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유통 - 의약품 도매유통 기술혁신방안
류충열 한국의약품도매협회 전무이사
금세기에 한국의약품산업이 선진화되기 위해서는 도매유통기능이 강화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도매유통기능이 강화되지 않으면 제약업계가 지금까지처럼 계속 직거래에 몰두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된다면 연구·개발에 전념할 수 없어 세계시장에 내놓을 신약을 개발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의약품산업 전체가 하루빨리 선진화되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의약품 도매유통의 기능 혁신과 발전을 위해 몇 가지 소견을 제언한다.
분업후 다품종 소량 다빈도 배송
도매유통 기능강화 시대적 요구
유통비용 증가, 재고반품 심각…일원화 촉진
개발·생산은 제약, 유통은 도매가 전담
약품 유통 책임지는 물류전문기업 거듭
과열경쟁 지양, 공동물류·M&A 활성화
개별 500평·공동 2,000평 이상 대형화
투명·신속성 제고…유통정보관리시스템
인사제도 개혁…MS의 질적수준 높여야
의약분업후 도매유통일원화 촉진
제약 환경변화 중 의약분업만큼 근본적으로 도매업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도매업계의 발전을 위해 아직 때 이른 감은 있지만 의약분업이 도매업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보는 것은 매우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의약분업은 도매유통업계에 긍정적·부정적인 영향을 모두 주고 있는 것 같다.
긍정적인 측면을 보면, 의약분업이 거시적 차원에서 도매업계의 위기를 벗어나게 하는 돌파구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의약분업이 도매업계의 오랜 숙원인 유통일원화를 촉진하고 있다는 증거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의약분업 이후 도매업소를 통한 의약품 유통비중이 분업 전보다 크게 증가됐다.
`성실신고조합'의 `2001년 상반기 제조·도매업 매출거래내역'을 분석해 보면 의약분업 전인 2000년 상반기에는 도매업계의 의약품 유통비중이 29.8%이었는데 의약분업이 시행된 2001년 상반기에는 38.4%로 크게 증가된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 제약회사의 약국 및 병·의원 직거래 비중은 분업 전 70.2%에서 분업 후 61.6%로 크게 축소된 것이다.
이처럼 의약분업이 도매거래 비중을 확대시키고 있는 데는 의약분업 후 의약품 소비의 중심 축이 의료기관에서 약국으로 이동됨으로써 처방의약품에 대해 `다품종 소량 다빈도 배송'을 원하고 있는 약국이 제약회사 의 직거래보다는 도매거래를 선호한 결과라고 판단되고, 이와 같은 도매업소를 통한 유통일원화 비중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
심지어 하루에도 2∼3번 이상 여러 제약사의 소량 처방의약품을 배송해 달라는 약국도 있다는데 이 경우 도매거래가 아닌 제약사 직거래 유통체계로 어떻게 이러한 약국의 주문 요구에 부응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의약분업으로 인한 도매업계의 부작용 또한 적지 않다. 도매업소간 부익부(富益富) 빈익빈(貧益貧) 현상이 심화되고, 예견된 일이었지만 에치칼 전문도매업소는 역시 매출이 격감하고 있으며, 약국유통 비중의 확대에 따라 유통비용이 급증하고 수금 회전기간이 장기화되고 있으며 처방약 재고반품 문제가 파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도매경영 악화 상태로 인해 도매마진 문제가 새롭게 도마 위에 떠오르고 있다.
이처럼 의약분업은 대국적(大局的)으로는 도매업계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겠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부정적 영향으로 인해 향후 도매업계는 `시장 경제적 차원의 자체적 구조조정'이라는 극심한 몸살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제약·도매 역할분담체제 구축해야
선진국의 의약품산업이 세계시장을 지배할 수 있었던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그중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제약업과 도매유통업간에 각자의 고유기능에 따라 역할을 분담하는 경제적·효율적인 의약품산업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제약업계는 신약개발을 위해 연구·개발·생산만 하고, 유통은 도매업계가 전담(도매유통 비중 90% 이상)하는 체제가 그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상당기간 약업 후진국으로 머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의약분업 후 국내 의약품 시장을 외국 제약회사들에게 송두리째 내주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사필귀정(事必歸正)인 것이다.
생계수단 아닌 물류 전문가로 거듭나야
지역별로 몇몇 중·대형 도매업소를 제외한 수많은 도매업소가 10명 미만의 임직원과 연간 매출 50억원 미만의 소형 도매업소에 속하고, 도매업 경영을 생계수단의 방편으로 인식하고 있는 경영자들이 상당수에 달하는 것 같다.
