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25달러 이상 선물 수령時 명단공개를"
미국의 제약기업 영업담당자들도 자사제품의 판촉을 위해 의사들에게 무료 청진기에서부터 공연 티켓, 고급 레스토랑 이용권, 휴양지에서 열리는 학술행사 명목의 이벤트 초청권, 주유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경품(freebie)을 제공하고 있다.
이와 관련, 그 동안 의료계 내부에서만 암암리에 제기되어 왔던 공격적인 의약품 마케팅 문제가 최근들어 정치쟁점으로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는 지적이다.
한 예로 유력한 차기 매사추세츠州 주지사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스티브 그로스만(민주당)은 제약기업으로부터 25달러를 초과하는 선물을 제공받은 의사의 이름을 공개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그는 의료비 절감을 으뜸가는 공약으로 내세워 온 정치인.
이 같은 현실은 약가문제가 고령층 성인들의 최대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는 현실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매사추세츠州는 인구 1인당 의사수가 미국에서 두 번째로 많은 곳이다.
그로스만은 지난달 27일 한 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일반대중들은 경품을 제공하는 이들은 누구이고, 또 이를 받는 이들은 누구인지 알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것이 의약품 구입을 위해 환자들이 지출하는 비용은 물론 치료과정 전반에까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라는 것.
그럼에도 불구, 환자들은 '클라리틴'이나 '쎄레브렉스' 등 특정 처방약의 브랜드명이 인쇄되어 있는 메모용지첩을 쉽사리 손에 넣을 수 있고, 전공의들은 '리피토'가 새겨진 머그잔으로 커피를 마시거나, 식사가 제공되는 제약회사 주최 강연에 눈도장을 찍고 있다.
또 지난 2000년도에만 총 8만3,000여명의 제약회사 영업담당자들이 의사들에게 총 72억달러치에 달하는 각종 샘플용 의약품을 무료로 제공했을 것이라는 통계가 공개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새 제약기업들의 마케팅 활동이 처방 결정과정을 왜곡하고, 약제비 지출부담을 증가시키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하는 의사들이 부쩍 늘어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따라 보스턴 소재 브리검&여성병원은 특정 제약기업과 무관한 출처에서 제공되는 약물정보를 제공받길 원하는 수련의들에 한해 무료식사권을 자체 제공하기 시작했다. 캠브리지병원은 입원환자들에게 발행되는 처방전의 대부분을 작성하고 있는 전공의들에게 제약회사 영업담당자들이 식사나 각종 선물(largesse)을 제공할 수 없도록 금지시켰다.
뉴욕 소재 컬럼비아 장료교병원의 보브 굿맨 박사가 결성한 '무료식사 사절'(No Free Lunch)이라는 이름의 단체는 '펜 앰네스티'(pen amnesty) 프로그램에 착수했다. '펜 앰네스티'는 의사가 특정 의약품의 로고가 새겨진 펜을 보내올 경우 아무 글짜도 인쇄되지 않은 볼펜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북동부에 소재한 버몬트州는 최근 그 자신이 의사인 하워드 딘 주지사가 서명한 법안이 발효되기 시작했다. 이 법은 제약기업이 25달러 이상의 경품을 보고하지 않고 의사측에 제공했을 경우 건당 10,000달러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매사추세츠州와 메인州, 뉴욕州, 위스콘신州도 최근 유사한 내용의 법이 도입됐다.
한편 이 같은 일련의 움직임과 압력에 대해 제약기업들은 방어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매사추세츠州에 소재한 제약기업들은 당장 이달부터 회사 로고가 새겨진 골프공, 고급식사 이용권, 브로드웨이 공연 관람권, 메이저리그 경기 입장권, 카리브해 리조트 여행권 등 학술적인 내용과 무관한 경품을 제공하지 않기로 하는 규약을 마련했다.
그러나 그로스만의 주치의이자 브리검&여성병원에 내과의사로 재직 중인 마틴 솔로몬 박사는 "진정한 변화는 의사 자신들로부터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령 리차드 무어 상원의원(민주당)이 2년마다 거쳐야 하는 면허갱신 절차에 50달러 이상의 경품을 제공받은 사례를 보고하도록 하는 법안을 제안했던 것은 한 예라는 것. 매사추세츠州 의사회(MMS)는 당시 이 법안이 지나치게 번거롭다는 이유로 반대했으나, 처방과정에 제약기업들이 미치는 영향력을 제한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는 설명이다.
캠브리지병원의 리치 보엘러 박사는 "펜에 새겨진 의약품 이름이 처방과정에 영향을 미쳤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나 자신이 환자의 입장이었다면 처방전 작성과정에 제약기업들이 미칠 수 있는 영향에 관심이 많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머빌병원에 재직 중인 카렌 라서 박사는 "제약기업들은 우리에게 경품을 제공하는 방식 대신에 연구비 지원이나 약가인하 등 보다 나은 방식으로 판촉활동을 전개할 수도 있을 것이며, 그것이야말로 환자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하버드大 의대 4학년생 마크 프리드버그는 "펜과 메모용지첩은 특정한 의약품의 브랜드 네임을 의사들에게 각인시키는 고도의 방법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열렸던 매사추세츠州 의사회(MMS)의 한 학술회의에서 "제약기업들의 마케팅이 의사의 처방전 작성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의사들은 어떤 형태의 경품제공도 거부해야 할 것"이라는 요지의 스터디 내용을 발표했다.
이덕규
2002.07.03