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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연구와 논문
심창구 서울대 명예교수
입력 2008-09-24 07:05 수정 최종수정 2010-05-10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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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을 지나면서 가끔 나의 연구생활을 뒤돌아 보게 된다. 남은 연구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 부쩍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는 개수로는 제법 많은 논문을 썼다. 그러나 정말로 의미 있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논문은 거의 없어 보인다.

몇 년 전 박사과정 학생이 나에게 “많은 사람이 심각한 질병으로 죽어 가고 있는 오늘날, 우리가 하고 있는 연구가 무슨 큰 의미가 있겠습니까? 저는 공부를 그만둘까 합니다” 라고 말한 것이 기억난다.

일견 무례해 보이는 말이지만 실은 나도 똑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화도 내지 못하고 “맞는 말이다.

나도 그런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연구를 하고 싶다. 그러나 능력이 부쳐서 못하는 것  뿐이다. 다만 그런 연구를 하기 위해서도 지금 네가 하고 있는 일견 쓸 데 없어 보이는 연구도 필요한 법이다” 라고 겨우 달래서 학위를 마치게 한 일이 있었다.

본질적이고 큰 의미가 있는 연구를 하고 싶은 것은 모든 연구자 공통의 바람일 것이다. 다만 여러 가지 면에서 힘이 부쳐 그리 못할 뿐이다.

나는 정년까지 남은 5년 미만의 기간이나마 정말로 의미 있는 연구를 하고 싶은데 전망이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영어로는 연구를 research라고 하는데 가만히 글자를 들여다보면 re와 search를 합친 단어로 보인다. 그렇다면 연구란 search를 다시 하는 것, 말하자면 남이 한번 뒤진 주제를 가지고 다시 뒤적이는 것이란 의미가 아닌가?

교수는 연구논문을 써야 생존할 수 있다. 그래서 “publish or perish”, 즉 “연구논문을 발표하지 않으면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말이 있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연구의 결과물로 논문이 써지는 것이 아니라 연구논문을 쓰기 위해 연구를 설계하는 경향이 대세를 이루게 되었다.

논문 쓰기 쉬운 옛 주제를 다시 뒤적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제 논문은 교수를 비롯한 연구자를 평가하는 가장 강력한 잣대가 되었다.

한동안은 소위 SCI 급 학술잡지에 몇 편의 논문을 냈느냐로 연구자를 평가하더니 이제는 impact factor 가 얼마인 잡지에 냈느냐가 연구자의 우열을 판단하는 지표가 되었다. 이 impact factor는 학문분야별로 사정이 달라서 생물학 관련 학술잡지는 매우 높은데 반하여 화학이나 물리학, 그리고 내가 속해 있는 약제학 분야는 그 점수가 상대적으로 낮다.

따라서 생물관련 분야 연구자만 높은 평가를 받기 쉽다는 불만도 타 분야 연구자의 입으로부터 나오고 있다. Impact factor로만 연구자의 업적을 평가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지만, 이제껏 거의 아무런 잣대도 없어 왔던 연구자의 업적 평가가 나름대로 가능하게 된 것은 impact factor의 공이라 하겠다.

특히 연구 업적의 경쟁도 올림픽에서 메달 따기로 인식하는 우리나라 과학자들에게 있어서 impact factor 높은 논문 쓰기는 민족성(?)에 딱 맞는 종목이 되고 있다.
아무튼 크게 보아서는 이러한 점수 열풍이 우리나라 과학계의 발전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하였다고 생각된다. 우리나라 학자의 SCI 급 과학 논문수가 이제 세계 12 순위 (2007년 업적)를 달리게 된 것이다.

다만 이제는 논문을 쓰기 위한 연구에서 벗어나 인류를 위해서 의미 있는 연구를 한 결과가 높은 점수의 논문으로 나타나기를 기대해 본다. 나는 못하면서 남들에게 바라는 결례를 용서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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