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약사/약국] 약사위상의 변화
세월은 참 빠른가보다. 하루하루는 그리 느리게 가는데 1년, 2년, 5년은 금새 지나가 버렸다.
2000년 7월과 8월은 개국가에 있어서 큰 변혁의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제도의 변화는 많은 혼란을 가중시켰고, 준비 없는 제도의 시행이라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마치 금융실명제를 보는 느낌이라고 할 수 있겠다.
분업 전 약사가 자의로 판단, 조제하던 행태를 법이라는 것으로 하루아침에 뺏어버린-정확히 말하면 원래대로 돌아간 것이지만-엄청난 일이었다.
이런 제도가 아무런 준비 없는 시행이라는 것은 한달 유예 했던 것을 보면 확연하다. 의약품 공급에 관한 준비도 없었고, 국민들에 대한 홍보도 부족한 상태에서 의지만 앞서 제도를 시행하다보니, 약국이나 병의원에서는 법이 시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사실, 이 제도가 시행될지 의심하는 약사들도 꽤 많았으리라 생각된다.
한달 유예라는 것은 분업이라는 것이 분명 시행될 것이라는 표시였다. 개국가는 의약품 준비에 모든 역량을 쏟았으며, 기존의 의약품 구매관행은 사라지고, 현금으로 의약품을 구매하고 사재기하는 현상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분업으로 인해 제약사는 최대 수혜자였다. 가지고 있던 대부분의 의약품 재고를 소진했으며, 개국가의 길었던 회전 일도 3개월 수준으로 앞당기는 수혜를 입었기 때문이다.
제약사는 분업 이후 국내 노인 인구 증가와 맞물려 타 업종의 불황에도 불구하고 연 10% 이상의 성장을 지속해왔다.
분업초기 의약품 부족 등 혼란가중
분업은 개국가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그동안 취급했던 의약품보다 몇 배는 많은 종류의 의약품을 취급하게 되었고, 취급이 어려웠던 향정신성 의약품도 취급하게 되었다.
약사가 의약품을 취급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예전에 취급 못했던 의약품을 포함에 다양한 의약품을 취급하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다.
제도의 시행은 많은 불편을 초래했다. 제도는 시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제도를 모르는 국민과 알고도 불편함을 이유로 들어 국민들의 정부와 약국을 향한 불만은 치솟았다. 전적으로 이런 불만의 원인은 정부에 있다.
정부는 제도 시행에 앞서 제도의 의의를 국민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이에 따른 불편함도 잘 설명하고 설득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사전 준비작업 없이 무턱대고 실시한 덕이었다.
분업을 처음 실시하는 대한민국은 이 불편의 파장을 미처 예측하지 못했고, 이런 파장을 예측하지 못한 곳은 또 있었다. 제약사였다.
제약사는 분업 후 의약품의 수요예측을 하지 못했고, 결국 의약품 부족현상을 낳았다. 분업초기 제약사마다 몇 품목씩 품절 되는 현상은 다반사였다.
정부는 제도시행의 기본인 처방 발행을 의무화하고 서식을 공개하였으나 이를 제대로 지키는 병의원은 별로 없었다. 처방의 형태, 크기 등은 병의원마다 제각각이었고, 이용하는 프로그램이나 회사별로도 제각각이었다. 이런 현상은 지금도 계속 이어져오고 있고, 정부는 방치하는 상황이다.
처방 발행 방법도 의사마다 따로국밥이었다. 한 장에 300일 넘는 것도 있었고, 한 사람에게 처방이 여러 장인 경우도 있었으며, 급여인지 비급여인지 100/100인지 아닌지 구분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문전약국 전환 러시, 약국가 지각변동
위와 같은 혼란보다 더 큰 문제는 개국가의 재편이었다. 나라마다 그 상황이 다를 수는 있었으나 91년도에 필자가 본 미국의 의약분업 행태는 매우 부러움 그 자체였다.
