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유럽 제약사, 국가별 약가差 고민거리
올들어 EU 회원국 다수에서 유로貨가 단일통화로 통용되기 시작함에 따라 국가별 물가 차이로 인한 혼란이 적잖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다면 의약품 분야는 어떨까? 혹시나 싶었더니 역시나 인가 보다.
가령 의약품 도매업체들이 스페인·포르투칼처럼 약가가 낮은 편에 속하는 국가에서 의약품을 사입인 후 약가가 비싼 영국이나 독일에 되파는 사례가 예전부터 다반사였기 때문.
이와 관련, 아스트라제네카社의 항궤양제 '로섹'을 구입하기 위해 스페인에선 18달러면 충분한 반면 독일에서는 39달러를 필요로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노피-신데라보社의 항응고제 '플라빅스'는 프랑스에서 55달러이나, 영국에서는 79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화이자社는 현재 영국에서 판매되는 콜레스테롤 저하제 '리피토'의 절반 가량이 다른 유럽국가에서 중간상을 통해 수입되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화이자는 "이에 따라 영국 내 공장의 '리피토' 생산량을 감축해야 했으며, 다른 의약품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이 문제에 대해 유럽 제약기업들은 공정거래법에 대한 위법성의 소지에도 불구, 한 동안 의약품 수·출입 자체를 제한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공급물량 자체를 엄격히 제한하는 방식을 채택하는 제약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실적과 미래의 시장확대 전망치를 감안해 최대한 예상 수요량에 맞춰 각종 의약품을 한정공급하기 시작했다는 것.
글락소스미스클라인社와 와이어스社는 수 개월 전부터 일종의 국가별 쿼터制 형식으로 의약품을 공급하고 있다. 일라이 릴리社와 사노피-신데라보社도 유럽 집행위원회와 도매업체들에 4월 1일부터 쿼터制와 유사한 방식을 채택키로 했다고 통보했다.
이들 제약기업들은 쿼터制 방식이 의약품 유통구조를 간소화하고, 공급부족 또는 과잉공급의 발생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도매업체들은 그 같은 조치가 국제 의약품 교역을 위축시키려는 의도를 담고 있을 뿐이라며 반대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편에서 유럽 단일시장과 자유무역을 주창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국가마다 상이한 방식으로 약가를 통제하는 모순을 조장하고 있다는 것.
당장 도매업체들의 사입비용이 증가할 것이고, 이는 결국 의료비의 상당부분을 국가가 부담하는 사회보장제도를 운용해 온 EU 회원국들의 부담을 늘릴 것이며, 환자들도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해야 하는 등 연쇄적으로 파장이 미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무엇보다 약가가 저렴한 국가들의 경우 의약품 공급부족 사태가 초래될 수 있다는 점은 가장 우려되는 대목이라며 많은 도매업체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약가 5% 인하조치를 발표한 이탈리아가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다는 것.
화이자 유럽지사의 책임자 위고 오코너는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유럽 권역내 의약품 교역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못했으나, 이제는 매우 심각한 사안으로 부각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미국에서는 전매(轉賣; resale)를 목적으로 한 의약품 수입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다만, 개인별로 캐나다나 멕시코 등에서 자신이 필요로 하는 의약품들을 구입해 오는 사례는 묵인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지난해 유럽 법원은 의약품 재 수출을 방지하기 위해 법의 테두리 내에서 제약기업측이 도매업체들에 쿼터制를 적용하는 것을 허용한 바 있다. 이후로 바이엘 등 최소한 6개 제약기업들이 이 제도를 채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뉴욕에 소재한 샌포드 C. 번스타인증권社에서 유럽 제약산업 담당 애널리스트로 일하는 캐서린 아놀드는 "이 조치가 문제를 근본적으로 치유할 수는 없겠지만, 부분적인 해결책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덕규
2002.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