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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약 확대는 세계적 추세,영국 주목하자
약국은 의사의 처방을 접수하여 약을 조제하고 복약지도를 하는 곳만은 아니다.
보다 넓은 시야에서 바라보면, 의약분업을 지탱하는 양대 기둥인 약국과 병원 간의 관계는 ‘환자의 편의 증진’, ‘한정된 의료자원의 효율적 활용’, ‘건강보험 지출의 절감’이라는 3가지 원칙에 의해 규정된다.
몸이 불편한 환자는 먼저 가까운 지역사회의 약국을 찾아 약사에게 증상을 설명한다.
약사는 환자와의 질의응답을 통해 증세의 경중(輕重)을 가린 다음, 경미한 환자에게는 적절한 OTC 약품을 권하고, 증세가 위중한 환자는 의사에게 보내 진료를 받게 한다.
이상과 같은 메커니즘을 통해, 환자는 불요불급한 병원방문을 줄일 수 있고, 의사는 귀중한 시간을 절약하여 촌각을 다투는 환자를 돌보는 데 활용할 수 있다.
한편 건강보험공단의 입장에서는 (자칫 경미한 환자에게 지출될 뻔 했던) 비용을 절감하여 위중한 환자를 치료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약사의 직능을 적절히 나타내는 말은 ‘감별(differentiation)과 분류(triage)’이며, ‘조제와 복약지도’는 감별과 분류의 결과를 최종적으로 마무리하는 절차에 불과하다.
그런데 약사가 환자의 증세를 감별하고 분류하는 데 적용되는 커트라인, 다시 말해서 ‘약사의 케어가 가능한 질환의 범위’는 지금껏 ‘경미한 급성 질환’으로 한정되어 왔다.
그러나 의료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과 유럽에서는 최근 이와 관련된 중대한 변화의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예컨대 영국의 경우 2004년 세계 최초로 콜레스테롤강하제인 심바스타틴을 OTC 약품으로 전환시킨 데 이어, 2009년 4월에는 비만치료제인 오를리스타트까지도 약국에서 판매하도록 허용하였다.
이는 영국 정부가 ‘약사의 케어가 가능한 질환의 범위’를 기존의 ‘경미한 급성질환’에서 ‘만성질환’으로까지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평가된다.
영국 정부의 이러한 선택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의료수요의 증가에 발맞추어 3마리 토끼(환자의 편의 증진, 한정된 의료인력의 효율적 활용, 건강보험 지출의 절감)를 동시에 잡기 위해서는, 약사가 보유하고 있는 전문적 능력을 활용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판단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일부 이해관계자들은 약사들이 만성질환을 케어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으나, 이는 영국 정부의 정책방향과 상충된다.
영국에서는 조만간 다양한 분야의 약품들이 의사의 처방전 없이 약사의 판단에 의해 공급될 것이며, 그중 핵심적인 영역은 심혈관질환과 호흡기질환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추세에 발맞춰 영국에선 약사들과 약학대학교수들이 협력하여 약사직능을 향상하기 위한 전문서적들도 잇따라 출간되고 있다.
최근 일반약 슈퍼 판매를 둘러싼 논쟁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일반약의 슈퍼 판매 문제는 국민건강 증진과 의료비 절감이라는 대원칙 하에서 논의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의 실정(失政)을 만회하려는 정부여당의 포퓰리즘적 의도나, 차제에 약사의 힘을 약화시키려는 일부 이익단체의 얄팍한음모에 의해 국민편의 측면만 부각되는 현실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여기에 가세한 일부 아마추어 시민단체의 엉뚱한논리는 그저 실소를 머금게 한다.
그러나 사필귀정이라는 말도 있듯이, 불순한 의도를 가진 자들의 꼼수가 ‘약사의 역할이 강화되어 가는 세계적 추세’를 거스르지는 못 할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섣부른 감정적 대응을 자제하고, 냉철한 자세로 논리를 개발하는 동시에 전문지식을 쌓아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이권구
2011.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