환자가 병의원에 가서 처방을 받고 차를 타고 다니던 약국에 처방전을 맡긴 후 예약된 시간에 다시 약국에 와서 약사와 상담하고 복약지도를 자세히 들은 후 집으로 가는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의약분업은 필자의 예상과는 완전 어긋난 행태였다. 약삭빠르다고 해야 할까, 생존본능이라고 해야 할까, 똑똑하다고 해야 할까, 많은 약사들이 기존의 약국자리를 버리고 의원 옆으로 이동을 했다. 정부와 약사회가 예측하지 못한 최악의 상황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병의원 옆에 최대한 다닥다닥 붙은 약국들의 행태는 의약분업의 본질을 왜곡하였다. 환자 중심, 복약지도 중심, 질병예방과 관리 중심의 약국의 행태가 아닌 의약품을 조제해서 찍어내는 공장을 연상하기 충분한 약국의 모습이었다.
주사제 제외 등 예외조항 신설
분업은 의사는 진단과 처방을 약사는 조제와 복약지도를 한다는 의식을 국민에게 고착시키는 것에는 성공했다. 그럼에도 약국가에서 처방 없이 전문의약품 조제와 판매를 강요하는 국민이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분업은 불편에도 불구하고 진료와 조제의 분리였음에도 불편을 토로하는 국민과 그것을 등에 업은 의사들의 불합리한 요구에 주사제를 예외로 시켰으며, 그 외에도 응급, 신경정신과 등 몇 개의 예외조항을 신설하므로 분업의 의미를 퇴색시켰다. 신경정신과의 경우 대부분 원외처방보다는 원내 조제를 간호조무사에게 시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는 예외조항을 매우 악용한 행태이다.
원칙적으로 신경정신과도 의약분업에 속하므로 원외처방을 해야 하나, 환자의 요구가 있는 경우에 한해 원내 조제를 허락하고 있으나 이를 악용하여 환자의 요구 없이도 당연한 듯 간호조무사에게 조제, 투약하게 하고 있다.
주사제의 분업예외는 국민의 편의와 의사의 이익을 증진시켰을 지는 몰라도 국민의 건강과 선진화의 길에서는 멀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분업 자체가 불편함을 통해 의약품의 사용을 줄이는 것이 목적인데 불편함을 이유로 예외를 시킨다는 것은 주사제의 무분별한 남용을 부추기는 제도적 결과를 낳게 되었다.
상품명 처방 약사 직능 저해
더 큰 분업의 문제는 상품명 처방이다. 동일성분조제라는 사후대책이 있기는 하지만, 생동성 통과, 환자 동의, 3일내 사후통보 등 갖가지 제약을 만들어 놓으므로 실질적인 제도의 활용을 막고 있다.
상품명 처방은 의사의 리베이트 만행을 촉진시키고, 분업의 양대 산맥인 의사, 약사에 대한 제약사의 정보제공을 결정권을 쥐고 있는 의사에게만 제공하는 편협한 유통구조를 만들어 놓고 말았다. 상품명 처방은 왕가의 보도처럼 제약사 위에 의사가 군림하게 만들고, 제약사가 의사들에게 온갖 명목으로 리베이트를 하게 만들었으며, 이런 리베이트에 따라 처방이 수시로 바뀔 수밖에 없는 사회현상을 고착화시켰다.
이런 행태는 약국가의 악성재고로 남게 되고, 의약품을 관리해야 할 약사들은 관리를 할 수 없는 제도로 인해 유통기한이 넘어가는 의약품들을 두 눈뜨고 바라보다 폐기해야 하는 모순을 떠안게 되었다. 상품명 처방은 많은 약국에게 수치상으로는 이익을 보여주고 실제로는 손해를 보게 한 악성제도이다.
이런 상황이 5년 지속되면서 개국가에는 또 다른 가짜약사들이 등장하게 된다. 경제적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약사를 고용하기보단 무자격자를 고용해서 조제를 시키고, 전산을 담당하는 종업원에게 복약지도를 시키는 악질적인 구조를 만들었다.
