 있느냐고 물었다. “아까 나가더라”라고 했더니, 그녀 왈 “I will kill him”이란다. 이제 미국도 제법 안전한 나라가 되었나 보다. 누구나 총을 차고 다니는 서부영화 시대이었다면 ‘죽이겠다’는 말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총칼을 쓰던 나라의 말이 곱고, 안전했던 나라의 말이 거칠다는 이야기가 되는 셈인가?
말은 어쩌면 인격의 절반 이상이다. 그러니 고운 말을 배우자. 일본말에서 배우자.우리가 더 안전한 나라이었다는 어설픈 역사적 배경 따위는 다 잊어 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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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말에는 욕이 없다. 기껏해야 ‘바카야로 (ばかやろ, 바보자식)’ 정도가 있는데, 이 정도는 우리나라에서는 욕 축에 끼지도 못한다. 우리나라 욕들은 얼마나 얼큰하고 걸쭉한가? 내가 꿈에도 그리던 제물포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제일 실망했던 것은 그 선망의 대상이던 동료들이 일상의 대화 중에 욕을 섞어 쓰는 것이었다. 나중에 보니 서울대 학생들도 마찬가지이었다. 군대 시절은 말해 무엇 하리오. 고참의 말은 욕이 절반은 넘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친한 친구 사이일수록 욕을 많이 주고 받는다. 욕을 안 하면 별로 친한 사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찌 욕뿐인가? ‘쪼끄만 놈, 쪼다, 바보, 돌대가리, 병신’ 같은, 상대방에게 인격적인 상처를 주는 험악한 말들이 태평스레 사용된다.
일본 사람은 어떠한가? 우리와 정반대이다. 욕은 커녕 행여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줄까 봐 정말로 곱고 예의 바른 말만을 사용한다. 친구 간에도 그렇다. 모르긴 해도 아마 일본말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울 것이다. 왜 우리말에는 욕이 많고, 우리말과 문법이 매우 비슷한 일본어에는 왜 욕이 없을까?
내 생각에는 일본엔 우리와 달리 사무라이의 칼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칼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상대방의 반격에 대한 걱정 없이 마음 놓고 험한 말을 내 뱉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일본 사람들은 칼을 차고 다녔기 때문에 사람 (남)이 무서웠다. 상대방이 좋아할만한 말만 골라 해도 돌아설 때 등골이 서늘해질 판이었다. 그래서 일본말은 예의 바르고 고와질 수 밖에 없었다. 사실 과거 일본에서는 욕을 할 필요 자체가 없었다. 진짜 죽이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조용히 다가가 찔러 죽이면 그만이다. 괜히 욕으로 상대방의 성질을 돋구어 선제 공격을 당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일본에서 말이란, 최대한 예의 바르고 부드럽게, 그것도 되도록 낮은 목소리로 해야 하는 도구인 것이다.
일본에선 길거리 싸움도 드물다. 왜 그럴까? 칼의 나라 일본에서의 싸움이란 ‘죽고 살기’로 이어지기 십상이었다. 우리처럼 말싸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일본인은 웬만해서는 남과 싸우지 않는다. 하긴 욕이 없으니 말싸움을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만약 우리보고 남과 싸우되 절대로 욕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면, 우리는 답답해서 차라리 싸움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에게는 욕과 싸움은 불가분 (不可分)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어엔 욕이 없다. 그러니 싸울 수가 없다. 안 싸우는 것이 아니라 못 싸우는 것이다.
우리는 싸움을 해도 상대방을 죽이기 까지는 않는다. 요즘엔 세상이 험해져서 상황이 많이 달라졌지만, 주로 말로 싸우고 기껏해야 주먹을 쓴다. 재미있는 것은 누구든 먼저 코피를 흘린 사람이 진 것이라는 불문률도 있다. 물론 말로 싸운다고 해도 말의 상당 부분은 욕이다. 한번 우리나라 시장판에서의 싸움을 보라. 싸움의 실체는 서로 상대방이 얼마나 나쁜 사람인가를 핏대를 세워가며 구경꾼들에게 설명하는 여론전 (與論戰)이다. 이 때 걸쭉한 욕을 섞어 상대방의 나쁜 점을 강조해야 구경꾼의 여론을 내게 유리하게 돌릴 수 있다. 무엇보다 그래야 내 스트레스도 풀린다.
1987년에 미국 퍼듀 대학에 방문교수로 가 있을 때 어떤 미국 여학생이 내게 자기 남자 친구가 연구실 안에 있느냐고 물었다. “아까 나가더라”라고 했더니, 그녀 왈 “I will kill him”이란다. 이제 미국도 제법 안전한 나라가 되었나 보다. 누구나 총을 차고 다니는 서부영화 시대이었다면 ‘죽이겠다’는 말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총칼을 쓰던 나라의 말이 곱고, 안전했던 나라의 말이 거칠다는 이야기가 되는 셈인가?
말은 어쩌면 인격의 절반 이상이다. 그러니 고운 말을 배우자. 일본말에서 배우자.우리가 더 안전한 나라이었다는 어설픈 역사적 배경 따위는 다 잊어 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