이러한 기업관을 가진 도매업 CEO(최고경영자)가 많을수록 의약품산업에서 유통 중추인 의약품도매업은 그 기능과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
도매업 CEO는 도매업을 생계수단 수준으로 생각하지 말고 의약품 유통을 책임지는 물류 전문기업으로 여기고 앞서가는 선진 기업을 경영하겠다는 프로페셔널(Professional) 의식과 사명감을 가진 경영자의 도전적 자세와 의식 개혁을 이루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 도매유통업계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본다.
위기 속에 기회가 찾아온다는 말처럼 도매업 CEO들는 어려운 여건에 속이 타겠지만 의약분업이 도매업계의 희망인 유통일원화를 촉진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기대를 버리지 말고 사명감을 가지고 도매업을 물류전문기관으로 승화·육성시키려는 의식전환이 절대 필요하다.
과열경쟁 지양, 공동물류·M&A만이 살길
현재 의약품도매업소(일반종합)는 전국적으로 700여개나 산재되어 있다. 2001년부터 도매업 시설면적기준이 폐지된 이후 1년도 채 안되어 200여개나 급증했고 이러한 사태는 계속 진행될 것으로 판단된다.
이 상태가 계속된다면 도매업소간 과열된 고객 쟁탈전으로 머지않아 도매업계가 공멸의 위기를 피할 길이 없고 제약업계는 물론 요양기관에까지 악영향을 끼쳐 결국 우리나라 의약품산업 전체의 선진화에 발목을 잡을 것이 분명하다.
정부 당국은 `진입규제 철폐에 따른 경쟁촉진으로 기업력을 키우는 것' 하나만 알았지, `기업간 과다경쟁에 따른 이전투구로 업계가 공멸할 수 있다는 것'은 모르는 모양이다.
과밀에 의한 경쟁과잉과 규모의 영세성을 치유하는 처방과 해법은 이미 나와 있다. M&A(merger and acquisition; 인수합병), 공동물류, 전략적 제휴, 코마케팅(Co-marketing) 및 차별화 등이 그것이다.
상황에 따라 적절한 방법을 선택하되 중요한 것은 도매업계가 M&A 등의 시행을 결단하는 일이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경영의 투명성과 동업 문화의 적응 노력이 전제돼야 한다.
국내실정에 맞는 물류시설 대형화
물류시설 면적이 대형화(1,000평 이상)된 도매업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 도매유통업계의 업소당 창고면적이 평균 약 50여평에 지나지 않고 물류시설도 수작업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도매업계가 현재 상태에서 세계 14∼15위권의 국내 의약품 물량을 원활히 유통시킨다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도매업계가 명실공히 의약품유통의 중추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다하려면 시설면적이 개별기업의 경우 500평 이상, 공동물류의 경우 2,000평 이상 대형화되고 물류 시설 및 설비도 낙후된 수작업 형태에서 물류 능률성과 경제성이 높은 자동화 시설로 교체해야 할 것이다. 다만, 물류시설의 대형화·현대화는 우리의 실정에 맞게 이루어져야 한다.
유통정보관리시스템의 조기 도입
대형화·현대화된 유통시설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의약품의 흐름에 대한 신속한 정보관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M&A의 촉진을 위한 경영 및 세무관리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더더욱 그러하다.
입고와 출고 및 재고 상태 등에 대한 신속한 정보관리 없이 물류시설만 현대화·대형화하는 것은 효율성 없는 투자 낭비만 초래할 우려가 있다. 신속한 정보관리를 위해서 POS(판매시점)시스템과 바코드제도 등의 적극적 시행을 앞당기는 등 도매유통업의 기능 강화를 위해 도매업계는 유통정보관리시스템의 조기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
영업사원 자질 향상으로 유통선진화
의약품의 유통구조가 선진화되려면 일선에서 도매유통을 책임지고 있는 영업사원의 자질이 아주 우수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처럼 앞으로도 계속 도매업계가 제약업계와 도매업계 영업사원과 현격한 질적 수준 차이를 극복하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제약업계는 신제품의 시장 침투와 매출액 유지·확대를 위해 결코 직거래 영업활동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도매유통업계도 제약업계 못지 않게 인사제도를 개혁하고 MS(Medical Marketing Specialist;도매영업전문가)의 질적 수준을 제약회사의 영업사원 이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교육훈련 투자'를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편집부
2002.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