의약분업은 약사들에게 약사의 정체성을 심어주고, 약사로서 자부심을 키워주는 제도가 될 수 있었지만, 얄팍한 약사들은 이런 기회를 차버리고 돈에 눈이 멀어 버린 것이다. 분업 전에도 집안에 한 명이 약사가 되면 온 가족이 약사라는 말이 있었다. 분업은 좀더 전문화된 제도일거라 생각했지만, 이런 말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약사가 집안에 있으면 비 약사 배우자, 친척들이 약국에서 조제하고 판매하고 복약지도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되어 버린 것이다. 이는 약사의 전문성을 후퇴시키고, 국민들에게 약사가 뭐 하는 직업인지 의심을 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요즘 개국가에 떠도는 단어는 이렇다. '조제는 보조가 하고, 복약지도는 전산직원이 하고, 판매는 카운터가 한다'. 도대체 약사는 뭐하는 존재인가? 개국가에 이런 가짜약사들이 판치는데도 대한약사회는 실태파악조차 하지 않고 있으며, 이에 대한 의지조차 보이지 않아 미래를 암담하게 하고 있다.
본인부담금 할인 등 갖가지 불법 만행
개국가는 처방 위주의 경영을 고수하면서 갖가지 불법이 만행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내부의 문제 외에도 방문 환자에게 드링크, 커피, 요구르트, 사탕 등을 제공하고 본인 부담금을 할인해주기도 한다. 일반의약품의 원가판매는 분업 전에는 중대형 약국 위주로 이루어졌지만 분업이후는 전 약국에 만연되어 일반의약품의 판매의지 자체를 꺾어버렸다.
분업은 개국가의 외형은 키우고, 대외적으로 전문화 된 듯 보이는데는 성공했지만, 대내적으로 전문성을 키우는 직능향상에는 실패한 예가 되었다.
현재의 분업 형태는 자리에 따른 경제적 이익의 양극화가 심화되어 약사의 전문성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처방이 많이 나오는 의원에 최대한 가까이 붙는 약국만이 살아남는 기형적인 구조를 정착시켰다.
이런 구조는 또 다른 병폐를 낳고 있는데 바로 부동산이다. 경제가 어려울 때도 약국 부동산 만큼은 예외였다. 약국가의 권리금은 상상을 초월했으며, 근거 없는 부풀리기도 예사였다. 무면허 부동산 업자들은 약국 소개의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아 챙겼으며, 사회성 없는 약사들은 많은 부분 속기도 했다. 지금처럼 처방위주의 분업이 지속된다면 부동산 거품은 지속될 것이며, 신규 약사들의 개국가 진입은 점차 힘들어질 것이다.
이런 약사들 사이의 경쟁은 부동산업자들에게 호기였으며, 일반 상가도 약국만 한다고 하면 보증금, 월세, 권리금 등이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는 기현상을 보였다. 약사들의 악의적 경쟁은 약사들 사이의 신뢰를 무너뜨렸으며, 신뢰 추락은 약사회 무관심과 기피현상을 심화시켰다. 분업 이후 반회가 무산되었으며, 신상신고 등을 기피하는 약사들도 늘어나고 있다. 약사들의 약사회 기피는 약사회 자체의 힘을 약화시키고 있다. 지금도 약사회에를 보면 젊은 약사들의 약사회 진출이 매우 미약한 것이 현실이다. 이런 원인에는 신규약사와 신뢰 문제 뿐 아니라 기존 약사회에 진출해서 자리잡고 있는 기성약사들의 완고한 의식과 ‘철밥통’도 문제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약사회 및 약사 사회는 이제 미래를 위한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외국의 성공사례를 수집하고 한국 약사의 과거를 재조명하고 온고지신의 각오를 다져야 한다. 약사의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고 5년, 10년, 50년 등 장단기 계획 등 또한 세워야 할 것이다. 이런 계획 속에는 대국민 신뢰를 구축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약사들 사이의 신뢰 또한 증진시켜야 할 것이다. 업 5년을 지나면서 대한약사회에서 약사정책연구소를 설립하겠다는 의지는 고무적이다. 연구소가 약사의 미래를 제대로 준비할 수 있는 정책을 생산해야 할 것이다.
편집부
2005.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